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기업 해외매출 중 중국 비중 60% 넘기도
조 바이든 美 대통령 반도체 법안 서명
韓 ‘칩4’ 예비회의 참여 등 中 보복조치 가능성 높일지 업계 주목
업계 “리스크 줄일 방안 찾아야”
[헤럴드경제=문영규 기자] 반도체 산업을 중심으로 미국과 중국 간 경제안보를 둘러싼 외교전쟁이 심화하고 있다. 극도로 고조된 긴장관계는 다소 완화했지만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의 ‘반도체 산업육성법’ 서명과 미국 주도의 반도체 연합 ‘칩(Chip)4’ 참여 논의가 이어지며 기업들은 여전히 중국의 보복조치에 대한 불안감을 감출 수는 없다. 특히 해외매출 중 중국 비중이 높은 국내 전자기업들은 매출감소에 대한 우려가 크지만, 현실적으로 정부의 외교력에 기댈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10일 삼성전자 등 각 사 사업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삼성전자의 해외법인 매출(국내매출 제외) 중 중국 비중은 19.3% 수준이다. 미국 지역 매출 비중인 41.5% 보다는 크지 않지만 무시할 수 없는 비중이다.
직·간접적 무역조치 가능성이 있는 반도체 기업인 SK하이닉스의 중국 매출 비중은 37.9%였다. 미국 비중인 41.3%와 비슷하다.
다른 전자부품업계는 미국 매출보다는 중국 매출이 압도적으로 많다. 삼성전기의 중국 매출 비중은 58.7%, 미국 매출은 7.5% 정도였다. LG디스플레이는 중국 매출이 67.9%를 차지했고 미국 비중은 11.2%였다. 다만 LG이노텍은 해외 매출 중 중국 매출이 50.2%였으나 국내 매출이 많고 전체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미미하다. 가전업계인 LG전자는 5.5%에 그쳤다. 미국 비중은 37.6%로 많았다.
9일(현지시간) 바이든 대통령이 서명한 반도체 산업육성법은 총 2800억 달러(약 366조원)를 들여 미국 내 반도체 공급망을 재구축하는 법안이지만 중국의 ‘굴기’를 저지하고 반도체 패권을 되찾기 위한 미국의 의지가 담겨있기도 하다.
바이든 대통령은 법에 서명하며 “중국 공산당이 법안 통과를 저지하기 위해 로비에 나선 것도 이상한 일이 아니다”며 중국을 직격하기도 했다.
최근 낸시 펠로시 미 하원의장이 한국과 대만을 방문하며 한껏 고조됐던 긴장관계가 조금 완화된 분위기지만 한국이 칩4 예비회의 참석을 밝히며 사실상 참여로 기울어지고 미국의 반도체 지원법과 투자제한 규정 등으로 중국을 압박한다면 중국의 보복조치 가능성도 예상된다.
도현우 NH투자증권 연구원은 “중국은 한국 메모리 반도체 수출에서 74.8%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최대 시장”이라며 “칩4를 크게 경계하고 있는 중국이 한국에 대한 제재를 할 경우 부정적일 수 있다”고 예상했다.
그는 중국이 메모리 반도체를 대부분 수입에 의존하고 있고 한국 비중이 44.9%로 높아 국내 기업에 대한 직접 규제를 가할 가능성은 낮다면서도 “삼성전자 시안 낸드 팹(공장)과 SK하이닉스 우시 D램 팹 운영 규제 등 여러 형태의 간접 규제가 가능하다”고 판단했다.
이같은 간접 규제가 반도체뿐 아니라 전자 업계 전반으로 확산할 경우 업계는 제2의 사드사태를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윤석열 대통령은 “국익을 잘 지켜내겠다”고 했고 한중수교 30주년을 맞아 박진 외교부 장관은 9일 왕이 중국 외교부장과의 회담에서 “칩4는 특정 국가를 배제하거나 겨냥하려는 의도가 없다”고 긴장 완화에 총력을 기울이는 모양새지만 기업들은 말을 아끼며 숨죽이는 중이다.
업계 한 관계자는 “미국과 중국에 사업이 다 걸쳐 있는 업계 특성 상 어떤 결과가 나올지 예민하게 지켜보고 있는 수준”이라고 말했다.
최대 우방국인 미국 주도의 정책을 따르지 않을 수 없고 그렇다고 당장 최대 교역국인 중국과의 관계를 무시하기 어렵다. 리스크를 줄이기 위한 ‘제3의 길’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중국 관영매체 환구시보는 사설을 통해 “한국이 부득이 합류해야 한다면 균형을 잡고 시정하는 역할을 하기를 기대한다”고 전했다.
업계 다른 한 관계자는 “미국과 중국이 이렇게 대치하는 상황에서 칩4에 참여하지 않는 것 자체도 리스크”라며 “예비회의를 통해 각국 의견을 조율하고 세부사항을 논의하겠지만 이제는 정말 외교력의 문제가 아닐까 한다”고 강조했다.
이 관계자는 “칩4에 참여하되 피해를 줄일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것이 최선”이라며 “중국 투자 제한을 두지 않는 방안 등도 고려해볼 수 있을 것 같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