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일 ‘스트레이트’서 ‘영웅조작설’ 제기
-16일 육군, ‘5.18 연계 이슈화 막아라’ 지침
-20일 국방부 “육군 확인 이후 판단하겠다”
-이목 쏠린 가운데 육군참모총장 하와이行
-육군 10여일째 “검토중” 스탠스 유지
-육군 관계자 “내부서 ‘영웅조작설’ 확인중”
-“육군참모총장도 영웅조작설 관련 보고받아”
[헤럴드경제=김수한 기자] ‘이종명 영웅조작설’에 대한 여론이 들끓고 있지만, 당사자인 육군본부 수뇌부의 침묵이 계속되고 있는 가운데 서욱 육군참모총장이 하와이로 해외출장을 떠났다. 육군참모총장의 하와이 출장 전후 상황을 살펴보면 석연찮은 점이 한둘이 아니다.
통상적으로 군 수뇌부의 해외 출장은 오래 전부터 준비된다. 사전에 철저히 계획된 출장이라는 얘기다.
그러나 육군은 육군참모총장이 하와이행 비행기에 몸을 싣기 직전까지 육군참모총장의 하와이 출장에 대해 사전에 일절 언급하지 않았다.
전례를 보면 육해공군 참모총장들의 해외출장 일정은 수일 전 공지되는 경우가 있었다. 그러나 이번 육군참모총장의 하와이 출장은 출발 당일까지 철저히 함구됐다.
그렇다고 이번 하와이 출장에 긴급한 임무나 과제가 있는 것은 아닌 것으로 알려졌다. 육군참모총장은 이번 출장에서 참석, 참관, 방문 등의 소극적 일정을 주로 소화할 계획이다. 특히 4박5일간의 하와이 출장 일정 중 4일째 일정은 ‘아침식사’ 외에는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출장이 여러모로 주목을 받는 이유는 최근 불거진 이종명 의원의 ‘영웅조작설’ 때문이다.
MBC 탐사기획 시사프로그램 ‘스트레이트’는 지난 13일 이종명 의원과 관련된 영웅조작설에 의문을 제기했다.
이 의원은 2000년 6월 27일 전방수색부대 대대장 당시 지뢰를 밟은 후임 대대장을 구하려다가 자신도 지뢰를 밟는 사고를 당했다는 당시 육군 발표에 따라 ‘살신성인’의 영웅으로 떠올랐다. 이 의원은 2002년 처음 제정된 올해의 육사인賞을 받는 등 군인의 표상이 됐고 급기야 국회의원 선거에서 비례대표로 당선되기도 했다.
◆영웅조작설 의혹 제기에 육군 “이슈 확산 막으라”=만약 ‘스트레이트’의 의혹 제기가 사실 규명으로 이어질 경우, 지금까지 약 20년간 군이 직접 연출하고 기획한 ‘영웅’의 날개 없는 추락이 예견됐다.
그러나 육군 당국은 ‘스트레이트’ 보도 직후 이슈의 확산 방지에 역량을 집중하는 등 예상과는 다른 행보를 보였다.
육군 수뇌부는 ‘영웅조작설’ 관련 대책회의를 열고 “5.18과 연계해 이슈화가 예상되므로 육군의 공식 입장표명은 5.18 이후로 최대한 연기하라”, “기자 질문에는 ‘검토중’ 스탠스를 유지하고 이슈가 확산되지 않도록 관리하라”는 지침을 내린 사실이 16일 MBC 추가 보도로 드러났다.
실제로 이 기간 국방부 정례브리핑에서 관련 질문에 육군본부 공보과장은 “검토중”이라는 답변만 수십 번 반복하며 수뇌부 지시를 이행했다. 5.18 광주민주화운동 기념식이 치러진 18일은 토요일이라 일요일인 19일까지 이슈 확산은 자연스럽게 저지됐다.
이어 육군은 월요일인 20일 국방부 정례브리핑에서도 “검토중”이라는 스탠스를 계속 유지했다. ‘대체 이종명 영웅조작설과 관련해 육군 차원의 입장 표명과 진상 조사는 언제 이뤄지느냐’는 류의 질문이 계속 이어졌지만, 육군은 5.18이 지난 시점에도 “좀 더 지켜봐달라”며 진전된 입장을 보이지 않았다.
