2022년 8월 우리는 폴란드와 K2 전차, K9 자주포 수출 계약을 맺었다. 첫 물량은 그해 12월 현지에 도착했다. 계약에서 첫 인도까지 넉 달이 채 걸리지 않았다. K-방산 수출의 비결은 ‘속도’였다.
그 속도는 완제품을 만드는 체계기업 혼자 이뤄낸 것이 아니다. 전차와 자주포에 들어가는 소재를 만들고, 부품을 깎고, 용접해 낸 소부장(소재·부품·장비) 및 뿌리 기업들이 공급 일정을 맞췄기에 가능했다. 이 공급 역량은 오랜 세월 다져진 현장의 연결에서 나온다. 설계가 바뀌면 협력사 기술자와 곧바로 도면을 다시 펼치고, 불량이 나면 앞뒤 공정 담당자들이 작업대 앞에 모여 원인을 찾는다. 서로를 속속들이 알기에 긴 설명 없이도 통한다. 수요기업과 소부장·뿌리의 긴밀한 연결, 그 연결에서 나오는 공급 속도가 한국 제조업 경쟁력의 원천이다.
첨단산업도 마찬가지다. 열과 압력으로 HBM 칩을 쌓아 붙이는 장비를 개발한 기업이 있고, 반도체·디스플레이 핵심 부품의 고정밀 표면처리 기술을 국산화한 기업이 있다. 하나는 첨단 장비, 하나는 전통 뿌리기술이지만 수요기업의 까다로운 기준을 맞추며 실력을 키웠다는 점은 같다. 첨단과 소부장·뿌리는 공장에서 함께 움직인다.
문제는 이 연결을 둘러싼 환경이 급변하고 있다는 점이다. 첫째, 수요가 이동한다. 미래차 전환 등으로 기존 일감은 줄고, 방산·로봇 등 신산업에서 새로운 수요가 생겨난다. 둘째, 요구가 높아졌다. 후발국의 저가 공세 속에서 수요기업은 더 정밀한 제품을 더 빠르게 원한다. 셋째, 연결을 지탱하던 사람이 떠난다. 서로의 공정과 손맛을 꿰뚫고 있던 숙련공들이 은퇴를 맞고 있다.
환경이 바뀌면 연결도 진화해야 한다. 수요가 옮겨가면 연결은 더 넓어져야 한다. 자동차 부품을 만들던 정밀가공 기술을 로봇이나 방산에 적용하려면 새로운 고객의 요구를 알아야 한다. 명함 교환에 그치지 않고 도면을 함께 펼쳐놓고 ‘이 정밀도면 되겠다’를 확인하는 자리가 필요하다. 수요기업도 늘 거래하던 곳 바깥을 봐야 한다.
요구가 높아지면 연결은 더 깊어져야 한다. 도면이 완성된 뒤 가공업체를 찾아서는 속도와 품질을 동시에 잡을 수 없다. 설계 초기부터 소부장·뿌리 기업이 참여해 “이 공정을 이렇게 바꾸면 수율이 오른다”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시행착오가 줄고 개발 기간이 짧아진다. 현장에서 쌓아 올린 깊은 협업은 가격 경쟁력만으로는 넘보기 어려운 진입장벽이다.
사람의 빈자리는 경험의 디지털 계승으로 채워야 한다. 숙련공의 판단을 기록하고 공정 데이터를 AI로 분석하면, 불량 원인을 빨리 잡고 장인의 노하우를 청년 기술자에게 전수할 수 있다. 사람은 떠나도 현장의 경험과 기술은 공장에 남아야 한다.
정책 역시 첨단산업 육성, 기존 제조업의 전환, 소부장·뿌리 생태계를 하나의 공급망 안에서 다뤄야 한다. 로봇산업을 키울 때 정밀가공 기업의 업종 전환을 돕고, 반도체에 투자할 때 소재·부품·장비 실증을 함께 챙겨야 한다.
오는 28일부터 사흘간 킨텍스에서 열리는 ‘K-Tech Inside Show 2026’의 주제도 ‘Deep Connect’다. 소부장·뿌리 기업과 수요기업이 한자리에서 기술을 확인하고 구매·수출 상담을 이어가는 장이다. 전시장을 찾은 누군가의 “우리 기술로 저 기업의 고민을 풀 수 있겠다”는 발견이 시제품과 양산으로 이어질 때 우리 산업의 다음 속도가 만들어진다. 소부장·뿌리, 연결이 속도이고 경쟁력이다.
전윤종 한국산업기술진흥원(KIAT) 원장
oskymoon@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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