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자는 측은지심(惻隱之心)을 인(仁)의 시작이라고 했다. 타인의 고통과 어려움을 차마 외면하지 못하는 마음이다. 경쟁과 효율, 실적과 수익이 우선하는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이 정신은 더욱 절실하다. 고물가와 양극화, 고령화로 취약계층의 생활고가 깊어지고 있는 가운데 타인의 어려움마저 개인 능력의 부족으로 치부되고 있다. 이럴 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타인의 처지를 이해하고 실질적으로 도움을 줄 수 있는 측은지심의 실천이다.
유통은 단순히 상품을 사고파는 산업이 아니다. 국민의 일상에 필요한 상품과 서비스를 적정한 가격에 소비자에게 공급하고, 생산자와 소비자를 연결해 상호 이익을 창출해 가는 생활경제의 메커니즘이다. 따라서 소비자의 어려움을 이해하고 그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아내 이를 경영에 반영하는 것이 유통기업의 본질적인 책무이다.
예컨대 물가 상승으로 부담이 커진 가계에 생필품을 합리적인 가격으로 제공하고, 고령자와 장애인의 쇼핑 편의를 위해 매장 접근성과 배송 서비스를 개선하는 일은 소비자의 처지를 헤아리는 측은지심 경영이다. 유통기한이 임박한 상품을 소비자가 안전하게 소비할 수 있도록 할인 판매하거나 복지기관에 기부해 음식물 폐기를 줄이면서 취약계층을 돕는 것도 유통산업의 중요한 측은지심 행위이다. 소상공인과 납품업체에 공정한 거래조건을 보장하고 대금 지급을 원활히 하는 것 역시 유통 생태계가 약자를 배려하는 길이다. 이러한 실천은 소비자의 경제적 부담을 줄이고 거래의 선택권과 접근성을 넓힌다. 나아가 기업에 대한 신뢰와 고객 충성도를 높이고 동시에 협력업체와의 상생을 통해 산업 전체의 지속가능성을 강화한다. 결국 측은지심은 기업의 수익성과 대립하는 가치가 아니라 장기적인 경쟁력을 뒷받침하는 중요한 경영자산이다.
측은지심이라는 표현이 다소 고전적으로 느껴진다면 공감경영, 배려경영, 상생경영이라고 부를 수도 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명칭이 아니라 실천이다. 일회성 기부나 홍보성 사회공헌보다 소비자를 위한 공정한 가격, 투명한 거래, 책임 있는 상품 관리가 유통산업이 실천해야 할 측은지심이다.
특히 최근 유통업계의 중요한 현안인 개인정보 유출과 정보보안 문제 역시 측은지심의 관점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다. 유통기업이 보유한 고객정보는 단순한 영업자산이 아니라 고객의 사생활과 재산을 보호해야 하는 소중한 신상정보이다. 고객의 정보가 외부로 유출되면 보이스피싱과 금융사기, 명의도용 등 소비자의 2차 피해로 이어질 수 있다. 고객의 불안과 잠재적 재산 피해는 기업관리의 중대한 문제이다. 고객의 입장에서 발생할 수 있는 재산상의 피해를 먼저 생각하고, 정보보호에 필요한 기술적·관리적 투자를 강화하는 것이야말로 유통산업이 실천해야 할 측은지심이다. 소비자의 재산과 사생활을 미리 보호하는 일도 유통기업의 중요한 사회적 실천 행위이다.
유통산업의 경쟁력은 매출과 시장점유율만으로 평가할 수 없다. 소비자의 필요와 어려움을 얼마나 이해하고, 상품의 품질과 가격, 서비스로 얼마나 실질적인 가치를 소비자에게 제공할 수 있는가도 유통산업의 중요한 경영성과 기준이 돼야 한다. 측은지심을 경영원칙으로, 배려를 경쟁력으로 발전시키는 것. 이것이 유통산업의 본질적인 경영철학이 되어야 하고,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한 새로운 경쟁력의 원천이 되어야 한다.
김익성 동덕여대 교수 (전 유통학회장)
siuu@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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