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토연구원, 공공임대 수요 추정치 발표
2020년 주거실태조사 결과 설문 추계
“다른 주거지원책 배제한 결과, 한계 인정”
[헤럴드경제=박일한 기자] ‘공공임대주택 수요가 394만여채에 달한다.’ 국책연구소인 국토연구원이 최근 내놓은 ‘소득수준과 생애단계별 공공임대주택 필요가구 현황 및 시사점’ 보고서의 결론이다. 꽤 놀라운 규모다. 우리나라 전체 전월세 거주자 규모가 691만5000가구인데, 이중 57.1%나 되는 394만4000가구가 공공임대주택 입주 의향이 있다는 연구결과이기 때문이다. 국내 공공임대 주택 재고량은 166만채 수준이다. 정부는 2025년까지 이를 240만채로 확대할 계획인데, 이 규모와 비교해도 150만채 이상 모자란다. 이런 연구결과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가 밝힌 공공임대주택 확대 공약에 힘을 보탠다. ‘여당에 힘을 보태기 위해 이런 연구결과까지 발표했다’는 음모론도 여러 사람들 입에 회자된다.
공공임대 수요가 정말 400만채 규모나 될까. 언뜻 납득이 되지 않는다. 일반적으로 전월세 거주자는 돈을 모아 집을 사고 싶어 하지, 공공임대에 들어가고 싶어 하지 않기 때문이다. 실제 관련 기사 댓글 중 가장 많은 ‘좋아요’를 받은 건 ‘국민들은 공공임대 말고 자가를 원한다’다.
당장 공공임대가 부족하다고 하지만 상황과 여건에 따라 툭하면 공실이 생기기 일쑤다. 최근 청약접수를 진행했다가 대거 미달이 생긴 인천 ‘더샵 부평 센트럴시티’, 전북 익산 ‘라송 센트럴카운티’ 같은 공공지원 임대주택이 대표적 사례다. 지난해 국회 예산정책처는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2020년 공급한 공공임대 7만2349가구 중 1만2029가구(16.6%)가 공실 상태라고 공개한 적도 있다.
국토연구원은 우리나라 전월세 거주자들의 60% 가까이 공공임대 수요자라는 결론을 어떻게 계산한 것일까. 국토교통부가 지난해 11월 발표한 ‘2020년 주거실태조사’ 결과를 활용했다. 전국의 4만9975가구를 대상으로 한 이 조사의 문항 중엔 ‘공공임대주택 입주 기회를 준다면 입주할 의향이 있으십니까?’가 있다. ‘그렇다’와 ‘아니다’ 줄 중 하나를 고르는 설문이다. 결과는 35.6%가 ‘그렇다’고 답했다. 그런데 여기엔 자가 거주 가구가 포함됐다. 이를 제외하고 ‘전세’, ‘월세’ 등 민간 임대거주자만 상대로 ‘그렇다’고 답한 비율을 뽑았더니 57%가 나왔다. 이걸 전국 전월세 거주 가구 691만5000가구에 대입하니 394만4000가구가 공공임대에 들어가고 싶어 한다는 숫자가 나왔다는 게 해당 연구자의 설명이다. 고개가 끄덕여지나?
먼저 ‘임대주택 입주 의향이 있다’는 것을 임대주택 수요로 판단하는 게 타당한지 따져야 한다. ‘당장 내 집을 마련할 돈이 없으니 조금 저렴하게 몇 년 살아보고 싶다’는 의미에 더 가까운 답변일 확률이 크기 때문이다. 잠시 거주 의향을 임대주택 수요로 보고 임대주택 공급을 대거 늘린다면 공실이 생길 게 뻔하다.
실제 같은 조사에서 전월세 거주자들을 상대로 필요한 주거지원 프로그램 1순위를 묻는 질문에 ‘주택구입자금 대출 지원’이 34.6%로 가장 높은 응답률을 차지했다. 그 뒤로는 ‘전세자금 대출 지원’(24.5%)이 따랐다. ‘장기공공임대주택 공급’은 11.6%에 불과해 ‘월세보조금지원’(9.8%)과 비슷한 수준이었다. 공공임대 공급보단 집을 사거나 안정적으로 전월세에 살 수 있도록 대출을 더 해 달라는 요구가 많다는 뜻이다.
‘2020년 주거실태조사’엔 ‘내 집을 보유해야한다고 생각하십니까?’란 질문도 있다. ‘그렇다’고 답한 비율이 87.7%나 된다. 자가 소유 가구를 제외하고, ‘전세’ 거주자의 82%, ‘보증금 있는 월세’ 거주자의 72.4% 등이 ‘내 집을 꼭 보유해야 한다’고 답했다. 전월세 거주자 중 최소 75% 이상이 ‘집을 반드시 보유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이를 근거로 ‘우리나라 신규 주택 매매 수요가 518만채(전월세 거주 691만5000가구의 75%)’라고 결론을 내리면 어떤가. 따라서 더 많은 전월세 거주자들이 집을 보유할 수 있도록 공급을 대폭 늘리고, 대출을 완화해야 한다고 하면 더 설득력이 있지 않나?
이길제 국토연구원 부연구위원은 “‘공공임대주택 수요 394만채’라는 연구결과는 다른 주거지원 프로그램을 고려하지 않은 것”이라며 “입주의향을 통해 공공임대주택 정책 대상 규모를 뽑으면 과다하게 추정될 가능성이 있다”고 한계를 인정했다. 그는 “공공임대주택에 대한 입주의향이 있더라도 대출 등 다른 주거지원 프로그램을 더 필요로 할 수 있다”고 했다.
그렇다면 이렇게 한계가 명확한 연구를 왜 했을까? 정부가 공공임대 정책에 국책연구원을 이용한 것일까? 또다시 새로운 질문이 꼬리를 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