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 정부서 권장한 임대등록 따랐던 임대사업자 지금은 하소연만
받는 돈은 그대로인데 세금 급증에 매각 압박까지
“정부 사기죄로 고소하고 싶다” 분노도
[헤럴드경제=최정호·이민경 기자] “세입자에게 쩔쩔매고, 정부에 세금 뜯기고, 이제는 집값 올린 원흉으로 적폐가 됐다. 은행의 집을 관리하는 바지사장이 됐다.”
정부와 여당의 임대사업자등록제도 폐지 방침 소식이 알려지자 한 인터넷카페에 올라온 글 일부다. 세제 혜택을 조건으로 임대기간과 임대료에 제한을 두는 임대사업자제도를 따랐던 이들이 하루아침에 ‘부동산 가격급등의 원흉’으로 몰리자 쏟아진 민심이반의 소리다.
수원에 사는 50대 임대사업자 A씨는 요즘 잠 못 드는 날이 많다. A씨는 5년 전 1층에 상가가 있는 5층짜리 다세대 주택 하나를 마련했다. 이 건물은 A씨의 전 재산이고, 월세 수입은 소득의 대부분이다.
하지만 지금 A씨는 본인 주택 1채 외 21채 보유자로 낙인찍혔다. 김현미 전 국토교통부 장관 시절 ‘임대사업자로 등록하라’는 정부의 방침에 따라 4년 단기 임대사업자로 등록했다. 문제는 정부가 갑자기 임대사업자제도 폐지를 들고나오며 시작됐다. 개인 임대처럼 가격도 마음대로 올리지 못하는데 각종 세제 혜택을 축소하거나 폐지한다니, 이제는 다달이 받는 임대료로 종부세와 재산세를 내지 못할 형편이 된 것이다.
급한 마음에 지난해 LH(한국토지주택공사)에 매입을 신청했지만 '통 건물 매입'이 원칙인데 1층 근린생활시설 상가가 있어 매입 대상이 아니라는 회신을 받았다. 그래도 팔겠다면 건물 가격에서 빼고 주겠다고 했다. 안 그래도 다세대주택은 시세의 60%밖에 값을 쳐주지 않는데 상가 부분은 사실상 '헌납'을 해야 한다니 '사유재산 강탈'이라고 느꼈다. 8월부터는 전세보증보험에도 가입해야 하지만 건물 전체의 공동 담보대출 6억원 때문에 가입도 안 된다. LH에 다시 한번 전화했지만 올해 원룸 확보는 충분하다면서 매입 자체가 거절됐다. 한마디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다.
A씨는 “하다 하다 안 되면 파산해버릴까 하는 생각이 다 들 정도”라며 "하지만 그러면 세입자인 신혼부부와 사회초년생들이 무슨 죄냐"고 한탄했다.
또 다른 임대사업자 B씨는 “그동안 5% 상한제, 4년 기본 거주 지키며 손해본 것에 대해 정부를 사기죄로 고소하고 싶다”며 분을 참지 못했다. B씨는 작은 연립주택에서 나오는 월세를 생활비로 충당해왔다가 정부의 매각 압박과 보유세 인상 사이에 갇혀 이도 저도 하지 못하는 상황이 됐다. 그나마 집값이 올랐다 해도 그동안 들어간 유지비와 내야 할 양도세를 생각하면 답이 없다. 팔 경우 당장 사라지는 생활비도 걱정이다.
홧김에 건물을 허물고 땅으로 보유·매각을 검토했다가 포기한 경우도 있다. 땅값이 비싼 강남에 다세대 주택으로 임대사업자 신고를 했지만 지난해 7·10 조치에 말소되고 이제는 임대료보다 더 비싼 세금에 시달리는 C씨다.
하지만 이조차도 쉽지 않았다. 우선 건물을 허물자니 기존 세입자들에게 돌려줄 보증금이 한두 푼이 아니었다. 은행 대출도 대부분 막힌 상황이다. 결국 C씨의 선택은 임대료를 올려받는 것이 전부였다. ‘조세 부담 증가→임대료 상승’이라는 악순환의 시작이다.
많은 임대사업자는 여당이 검토 중인 수정안도 근본적인 문제 해결에는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다. 60세 이상에게만 생계형으로 인정하는 방안이나 아파트가 아닌 주택만 임대사업 대상으로 허용하는 것 모두 대상자만 약간 축소할 뿐, 누군가는 여전히 오락가락하는 제도 변경의 피해자가 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박승국 라이프테크 대표는 “아파트와 다세대·다가구시장은 분명히 다르다”며 지난해 7월 이후 임대사업자에 대한 정부의 태도 변화가 문제라고 지적했다.
박 대표는 “아파트 가격과 전셋값이 올랐다고 월세가 대부분인 다세대·다가구주택 임대사업자까지 몰아가서는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생계형 등으로 구분해 더 문제를 키우지 말고, 규제강화 이전으로 되돌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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