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래 급감에 매물 쌓인다지만…
‘급매’ 딱지 붙어도 실거래가보다 비싸
매도자>매수자 상황에도 호가는 ‘高高’
매도자·매수자 간 적정가격 눈높이 달라
[헤럴드경제=김은희 기자] “급매물이 나오면 거래하려고 몇 번 문의했는데 호가를 찔끔 내리고 급매라고 하더라고요. 매물이 쌓였다고 하는데 막상 가보면 가격은 그대로예요. 여전히 실거래가보다 비싸죠. 요즘 급매가 제가 생각한 급매는 아니네요.” (서울에 사는 30대 무주택자)
주택시장이 매수자 우위로 재편되고 있음에도 치솟은 호가가 쉽사리 내려오지 않는 모양새다. 장기간 이어진 집값 상승과 정부의 대출규제 강화로 거래가 쪼그라들면서 매물이 쌓이고 있지만 가격 추가 상승에 대한 집주인들의 기대감은 크게 꺾이지 않고 있어서다. 특히 서울 주요 지역을 중심으로는 높은 호가가 유지되면서 신고가 거래가 잇따르고 있다.
6일 KB국민은행에 따르면 이달 첫째주 전국 아파트 매수우위지수는 80.0으로 전주(84.2)보다 4.2포인트 내린 것으로 조사됐다. 10월 둘째주 100선 아래로 떨어진 이후 4주째 하락세를 이어가고 있다. 작년 11월 첫째주 78.0를 기록한 이후 1년 만에 가장 낮은 수치다. 매수우위지수가 100보다 작으면 매도자가 많은 매수자 우위의 시장이라는 의미다.
서울의 낙폭은 더욱 크다. 서울 아파트 매수우위지수는 지난 1일 74.0까지 떨어졌다. 매수세가 거셌던 올해 8월 최고 112.3을 기록했던 것과 비교하면 무려 40포인트 가까이 줄었다. 지난달 초부터는 특히 가파른 내림세를 보이고 있다.
다소 보수적으로 시장을 진단하는 정부 통계를 보더라도 시장이 매수자 우위로 바뀌어가는 분위기는 읽힌다. 한국부동산원이 발표한 11월 첫째주 서울 아파트 매매수급지수는 100.7로 9월 첫째주(107.2) 이후 8주 연속 하락세를 기록했다. 올해 4월 둘째주(100.3) 이후 6개월여 만에 최저치다. 특히 마포·서대문·은평구가 속한 서북권의 경우 99.8로 4월 말 이후 처음 100선 아래로 내려갔다. 적어도 수요가 공급보다 두드러지게 많았던 상황은 끝맺음된 셈이다.
그러나 현장에선 여전히 매수자가 협상 주도권을 가져오지 못하고 있다고 공인중개업계는 입을 모았다. 집주인들이 매도호가를 좀처럼 낮추지 않는다는 것이다. 매도가 급한 집주인 일부가 호가를 내리고 있지만 직전 실거래가와 비교하면 소폭 조정하는 수준에 불과해 매수자와의 희망가격 격차가 상당하다고 했다.
마포구 아현동 A공인중개사무소 관계자는 “최근 거래가 워낙 안 되다 보니 호가를 수천만원 낮춘 매물이 꽤 나와 있다”면서 “다만 층수나 향을 고려하면 직전 실거래가와 큰 차이가 없는 정도라 급매물을 찾는 수요자들도 큰 관심을 보이지는 않는 편”이라고 말했다.
적정가격에 대한 매도자와 매수자의 눈높이 차이가 크다 보니 거래는 체결되지 않고 있다. 매도자는 “집을 보러 오는 사람이 없다”고 토로하고 매수자는 “살 만한 집이 없다”고 울상 짓는 기묘한 상황이 연출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당분간 거래절벽 현상이 계속될 것으로 내다봤다. 특히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규제로 실수요자 중심의 중저가 아파트 시장이 타격받을 것으로 이들은 보고 있다. 호가도 일부 조정이 있겠지만 집값 상승요인이 여전한 데다 시장에서의 기대감도 커 하락세로 완전히 돌아서긴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김성환 한국건설산업연구원 부연구위원은 “주택가격 상승과 기존 대출규제 만으로도 무주택자가 집을 사기는 어려운 상황”이라며 “정부의 추가 규제로 돈줄이 막히면 매매거래의 상당한 제약 요인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부동산정보광장에 따르면 9월 서울 아파트 거래 건수는 2693건으로 8월(4188건)보다 35.7% 줄어든 연중 최저치다. 지난해 9월(3775건)과 비교하면 28.7%가 감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