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값도 모르니…” PPL 내몰린 ‘K-콘텐츠’ 그림자 [IT선빵!]

[헤럴드경제=박세정 기자] # 드라마 주인공이 시도 때도 없이 특정 음료만 마시고, 똑같은 카페만 방문한다.

국내 드라마 속 간접광고(PPL)의 장면들이다. 드라마 속 PPL이 도마 위에 오른 것은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다. 과도한 PPL은 드라마의 몰입도·완성도를 해치고 시청자의 비난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해묵은 PPL 논란의 이면에는 콘텐츠의 가치를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는 방송 환경의 문제가 자리 잡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콘텐츠 가치가 저평가된 환경에서 치솟는 제작비를 감당하기 위해 결국 광고·협찬에 의존하는 악순환이 지속된다는 것이다. ‘콘텐츠 제값 받기’가 ‘K-콘텐츠’ 한류의 지속성을 위한 필수과제로 부상하고 있다.

제작비 4년 새 4000억원 ↑…광고·협찬에 의존

콘텐츠 제작비는 4년 새 19%가 증가하는 등 수년째 치솟고 있다. 2015년 2조764억원이었던 프로그램 제공자(PP)의 제작·투자비 규모는 2019년 2조4749억원으로, 4000억원가량 커졌다. 연평균 4.5%씩 제작비가 올랐다.

회당 수십억원의 제작비가 투입되는 드라마도 잇따라 등장하고 있다. 2016년 tvN 드라마 ‘도깨비’의 회당 제작비는 9억원, 2018년 tvN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은 16억원, 2020년 SBS ‘더 킹: 영원의 군주’의 회당 제작비는 20억~25억원이 든 것으로 업계는 추산하고 있다.

치솟는 제작비를 감당하기 위해선 결국 광고·협찬의 의존도가 커질 수밖에 없는 구조다.

실제 국내 방송사업의 매출구조는 광고·협찬이 차지하는 비중이 절대적이다. 지난 2019년 기준 지상파의 경우 방송사업 전체 매출의 42%, 일반 프로그램 제공자(PP)는 59.3%가 광고·매출에서 발생했다.

반면 방송사들이 플랫폼사에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받는 ‘프로그램 사용료’ 매출은 2015~2019년 기간 연평균 1.8% 성장하는 데 그쳤다. 2015년 7713억원인 사용료 매출은 2019년 8279억원을 보이고 있다.

콘텐츠 투자비는 해마다 약 1000억원씩 증가하지만 프로그램 사용료는 10분의 1 수준인 매년 110억원가량이 증가하는 데 그치고 있는 셈이다.

2019년 기준 연간 프로그램 제작·투자비(2조4749억원) 대비 프로그램 사용료(8279억원)의 비중은 33.4%다. 미국 PP의 경우 콘텐츠 투자비 대비 프로그램 사용료 비중이 122%에 이르고 있다는 점과 비교하면 큰 차이다. 미국 PP가 콘텐츠에 대한 공격적인 투자가 가능한 것도 광고·협찬 의존도가 낮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결국 협찬·광고 없이는 이익창출이 쉽지 않은 국내 방송 환경 구조는 투자 위축, 글로벌 경쟁력 약화의 악순환으로 이어진다는 지적이 나오는 것도 이 같은 이유다.

“제값도 모르니…” PPL 내몰린 ‘K-콘텐츠’ 그림자 [IT선빵!]
[123rf]

“값도 모르고 물건부터 주는 기이한 구조”

방송업계에서는 합리적인 콘텐츠 가치 책정을 위해 ‘선공급 후계약’ 관행이 개선돼야 한다는 요구가 커지고 있다.

현재는 PP가 플랫폼사에 콘텐츠를 먼저 공급하고 계약을 나중에 맺는 구조다. PP사업자들은 이미 상품을 모두 공급한 후에 사용료를 협상해야 하기 때문에 협상력이 현저히 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토로한다. 방송업계 관계자는 “물건값을 모르고 제품을 먼저 제공하는 ‘기이한’ 구조인 셈”이라고 설명했다.

이는 넷플릭스와 같은 글로벌 기업의 경우, 콘텐츠 가치를 선지급해 투자 환경을 조성하고 있는 것과도 차이를 보인다.

국회에서도 이 같은 관행을 개선하기 위한 움직임이 본격화되고 있어 향후 논의가 주목된다.

국회 과학기술정보통신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정필모 의원과 국민의힘 정희용 의원은 ‘선공급 후계약’을 금지하는 내용을 담은 ‘방송법 일부 개정안’을 각각 발의한 상태다.

정 의원은 “콘텐츠사업자가 프로그램 사용료에 대한 수입 규모를 예측할 수 없어 콘텐츠에 대한 제작·투자계획을 수립하기 어렵다”며 “유료방송시장의 생태계 발전이 저하되고 글로벌 시장경쟁력이 약해질 수 있다”고 법안 제안 이유에 대해 설명했다.

정 의원은 “협상력이 약한 PP에게 불리한 내용의 계약을 강요하거나 계약마다 그 내용이 달라 분쟁의 소지가 상존하고 있다”며 “계약이 체결되지 않았거나 계약 기간이 만료된 경우에도 정당한 사유 없이 방송 프로그램 공급을 요구하는 행위가 지속되고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