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영수 한양대 국제학대학원 교수
서울·도쿄의 집값 전망 비교
정부정책, 수급차이, 금리 등 차이 커
도쿄, 금리인상, 과잉 공급이 집값 꺾어
서울은 세대 수 대비 주택부족 심각
집값을 논할 때 일본 사례는 약방의 감초다. 집값 전망의 선험 잣대로 자주 등장한다. 십중팔구는 버블 붕괴 후 장기 하락했으니 한국도 비관적일 것이란 쪽이다. 실제 일본은 1991년을 꼭지로 지속해서 하락했다. 단, 평균의 함정이 있다는 건 알아야 한다. 입지·연한별로 역세권·신축 중에는 많이 오른 곳도 있다. 도쿄 등 3대 대도시는 올랐지만 지방권역은 평균을 낮췄다. 뚜렷한 양극화다. 2015~2020년 상승 반전한 공시지가도 평균보다 도시권 상승의 영향이 컸다. 2021년 발표된 공시지가는 다시 하락했다. 코로나19 영향이 수급에 영향을 끼쳤다. 경기회복과 올림픽 특수로 반짝 상승했지만 큰 방향은 침체가 지속되는 상황이다.
도시권인 도쿄만 따지면 얘기는 다르다. 변수가 다양해 고려할 게 많다. 인구구조 등 시대 변화를 가장 밀접하게 반영하는 공간이어서다.
서울 집값을 점치자면 도쿄와 비교하는 게 필수다. 양국 수도의 공통점과 차이점의 이해가 필요하다. 주지하듯 서울과 도쿄는 다르다. 도시경영·수급 차이·직주문화·금리 상황·선호 형태·매수심리 등 집값을 가름할 환경 변수에서 큰 차이를 보인다.
인구감소 시대로 접어들면서 저성장과 인구병(도시 인구가 감소하며 공동체가 소멸하는 현상)이 시작됐다는 이유만으로 서울이 도쿄와 같은 전철을 밟을지는 미지수다. 반대로 지금껏 닮았을지언정 향후 서울 상황이 달라지면 얼마든 다른 결과도 나올 수 있다.
먼저 도쿄 부동산 시세부터 살펴보자. 통계상 땅값(지가) 변동을 보는 게 유효하다. 도쿄 땅값은 드라마틱하게 변동했다. 버블경제 5년(1985~1990년)간 4배나 올랐다가 이후 고점 대비 급전직하했다. 토지 가격은 주거용·상업용 각각 50%대, 20%대까지 추락했다. 이후 2013년부터 올랐는데 현재 붕괴 직전과 비교해 절반가량 회복한 수준이다.
최근엔 최고가 경신 물량이 완판됐다는 소식도 나온다. 도쿄 안에서도 좋은 입지의 신축·맨션(아파트)이 시세를 이끈다. 반면 서울은 최근 상승세가 현격하다. 일본 버블을 떠올릴 만큼 폭등세다. 서울 아파트 중위가격은 2017년 6억원 돌파 이후 2021년 7월 10억원을 넘어섰다. 평균 연봉 대비 아파트값은 도쿄가 13.3배인 데 비해 서울은 18배나 된다. 일본 언론이 수도 비교를 통해 서울 집값을 비정상이라 평가한 배경이다(요미우리).
시세 비교만 보면 한국의 오늘은 일본의 어제와 닮았다. 버블경기 때 도쿄 집값도 단기 급등을 반복했었다. 눈길은 일본형 버블 붕괴처럼 인구 변화와 맞물린 장기·구조적 저성장의 현실화 여부로 쏠린다.
상황은 비관적이다. 한국의 잠재 성장률은 2%대로 축소됐다. 급격한 인구 문제로 연 2.3%까지 떨어졌다(피치·2021년). 버블 붕괴 후 2%대 중반이었던 일본과 닮았다. 저성장발 소득감소가 만성적인 수요감소형 디플레이션을 낳는다면 집값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저출산·고령화의 인구 변화가 수요 부족을 일으키는 건 자연스러운 흐름이다. 한국도 인구감소의 후폭풍이 본격화할 전망이다. 생산가능인구의 하락 전환은 일본이 1995년에 시작된다. 이때부터 복합 불황은 사실상 가시화됐다. 이후 경기가 그나마 되살아난 건 2013년 ‘아베노믹스 1.0’ 때부터다. 어림잡아 20년 불황이었다. 한국은 2017년부터 생산가능인구가 줄었고, 코로나19마저 발생하며 저성장 압박은 더 커졌다. 물론 한·일 양국은 산업구조가 ‘수출주도형 vs 내수확대형’으로 근본적인 차이가 크다는 점도 염두에 둬야 한다.
어쨌든 생산가능인구가 줄면 집값은 떨어질 것이란 가설이 우세하다. 디플레적인 구매감소 탓이다. 다만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 앞선 사례를 보면 다른 변수가 개입돼 집값을 떠받친 경우도 많다. 유럽처럼 자국 인구가 줄어도 이민이 많아지면 집값은 유지되거나 상승한다. 2010년 생산가능인구가 줄어든 캐나다는 최근까지 집값이 2배 올랐다.
유력한 건 세대 숫자다. 인구가 줄어도 세대가 늘면 내 집 마련 수요는 커진다. 즉 1인 가구는 집값을 떠받친다. 도쿄 집값도 마찬가지다. 2020년 도쿄의 1인 가구는 48.3%(331만호)나 됐다. 2000년(40.9%)보다 늘었다. 2040년(51.2%)엔 더 증가한다. 전체 평균(34%)보다 월등하다. 가족 밀도(세대당 인원)로도 도쿄23구는 1.6~1.79명으로, 기타 도쿄 지자체(2.2명 이상)보다 낮다. 23구에 쏠린 1인화를 뜻한다.
