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천구청 주은경 소통담당관 적어 준 나태주 시인의 시 ‘멀리서 빈다’ 감동과 여유 느껴져 눈길

주은경 금천구청 소통담당관이 직접 글로 쓴 나태주 시인의 시 ‘멀리서 빈다’
주은경 금천구청 소통담당관이 직접 글로 쓴 나태주 시인의 시 ‘멀리서 빈다’

[헤럴드경제=박종일 선임기자]고운 단풍이 흩날리며 가을이 깊어가는 계절. 왠지 가슴 한구석이 휑해지는 날이 있다. 계절이 바뀌는 쓸쓸함 때문일까. 이럴 때 시 한 편을 읽으며 메마른 가슴을 촉촉하게 적시는 것도 좋겠다.

얼마 전 가슴에 와닿는 시 한 편을 선물 받았다. 나태주 시인 ‘멀리서 빈다’였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꽃처럼 웃고 있는 ‘너’ 한 사람으로 세상이 눈부신 아침이 되고, 풀잎처럼 숨 쉬는 ‘나’ 한 사람으로 고요한 저녁이 온다고 노래한다. 그리고 마지막에 조용히 안부를 건넨다.

“가을이다. 부디 아프지 말라.”

짧은 시 한 편이 이토록 깊은 울림을 줄 수 있을까. 누군가를 향한 따뜻한 마음과 보이지 않는 곳에서도 서로의 존재를 소중히 여기는 정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가을날 건네받은 시 한 편이 유난히 행복하게 느껴진 이유다.

이렇게 따뜻한 시를 건넨 사람은 금천구청 주은경 소통담당관이다. 공직생활 33년째인 그는 바쁜 행정 현장에서도 시 한 편이 전하는 위로와 감동을 소중히 여기는 공직자다.

1993년 구로구청 9급 공무원으로 공직에 첫발을 내디딘 주 담당관은 10여 년 전 서울 지하철 시청역에서 우연히 ‘시 항아리’를 접했다. 항아리 속에 담긴 시를 한 편씩 꺼내 읽으면서 짧은 글이 사람의 마음을 얼마나 크게 움직일 수 있는지 실감했다고 한다.

그 경험은 자신의 일터에서 작은 실천으로 이어졌다. 독산4동장으로 근무할 당시 동 주민센터에 ‘시 항아리’를 마련하고 주민들이 시 한 편씩 가져갈 수 있도록 했다. 반응은 기대 이상이었다. 마을사업을 배우기 위해 방문한 사람들에게도 시를 나누며 감동을 전했다.

시 한 편의 힘은 생각보다 컸다. 주 담당관에게 시를 받아 간 한 주민은 아파트 게시판에 시를 붙여 놓았다며 또 다른 시를 달라고 조르기도 했다. 짧은 시 한 편이 누군가에게는 하루를 견디게 하는 위로가 되고, 이웃과 마음을 나누는 매개가 된 것이다.

주 담당관은 “작은 시 한 편을 받고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니 나 또한 기분이 너무 좋았다”며 “시 한 편을 읽는 것은 차 한잔을 마시는 것과 같다”고 말했다.

그는 지금도 힘든 일을 겪는 직원들에게 시 한 편을 건네기 위해 정성껏 쓴 시들을 바구니에 담아 놓고 있다. 업무에 쫓기고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에서 지칠 때, 짧은 시 한 편이 잠시나마 마음을 쉬게 해줄 수 있다는 믿음에서다.

공직자의 일은 정책을 만들고 행정서비스를 제공하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때로는 따뜻한 말 한마디가, 무심히 건넨 시 한 편이 사람의 마음을 움직인다. 거창한 사업이나 특별한 예산이 없어도 가능한 일이다.

바람 소리 스산한 가을이 저물어가는 길목. 누군가에게 시 한 편을 건네는 공직자의 작은 몸짓이 세상을 조금 더 따뜻하게 만든다.

오늘은 우리도 가까운 사람에게 시 한 편을 건네보면 어떨까.

“가을이다. 부디 아프지 말라.”

이 짧은 안부가 누군가의 가슴에 오래 머물기를 바란다.


seouldream01@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