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최준선 기자] “택배기사들이 단지 입구에 놓고 간 상자, 대신 옮기고 돈 벌 방법 없나요?”
# 지난 2일 서울시 강동구의 한 대규모 아파트단지에 거주하는 A씨는 택배기사로부터 문자 한 통을 받았다. 차량 진입이 금지돼 문 앞까지 배송이 어려우니 경비초소 옆에 둔 물건을 직접 찾아가야 한다는 설명이었다. 다행히 그 시간에 집에 있던 A씨는 바로 물건을 챙길 수 있었다. 하지만 수시간 뒤 다시 경비초소를 지나치며 살펴보니 식품이 포장된 것으로 보이는 몇몇 상자가 아직도 뙤약볕 아래 방치돼 있었다. 무거운 물건을 어쩌지 못해 발만 동동 구르는 어르신도 보였다.
5일 약 5000가구 규모인 강동구 A아파트 주민 등에 따르면, 이 아파트 입주자대표회의는 아파트단지 내 지상도로에서 차량 통행을 전면 금지하겠다는 방침을 최근 정하고 이달 1일부터 통제에 돌입했다. 안전사고와 보도 훼손 등을 방지하기 위해서인데, 긴급차량과 이사차량 등 지상 통행이 불가피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모두 지하주차장을 통해 이동하라는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택배차량(탑차)은 차체가 지하주차장 진입 제한 높이인 2.3m보다 높아 진입이 불가능하다. 차를 저상차량으로 개조하면 지하주차장에 진입할 수 있지만 한 번에 실어나를 수 있는 물량이 확 줄어들어 유류비용은 물론 근무시간까지 늘어난다. 또 대부분이 개인사업자인 상황에서 특정 아파트의 정책 때문에 사비 수백만원과 수개월의 시간을 들일 여유도 없다.
이번과 같은 ‘택배대란’이 처음 있는 일은 아니다. 지난 2018년 경기 남양주시 다산신도시, 인천 송도국제도시 등에서도 주민이 택배차량 진입을 금지시키고 택배기사들은 배송을 거부하는 갈등이 빚어졌다. 비슷한 문제가 속속 발생하자 정부도 2019년부터는 지상공원형 아파트는 지하주차장 입구 높이를 2.7m로 상향토록 하는 등 대책을 내놨지만 진입구가 충분히 높지 않은 아파트가 훨씬 많은 상황이다.
심지어는 이 같은 서비스 공백을 노린 정보기술(IT) 스타트업이 나올 정도다. 커넥트히어로가 운영하고 있는 ‘바통’이라는 서비스가 대표적이다. 바통은 배송기사가 담당하는 여러 물류 단계 중 마지막 단계인 문전배송(라스트마일)업무를 지역근무자에게 위탁할 수 있는 플랫폼이다. 쿠팡이츠나 배달의민족을 통해 일반인이 배달업무를 하는 것처럼 아파트 주민도 해당 단지의 배송업무를 처리하고 돈을 벌도록 한 것인데, ‘택배배송 중개 서비스’라는 이름으로 특허를 획득하기도 했다.
개인사업자인 택배기사는 질병·경조사 등의 이유로 쉬어야 할 경우 자신의 물량을 대신 처리해줄 인력을 직접 구해야 했다. 이 인력을 업계 용어로 ‘용차’라고 하는데, 평소 받던 것보다 많은 수수료(건당 1500원)를 치러야 해 부담이 작지 않았다. 이 구조를 주목한 커넥트히어로는 용차 대신 별도의 자격증이 없는 일반인에게 업무를 위탁할 수 있는 플랫폼을 만들어 수수료 부담을 500~900원으로 낮췄다. 커넥트히어로는 2017년부터 관련 서비스를 준비했는데, 2018년 택배대란이 일었던 다산신도시서부터 영업을 본격화하며 성장하기 시작했다. 택배기사로는 당장 빗발치는 고객 항의를 피하기 위해 입주민의 손을 유상으로 빌렸던 셈이다.
하지만 이 같은 서비스도 지상도로 진입 금지에 따른 비용 부담을 택배기사가 지는 셈이어서 근본적인 해결책은 되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지하주차장 입구를 2.7m로 높게 설계하지 않았는데도 차량을 통제하려는 공원형 아파트의 경우, 단지 밖에 택배집하시설을 따로 마련하고 주민이 직접 찾아가는 등 상호조율이 필요하다고 업계 관계자들은 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