반면 한국의 1인 가구는 39.5%·910만호다(2021년 3월). 서울은 전체 세대(440만호) 중 42.2%(186만호)가 ‘나 홀로 가구’다. 2인 가구를 넣으면 283만호·64.2%에 달한다. 인구감소 속 세대 증가가 뚜렷하다. 특이한 차이로 일본은 청년인구의 도쿄로의 일극 집중이 계속적인 반면, 한국은 서울 전출이 늘었다는 점이다. 교육·취업을 위한 1인화의 서울살이가 쉽지 않다는 뜻이다.
공급 상황도 집값 전망을 가른다. 일본과의 차별화를 언급할 때 빠지지 않는 변수가 공급지표일 정도다. 즉 일본은 공급이 많았고, 한국은 적다는 논리다. 따라서 도쿄와 달리 서울은 ‘과부족형 집값 상승’이 자연스럽다고 본다. 실제 일본은 공급량이 엄청났다. 10년 단위로 1970년대 연평균 154만호, 1980년대 136만호, 1990년대 144만호, 2000년대 113만호를 공급했다.
두 자릿수로 줄어든 건 2010년대부터다. 불황이던 1990년대는 1980년대보다 더 늘었다. 공급폭탄은 인구변화를 만나 ‘집값 하락=인구감소’의 등식을 완성했다. 인구결정론이다. 공급 축소는 최근에야 본격화됐다. 2020년 수도권 신규 물량은 전년보다 13% 감소한 2만7228호로 떨어졌다. 3만호를 밑돈 건 1992년 이후 최초다. 2000년대 초반 8만호였으니 큰 폭의 하락세다. 도쿄23구 신축 맨션은 그중 1만호 정도뿐이다. 공급 축소가 최근의 도쿄 집값을 떠받친 것이다. 서울은 늘 신축 공급이 수요보다 적었다. 2005~2020년 연평균 3만6000여호가 공급됐는데, 실수요는 4만1000호로 분석된다(주택산업연구원). 해마다 만성적으로 공급 부족을 겪는 데다 상승 기대에 가수요·외지인까지 붙어 체감되는 주택 부족 상황은 더 크다.
또 다른 고려 변수는 금리 수준이다. 집값이 부담스럽긴 어디든 비슷하다. 후속 주자에겐 더 그렇다. 생애 최대의 거액 매수가 보통인지라 은행 대출이 없으면 자가 마련이 힘들다. 이때 중요한 게 대출금리다. 일본은 초저금리다. 엄청난 경기부양책조차 먹혀들지 않는 절대 저금리가 지속적이다. 30년 주택담보대출조차 1.3%대다. 대출 잔액의 1%를 소득세에서 10년간 공제까지 해준다. 이 정도면 임대료보다 원리금 상환액이 적을 수도 있다. 상식적이면 주택 매수가 맞지만 일본은 예외다. ‘부동산 신화’가 붕괴한 이후 주택 소유에 대한 부정론이 커지며 코로나19 이후 세계적인 집값 상승세에도 일본은 다소 비켜섰다. 최소한 과열 징후는 별로 없다. 주택 구매의 세대교체에 우호적인 저금리와 세제 혜택조차 안 먹혀든다는 의미다. 소유에서 사용으로의 인식 전환이 꽤 공고해진 셈이다. 그렇다면 집값 상승은 어렵다.
한국은 가장 긴요한 고비의 아슬아슬한 순간인 ‘고빗사위’에 섰다. 2030세대의 ‘영끌’ 매수가 화제지만 자포자기형 인생득도도 많다. 길게 봐서 고점론·폭락론에 선 MZ세대라면 서울 집값의 하향 반전도 불가피하다.
서울과 도쿄 집값이 동조화될 지 차별화될 지는 결국 앞으로의 대응에 달렸다. 지금처럼 정책 실패가 계속되면 예측은 무의미하다. 이미 시장이 정부를 이길 만큼 내성과 맷집이 세진 상황이다. 최종적인 승자가 누가 될지는 미지수나 혼란 초래·상대 박탈은 상당한 사회비용을 유발한다.
같은 맥락에서 일본 집값의 폭등락도 정책 실패로 귀결된다. 금리정책이 대표적이다. 일본은 1985년 플라자합의 후 내수진작을 위해 기준금리(재할인율)를 5.0%에서 2.5%로 낮춰 엄청난 유동성이 부동산에 쏠리는 과잉 폭등을 유발했는데 버블 붕괴 후에는 정반대로 불과 1년 만에 6.0%까지 올려 충격을 자초했다. 부동산융자 총량 규제도 한몫했다. 돈줄을 막으니 수요 감소·집값 하락은 본격화됐다. 공급정책도 실패했다. 불황이 예고됐음에도 지가 하락발 신규 건설을 유인해 공급 확대를 불러왔다. ‘토건 신화’로 경기회복을 노린 정책 당국의 실기였다.
최근엔 ‘콤팩트시티형’ 압축·고밀도의 도심 개발이 많아지면서 과거 대거 조성했던 신도시 상황을 더 악화시키고 있다. 도심에 공급을 늘리니 자족생활에 실패한 신도시엔 빈집이 늘어나는 공동화 현상이 가속화된다. 한국도 정책 실패를 면밀히 따져봐야 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