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세는 ‘숏’? 아니, 난 롱패딩” 소비의 ‘분자화’…메가 트렌드 사라졌다 [언박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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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경제=이정아 기자] “시장을 이끄는 메가 트렌드는 없다”, “흐름이 없는 게 흐름”

최근 패션 브랜드 MD(상품기획자)들이 가장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은 바로 “올 겨울 패션을 끌고 가는 굵직한 트렌드가 뭐냐?”는 것이다. 패션업계의 최전선에 있는 그들이지만, 요즘 트렌드를 한 마디로 정의하기가 과거에 비해 어려운 탓이다.

미래를 예측하기가 힘들다기보다 소비자의 기호와 취향이 다양하고 깊어지면서 소위 ‘유행’이라고 하는 메가 트렌드가 사라진 것이 주요 원인이다. 덕분에 그들의 역할도 글로벌 패션 트렌드를 국내에 알리는 ‘전달자’의 역할을 넘어, ‘천변만화(千變萬化)’하는 소비자의 취향을 찾아내고 그에 맞는 제품을 내놓는 일이 관건이 됐다. 가히 백가쟁명 시대다.

그럼에도 입을 모으는 키워드는 바로 ‘나’다. 나의 선택이 곧 트렌드를 만든다는 설명이다.

“대세는 ‘숏패딩’ 아니다”…내가 사는 게 트렌드

지난달까지만 해도 패션업계는 복고를 새롭게 즐기는 경향인 ‘뉴트로’ 열풍에 따라 겨울철 패션 대표 아이템인 숏패딩이 유행을 선도할 것으로 전망했다. 이에 따라 패션업계는 앞다투어 숏패팅 신제품을 출시하며 고객 몰이를 준비했다.

그러나 올 겨울 35년 만의 강추위가 닥쳤던 지난 겨울보다 더한 혹한이 올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면서 숏패딩 못지않게 롱패딩과 긴 기장의 벤치파카를 찾는 수요가 크게 늘고 있다. 복종 간 벽이 허물어지고 캐주얼한 느낌이 강조되면서 롱코트나 무스탕코트, 항공점퍼로 불리는 블루종 등도 여전히 인기다. 업계의 전망이, 그들이 리드하고자 하는 유행이 예전만큼 대중들에게 먹히지 않은 것이다.

실제로 패션 플랫폼 판매 순위를 보면, 숏패딩 뿐 아니라 다양한 겨울 아우터가 인기를 끌고 있다. 온라인 패션플랫폼 무신사 스토어의 11월 4주차 아우터 순위에는 긴 기장의 패딩파카가 2위·11위·15위를 차지했다. 무스탕(13위), 롱코트(5·6·8·9·10위)를 찾는 소비자도 결코 적지 않다. 네파의 코트형 다운자켓인 ‘아르테 4 in 1 다운자켓’의 판매(11.15~21)는 전주 동기 대비 219% 증가하기도 했다.

“대세는 ‘숏’? 아니, 난 롱패딩” 소비의 ‘분자화’…메가 트렌드 사라졌다 [언박싱]
26일 무신사 아우터 주간 랭킹. 긴 기장의 패딩파카가 2위·11위·15위로 집계된다. 무스탕은 13위, 롱코트는 5·6·8·9·10위를 차지했다. [무신사]

지난 23일에도 무신사 스토어의 여성 고객 실시간 랭킹 1·2·3위를 차지한 제품은 롱패딩(커버낫 ‘RDS 롱 다운 파카’, 디스커버리 익스페디션 ‘레스터G 여성 RDS 구스다운 롱패딩’, K2 ‘여성 씬에어 클라우드 코트’)이었다.

아이돌 그룹의 패션 스타일이 ‘메가 유행’을 이끄는 5년 전과 달리 브랜드와 제품에 대한 소비자의 관심이 각양각색이라는 해석이다. 올해 한국복식학회지에 게재된 ‘소셜 빅데이터로 살펴본 스트리트 패션 네트워크 변화’ 연구 논문에서도 비슷한 내용을 확인할 수 있다. 지난 2010년에 온라인 상에서 ‘아이돌’, ‘스키니’, ‘레이어드’, ‘점프수트’와 함께 ‘연예인’ 키워드가 주목을 받았다. 당시 인기를 끌었던 빅뱅, 소녀시대, 2NE1 등 아이돌 그룹의 패션 스타일이 큰 주목을 받았던 것이다.

