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불 켜진 3기 신도시
LH 땅 투기 사태 이후 주민 반발 거세져
하남 교산·인천 계양 토지보상 협의 지지부진
지난 31일 마친 하남교산 대토보상 신청율 19.5%에 그쳐
남양주 왕숙 등 보상계획 하반기로 밀려
전문가 “LH 사태 진정되기 전까진 어려울 것”
[헤럴드경제=김은희 기자] ‘우려가 현실로…’ 3기 신도시 추진에 결국 빨간불이 켜졌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 임직원의 땅 투기 사태 여파로 주민들이 보상협의 과정에서 거세게 반발하고 있어서다.
정부는 3기 신도시 공급을 예정대로 추진하겠다는 방침이지만 개발 지연은 불가피해 보인다. 특히 오는 7월 사전청약을 강행할 경우 사전청약 당첨자들이 ‘전세난민’으로 전락하는 이명박 정부 당시 사전예약제의 시행착오를 되풀이할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1일 LH 등에 따르면 하남 교산지구 내 대토보상 신청은 지난달 31일 마감됐다. 신청률은 19.5% 수준으로 당초 정부가 목표로 세운 50%에 한참 못 미친다. 전체 보상협의율은 54%다. 토지보상 절차에 돌입한 지 4개월이 되도록 절반밖에 못한 셈이다. 인천 계양지구 역시 토지보상 협의율이 48%에 불과하다. LH 사태가 불거진 이후 제자리걸음을 걷고 있다.
다른 3기 신도시의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 올 상반기 토지보상 시작을 목표로 감정평가를 진행 중이었던 남양주 왕숙의 일정은 하반기로 미뤄졌다. 이들 3개 지구보다 늦게 3기 신도시로 지정된 고양 창릉과 부천 대장의 보상 착수도 요원해졌다. LH 직원들의 투기지였던 광명 시흥은 지구 지정부터 막힌 상황이다.
3기 신도시를 차질없이 공급하겠다는 정부의 공언과 달리 택지지구 조성의 가장 밑단인 토지수용 단계부터 차질을 빚고 있는 것이다. 이주대책, 지장물(건물·수목·비닐하우스 등) 조사 등을 둘러싼 갈등도 좁혀지지 않고 있다.
실제 토지보상 후반전에 돌입한 하남 교산과 인천 계양의 경우 지장물 조사 착수조차 못했다. 주민들이 반대하고 있어서다.
3기 신도시 예정지 토지주들의 입장은 강경하다. 일단 정부의 보상정책을 신뢰할 수 없다는 목소리가 크다. 사업 주체인 LH 내부에서 보상을 노린 투기가 횡행했는데 정당한 보상이 이뤄졌는지 어떻게 믿겠냐는 것이다. 시세보다 낮게 책정된 토지보상금에 대한 불만이 LH 사태 이후 폭발한 셈이다.
하남 교산지구 주민대책위원회 관계자는 헤럴드경제와의 통화에서 “LH의 비리가 만천하에 드러난 상황에서 토지보상을 강행하는 이유가 뭐냐”면서 “이주대책, 생계대책 등을 마련하지 않은 채 보상만 서두르고 있는 게 꼼수 같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LH 사태가 토지수용 지연의 빌미가 됐다고 입을 모았다. 사실상 개인의 재산권을 제한하는 문제로 협의가 쉽지 않은데 LH의 비리가 큰 걸림돌이 됐다는 것이다. 특히 토지수용을 반대하는 토지주는 버티기에 들어갈 공산이 크다. 정부가 강제수용에 나서더라도 행정소송 등으로 이어질 경우 공급 시기는 늦춰질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책임연구원은 “LH 사태가 진정되거나 어느 정도 마무리되기 전까지는 토지보상 작업을 마무리하기 어려울 것”이라며 “무엇보다 공공 부문의 신뢰도 회복이 선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ehkim@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