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서경원] 유럽연합(EU)의 현대중공업그룹·대우조선해양의 기업결합심사 발표가 임박한 가운데 심사를 개시했던 2년 전 발표문이 재조명되고 있다. 이르면 EU가 양사 결합에 대한 불허 입장을 발표할 가능성이 크게 높아진 상황에서 EU는 2019년말 발표문을 통해 합병시 긍정적인 효과보다는 발생 가능한 부정적 영향을 조목조목 열거, 사실상 이 때 이미 승인 거부 입장을 분명히 한게 아니냐는 평가가 뒤늦게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EU 집행위원회 산하 경쟁당국은 2019년 12월 발표문을 통해 “EU 합병 규정에 따라 현대중공업지주의 대우조선해양 인수에 대한 심도있는 조사에 돌입했다”며 “위원회는 이번 합병으로 세계 선조(船造) 시장의 경쟁이 감소할 것에 대한 우려를 갖고 있다”고 밝혔다.
당시 마르그레테 베스타거 경쟁당국 부국장은 “화물조선은 EU의 중요한 산업으로 해운은 EU 화물무역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높은데, 유럽 해운사들은 현대중공업과 대우조선해양의 선박을 정기적으로 구입하고 있다”며 “그렇기 때문에 이번 합병이 화물선 건조 경쟁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쳐 유럽 소비자(발주사)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을지 신중히 검토할 것”이라고 말했다.
경쟁당국은 이를 통해 해운이 EU 역내 화물 무역의 30%를 차지하고 있고, 역외 화물 무역에서는 90%를 차지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유럽 해운사들은 양사의 주요 고객이며, 양사가 전세계 화물선 수요의 30%를 차지하고 있다는 점도 명시했다.
경쟁당국은 “예비시장조사를 통해 위원회는 이번 합병이 대형 컨테이너선, 유조선, 액화천연가스(LNG) 운송선, 액화석유가스(LPG) 운송선 등에서 대우조선해양이 갖고 있는 경쟁력을 소실시킬 수 있다는데 염려를 갖고 있다”며 “이 네 부문에서 여타 조선사들이 합병 법인에 대한 충분한 경쟁압력을 행사하지 못할 것으로 보이고, 고객(발주사) 입장에서도 충분한 ‘바게닝 파워(bargaining power ·협상력)을 확보하지 못할 수 있다는게 우려스럽다”고 지적했다.
이어 “위원회는 노하우, 관련 이력과 기술 면에서 선조 시장의 진입장벽이 높다는 것을 확인했다”며 “현 단계에서 다른 조선사들이 적시의 신뢰할만한 진입으로 이번 거래의 부정적인 영향을 상쇄시킬 가능성은 낮다는 결론을 내리게 됐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따라서 이번 합병은 화물선 시장의 경쟁을 크게 감소시킬 수 있으며 이는 가격 상승과 선택권 감소, 혁신 유인 축소로 이어질 수 있다”고 덧붙였다.
EU는 이로부터 2년이 넘는 동안 세 차례나 결정을 유보하며 기약 없는 심사를 지속했는데, 처음부터 승인에 회의적인 입장에 따른 시간끌기 전략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EU의 최종 결정이 결합을 승인하지 않는 쪽으로 날 경우 ‘자국 우선주의’ 논란이 다시 불거질 가능성이 있다. 정기선 현대중공업지주 대표도 지난 5일(현지시간)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가진 미디어 컨퍼런스에서 “대우조선해양 인수 결정은 우리 조선산업 체질을 개선시킬지에 대한 고민에서 시작됐다”며 “원하지 않아도 조선산업이 국가 대항전 형태로 진행되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