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각국의 헌법 탄생 과정 담아

헌법과 함께 탄생한 美, 운용 탁월

프랑스, 혁명·필요에 따라 바꾸기도

근본 규범 성격 갖지만 절대적 아냐

성숙한 헌법 관행, 현실정치서 확인 가능

[북적book적]근대와 함께 탄생한 헌법, 우리시대에 맞는 걸까
“헌법은 인간의 보편적 권리를 보장하는 장전이기 이전에, 그 국가의 고유한 정치적 특성을 드러내는 문서다. 헌법을 읽는 것이 그 나라를 이해하는 하나의 지름길이라는 믿음이 깔려 있다.”(‘헌법의 탄생’에서)

국가 체제와 주권,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담은 헌법은 근대 민주주의의 초석으로, 오랜 투쟁의 산물이다. 모든 법은 헌법 안에서 이뤄져야 하고, 그래서 헌법은 항상 옳음, 정당함의 잣대로 여겨져왔다. 그렇다면 헌법은 절대적인 걸까?

변호사 차병직은 역저 ‘헌법의 탄생’(바다출판사)에서 시간이 지나면서 헌법도 흔들리는 조짐을 보인다고 말한다. 헌법적 정의와 자연법적 정의 사이에서 균형을 잃기 시작한 것이란 지적이다. 헌법이 모든 것을 해결해 줄 수 없음에도 마치 완벽하고 이상적인 정치 현실을 가능케할 것처럼 잘못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북적book적]근대와 함께 탄생한 헌법, 우리시대에 맞는 걸까

저자에 따르면, 현실 정치가 불안정하고 불만인 것은 헌법 때문이 아니라 헌법이 제대로 실현되지 못하는 현실정치 때문이다. 성숙한 헌법적 관행은 헌법 문구에 있지 않고, 현실 정치 행위 속에서 확인되며 여기에는 정치인 뿐만 아니라 헌법의 수호자인 국민도 포함된다는 것이다.

혼란스런 정치의 계절, 헌법을 다시 읽어내야 하는 이유다. 헌법은 잘 알려진대로 근대 혁명과 함께 탄생했다. 주권이 1인에서 국민으로 바뀌는 혁명의 과정에서 권력기관을 설정하고 권력을 제한하는 완전히 새로운 규범, 즉 헌법 제정이 요구됐다. 근대 헌법은 이런 “주권 혁명의 가치를 담은 보증서”였다.

저자는 헌법 정신이 탄생한 영국의 대헌장(마그나 카르타)부터 인간의 권리를 명시한 프랑스 인권 선언, 헌법 제정과 동시에 탄생한 최초의 국가인 미국의 독립 선언 과정, 독일의 근대화 과정을 담은 존더베크와 기본법, 대한민국과 북한의 헌법 탄생 과정, 라틴아메리카와 이슬람 문화권까지 세계 각국의 헌법의 탄생 과정을 담아냈다.

국민과 정부 간의 권력 관계를 바꾼 영국의 대헌장은 미국 등 수많은 국가에 헌법을 만드는 초석을 제공했다. 영국이 헌법의 정신을 낳았다면 미국은 바로 헌법의 육체를 만들었다. 헌법이라는 이름으로 조문을 만들고 기록해 누구나 읽을 수 있고, 호주머니에 넣고 다닐 수 있는 유형의 규범을 처음으로 만들어낸 것이다. 또한 성문화된 최고법을 만들면서 대통령이라는 직책도 창안했다. 혁명을 통해 국가의 정체가 바뀌면서 헌법이 마련된 게 아니라 헌법의 제정과 동시에 그 땅에서 최초의 국가가 탄생한 것이다. 미국 헌법은 타협의 산물라는 점에서도 다르다.

저자는 “좋은 헌법을 가진다고 국가가 훌륭해지고 국민이 행복한 삶을 누리는 것이 아니다”며, “미국이라는 국가나 정치 또는 헌법이 칭찬을 받는 것은 헌법 때문이 아니라 헌법의 운용 때문”이라고 강조한다.

헌법은 흔히 기본권과 통치구조 두 부분으로 나뉘는데, 프랑스 헌법에는 기본권 조항이 없다.1789년 인권 선언에서는 기본권에 해당하는 인간과 시민의 권리를 명시했지만 1791년 최초의 헌법에는 빠졌다. 인권 선언을 암묵적으로 전제하고 있다는 해석이다.

프랑스대혁명 이후에도 프랑스는 수차례의 혁명과 쿠데타를 거치며 국체가 바뀌고 새로운 헌법이 생겨났다.

저자는 헌법을 절대적으로 여기지 않고 국가 운영에 필요한 수단으로 여기며, 헌법이 국가의 모든 것을 좌우한다는 경직된 가치관에 얽매이지 않는 점을 프랑스 헌법만의 특징으로 제시한다. 필요에 따라 만들고 때로 혁명으로 바꾸기도 하는 게 헌법이라는 것이다.

일본과 한국의 모델이 된 독일의 헌법은 좀 다른 과정을 밟는다. 20세기 들어서야 만들어진 독일의 헌법을 일부에선 독일의 근대화가 특수한 노선을 걸어왔다는 ‘존더베크’ 이론으로 설명한다. 다른 길, 특수한 길이란 뜻의 존더베크는 독일의 역사가 일종의 ‘야만의 늪’에 빠졌다가 독특한 과정을 걷게 됐다고 본다.

저자는 이와 관련, 독일에 근대적 헌법이 없었던 것은 근대적 정치가 없었던 때문이라며, 독일의 독특한 정치와 헌법 현상은 존더베크 때문이 아니라 그 결과를 존더베크로 이해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이를 독일 제국 헌법과 헌법 바깥에 존재한 정당, 제1차세계대전과 독일혁명, 바이마르 헌법으로 이어지는 역사를 저자는 굵직하게 짚어간다.

일본 헌법에서 가장 논란이 많은 9조, 평화조항도 살폈다. 이 조항이 어떻게 들어가게 됐는지 수호와 개정 논란에도 자위대 인정 등 논란들을 살피며, 이 조항이 실제 일본의 국가 경영에는 장해가 되지 않는다는 점을 지적한다. 세계 3위의 전력을 자랑하는 자위대는 선제적 자위권 개념으로 빠져나가는 게 가능하다.

저자는 헌법은 기본법이기도 하고 근본 규범의 성격을 갖지만 그 자체로 절대적 가치나 의미를 갖지는 못한다는 점을 누누이 강조한다. 헌법의 이념이나 원칙은 근대 국가의 원리라는 범위에 한정하며 공동체의 실질이 먼저고 근본적 규범은 다음이란 얘기다. “사회의 상황 특히 경제적 사정과 조건에 따라 공동체의 실체가 변하면 근본 규범도 바뀐다.”

저자는 인간 정신의 확장· 변화와 함께 새로운 규범을 담아 탄생한 헌법의 정신과 운용, 한계를 각국의 헌법을 통해 폭넓게 살피면서 우리시대에 맞는 새로운 헌법의 필요성을 조심스럽게 제기하는 듯하다.

이윤미 기자/meelee@heraldcorp.com

헌법의 탄생/차병직 지음/바다출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