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년 전부터 대학 학장님의 권유와 초대로 일본의 전통 이야기 예술인 라쿠고(落語) 공연장을 찾기 시작했다. 한 번, 두 번 이어진 관람이 어느덧 20~30회에 이르렀다. 학장님은 내가 라쿠고를 무척 좋아한다고 생각하실 것이다.
물론 틀린 말은 아니다. 나 역시 어느새 그 매력에 깊이 빠져들었다. 그러나 공연장을 거듭 찾는 데에는 또 하나의 이유가 있다. 처음에는 그저 재미있게 웃고 돌아왔지만, 횟수가 늘어날수록 나의 관심은 무대 위의 이야기꾼보다 객석을 채운 고령자들에게 향했다.
그들의 웃음이 부러웠다. 그리고 그 웃음을 가능하게 하는 일본의 문화가 궁금해졌다.
최근 후쿠오카에서 열린 라쿠고 공연에서도 나의 시선은 어김없이 객석으로 향했다. 60대, 70대, 때로는 80대로 보이는 관객들이 부부끼리, 친구끼리 단정한 차림으로 공연장을 찾았다. 특히 화려하지 않지만, 은은한 품격이 느껴지는 기모노를 정갈하게 차려입은 여성 관객들이 인상적이었다. 그들은 마치 소중한 사람을 만나러 가듯 자신이 즐기는 문화에 예를 갖추고 있었다.
그런데 공연이 시작되자 놀라운 광경이 펼쳐졌다. 그 단아한 관객들이 옆 사람을 바라보며, 발을 구르고 가슴을 치며, 하얀 이를 드러내고 마음껏 웃는 것이었다. 이야기꾼의 한마디 한마디에 객석은 웃음바다가 되었다. 나이를 의식하거나 체면을 지키려는 부담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오히려 크게 웃을수록 더 행복하고 당당해 보였다.
그 순간 깨달았다. 공연의 품격은 무대 위의 예술가만 만드는 것이 아니다. 객석을 채운 관객들 역시 자신이 사랑하는 문화의 격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공연장에 들어설 때는 예를 갖추고, 공연이 시작되면 마음껏 웃는다. 품격과 자유로움이 이토록 자연스럽게 공존할 수 있다니!
그 모습을 볼 때마다 한국의 같은 세대 사람들을 떠올린다. 단순히 경제적 풍요의 문제가 아니다. 재산이 수십억 원인 사람이라도 자신의 세대와 함께 마음껏 웃을 수 있는 문화적 공간을 갖지 못할 수 있다. 한국에도 영화와 코미디 공연, 대학로 연극 등 다양한 오락문화가 있다. 그러나 60~80대가 정장 차림으로 당당하게 찾아가, 오직 실컷 웃기 위해 시간을 보내는 문화가 과연 얼마나 일상적으로 자리 잡고 있을까?
라쿠고에서는 공연 중 끊임없이 터져 나오는 관객의 웃음이 예술의 일부가 된다. 비슷한 시대를 살아온 사람들이 언어의 유희와 인생의 풍자를 공유하며, 가슴속에 오랫동안 쌓아두었던 감정의 찌꺼기들을 웃음으로 털어낸다. 그곳에서는 고령자들이 더 이상 사회의 주변인이 아니다. 공연을 완성하는 당당한 주인공이다.
그런데 최근 한국에서 화제가 된 남대문시장의 ‘스카프 아저씨’ 영상을 보며 흥미로운 연결점을 발견했다. 짓궂은 농담과 재치 있는 입담에 손님들은 웃음을 터뜨린다. 물건을 사러 온 사람들이 뜻밖에 언어 유희와 정서적 즐거움을 경험하는 것이다. 그 모습을 보며 한국의 중장년 여성들도 누군가와 장난스럽게 말을 주고받고, 관심받고, 실컷 웃고 싶은 마음을 품고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물론 한국에도 재담과 만담, 판소리의 해학과 풍자처럼 훌륭한 웃음의 전통이 있다. 그렇기에 더욱 궁금하다. 왜 이러한 문화가 라쿠고처럼 고령자들이 일상적으로 찾아가 즐기는 공연 문화로 충분히 뿌리내리지 못했을까?
고령사회에 필요한 것은 연금과 의료, 복지시설만이 아니다. 인생의 후반부에도 자신의 존재를 당당하게 느끼며, 같은 세대와 감정을 나누고 마음껏 웃을 수 있는 문화적 공간이 필요하다.
후쿠오카의 공연장을 나오면서 다시 생각했다. 어쩌면 라쿠고를 보러 가는 것이 아니라, 그 웃음의 비밀을 찾기 위해 공연장을 찾아가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한 사회의 문화적 품격은 얼마나 화려한 무대를 만들어내는가에만 달려 있지 않다. 객석의 백발이 얼마나 당당하게, 얼마나 행복하게 웃을 수 있는가에서도 드러난다. 그날 내가 가장 부러워했던 것은 일본의 전통예술이 아니라, 세상 부러운 것 없이 웃고 있던 그 백발의 관객들이었다.
이용숙 일본 관서국제대 교수
ehkim@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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