그러나 2020년에는 ‘롱패딩’, ‘숏패딩’, ‘유니섹스’, ‘친환경’, ‘뉴트로’, ‘테크놀로지’ 키워드가 새롭게 등장했다. 연예인이나 그들이 입는 의상이 아닌, 내가 필요한 의류 종류가 주요 검색어가 된 것이다. 업계 관계자는 “MZ세대 중심으로 옷을 바라보는 시선이 다양하고 좁아지고 깊어졌다”며 “이렇다보니 패션 플랫폼에서 세분화된 소비자 취향 맞추는 AI(인공지능) 추천 시스템 도입은 ‘기본’”이라고 말했다.

무조건 21호? 이제는 ‘맞춤’ 시대

이제 뷰티업계에서 ‘21호 파운데이션 신화’는 옛말이다. 예전에는 밝은 색의 21호와 다소 어두운 23호 중에 선택해야 했지만, 이제는 다양한 색상의 파운데이션 제품이 시중에 나와 21호를 찾는 고객 비중이 줄었다. 소비자들의 니즈가 극도로 개인화되면서 세분화된 시장에 맞춰 사용자의 피부 타입과 컨디션, 메이크업 취향에 따라 커스터마이징이 가능한 ‘맞춤형 화장품’을 내놓고 있기 때문이다.

소셜미디어(SNS)에서는 하얀 피부만을 선호했던 과거와 달리, 건강하면서도 나만의 개성을 살리는 화장법 노하우도 공유되고 있다. 최근 한 공중파 방송의 관찰형 예능에 출연한 여성 댄스 크루 ‘홀리뱅’의 리더 허니제이가 “저는 화장 톤을 오히려 낮춰서 해요”라고 했을 정도다. 화장을 전부 지우고 나온 허니제이의 얼굴이 오히려 더 하얘 방송 패널들이 놀라자 그가 한 말이었다.

“대세는 ‘숏’? 아니, 난 롱패딩” 소비의 ‘분자화’…메가 트렌드 사라졌다 [언박싱]
한 공중파 방송에 출연한 허니제이 모습. 화장을 지운 피부가 더 하얗다. [유튜브 ‘엠뚜루 마뚜루’ 캡처]

이처럼 소비자의 수요가 분자화 되다 보니 아모레퍼시픽은 아모레 성수에서 맞춤형 파운데이션 ‘베이스피커’ 서비스를 발빠르게 운영하고 있다. 아모레퍼시픽은 앞서 3D프린터를 이용해 소비자의 얼굴형·피부타입에 따라 즉석에서 마스크팩을 제조해 주는 서비스를 도입하기도 했다.

이니스프리는 종류가 무려 50가지에 달하는 파운데이션 라인 ‘마이 파운데이션’을 내놓았다. 피부 톤 뿐만 아니라 건성·지성 등 피부 타입에 따라 선택할 수 있도록 제품 라인업을 확대한 것이다. 베이지색만도 트루베이지·미디엄베이지·내추럴미디엄 등 세분화돼 있고, 민트그린(연두)·클리어옐로(노란)·퓨어라벤더(보라) 등 기존에 볼 수 없었던 색상도 볼 수 있다.

“대세는 ‘숏’? 아니, 난 롱패딩” 소비의 ‘분자화’…메가 트렌드 사라졌다 [언박싱]
니치향수 [신세계인터내셔날]

극소수의 취향을 만족시키는 고급 향수인 니치 향수 성장세도 심상치 않다. 조 말론 런던, 딥디크, 퍼퓸드말리, 톰포드 등 고가의 니치 브랜드 향수가 역대 판매량 신장을 이끌고 있기 때문이다. 조연실 롯데백화점 화장품 치프바이어(선임상품기획자)는 “내부 빅데이터 분석에 따르면 니치 향수를 구매하는 고객 중 20, 30대의 비중은 무려 45%에 달한다”며 “소수를 위한 향이라는 니치 향수의 콘셉트가 개인화와 차별화를 추구하는 MZ세대의 소비성향과 부합해 인기를 끄는 것으로 분석된다”고 말했다.

“대세는 ‘숏’? 아니, 난 롱패딩” 소비의 ‘분자화’…메가 트렌드 사라졌다 [언박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