‘육군 차원에서가 아니라 국방부 차원에서 조사할 사안이 아니냐’는 질문까지 나왔다.
이와 관련 국방부는 “육군에서 확인 중에 있는 사안”이라며 “육군 확인 이후에 상황을 보고 신중하게 판단하겠다”며 육군 차원의 ‘결자해지’를 촉구하는 모양새를 취했다.
육군의 향후 입장에 이목이 쏠릴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다음날 육군참모총장이 불현듯 하와이로 출장을 떠난 것이다.
서욱 육군참모총장은 지난달 새롭게 취임했다. 육군참모총장 취임 한 달여 만에 첫 해외 출장을 떠난다는 점에서 주목받을 거란 예견이 충분히 가능했다.
육군참모총장의 출장이 국내 민감한 이슈와 얽혀 있다는 점을 감안해서라도 육군은 출장 며칠 전 사전 공지를 하는 편이 상식에 부합했을 것이다.
그러나 육군은 육군참모총장의 하와이 출장 출발 당일 오후 2시 34분에 기자들에게 문자메시지를 보내 출장 사실을 처음 알렸다.
이와 관련 육군 관계자는 “육군참모총장의 해외 출장은 오래 전부터 계획된 것이 사실”이라며 “해군이나 공군 등 다른 군 사례와는 달리 육군은 매번 사전 공지하지 않고 출장 당일 문자 메시지로 공지했다”고 설명했다.
◆오이밭에서 신발끈 묶기? 이슈 터진 뒤 하와이 출장…육군 “전혀 무관”=이 관계자는 “육군참모총장 하와이 출장과 영웅조작설은 전혀 관계가 없는 사안”이라며 “영웅조작설과 관련해서는 육군 내 당시 사건 조사를 맡았던 기관과 그 상급 제대 기관에서 현재 해당 사건을 다시 확인하는 등 내부적으로 진행되는 부분이 있다. 육군참모총장도 이런 상황을 인지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육군에 확인한 결과, 서욱 육군참모총장은 21일부터 25일까지 미국 하와이에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 지상군(LANPAC) 심포지엄에 참석할 계획이다.
서 총장은 이 심포지엄에서 미국 인도태평양사령관 등 주요 지휘관과 대담을 갖고, 인도태평양사령부와 미 25사단 등을 방문할 예정이다.
육군이 공개한 서 총장의 출장 일정은 한가한 수준이다. 일각에서는 ‘외유’라는 표현마저 나온다.
1일차인 21일(현지시간) 일정은 방산전시회 참관과 안보연구소 방문, 간담회 등의 일정이 잡혀 있다.
2일차인 22일에는 심포지엄에 참석하고 심포지엄에서 ‘기조연설을 청취’할 예정이다. 쉽게 말해 하와이의 국제회의장에 출석해 가만히 앉아 듣고만 있으면 ‘심포지엄 참석’이라는 소임이 끝난다는 얘기다. 심포지엄 후에는 하와이에 있는 인도태평양사령부를 방문한다.
3일차인 23일에도 심포지엄에 참석하는 일정이 있다. 심포지엄 후 미국 주방위군 지휘소, 미 25사단 연합 태평양 다국적준비능력센터(JMMRC), 태평양 육군사령부를 방문한다.
4일차인 24일에는 ‘아침식사 후 이동’이라는 일정 외엔 없다. 일정이 없는 24일은 금요일로서 주말과 연계해 하와이 관광을 다닐 수도 있지 않겠느냐는 관측마저 나온다.
물론, 군 당국에서는 이러한 군사외교가 훗날 한미동맹을 고려할 때 반드시 필요한 일정이라고 주장한다. 특히 방문지가 한반도를 관할하는 미 인도태평양사령부가 있는 곳이라는 점에서 우리 육군참모총장이 반드시 들러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은밀한 임무나 과제가 있을 수 있으니 군 수뇌부의 해외 출장에 대해 ‘딴지’를 걸면 안 된다는 주장도 있다.
그러나 시점상 이번 육군참모총장의 하와이 출장은 부적절했다는 비판 역시 면하기 어려운 상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