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 “기업인 경제발전 기여할 것”
사면, 대내외적 악화 경제상황 등 고려
이재용, 취업제한 사라져…대규모 투자 속도
신동빈, 해외투자 등 탄력받을 것
[헤럴드경제=문영규·신소연·김지헌 기자]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등 기업인들이 12일 국무회의를 통해 광복절 특별사면 대상에 올랐다. 이 부회장은 오는 15일 사면(복권)이 시행되면 취업 제한 등 경영상 법적 제약이 사라지게 된다. 아직 진행 중인 재판 때문에 사법리스크는 여전히 남아 있지만 경영을 위한 행보는 지금보다는 빨라질 것이란 관측이다. 재계는 이번 사면을 크게 환영하며 글로벌 경기 둔화, 미국과 중국 간 패권경쟁, 국가 이벤트 유치 등 여러 과제를 앞두고 경제성장·안보 등에 기여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경제인 4명 사면, 재계 “국가경제 발전 나설 것” 기대=법무부는 이날 경제활성화를 통한 경제위기 극복을 위해 최근 형 집행을 종료한 이 부회장을 복권하고, 집행유예 중인 신동빈 회장을 특별사면 및 복권키로 했다.
장세주 동국제강 회장과 강덕수 전 STX그룹 회장도 사면 대상에 포함됐다. 법무부는 회사 운영 관련 범행으로 복역했으나 집행유예 확정, 피해회복, 회사 성장의 공로 등을 참작해 경제발전에 동참하는 기회를 부여한다고 설명했다. 박찬구 금호석유화학 회장, 이중근 부영그룹 회장 등은 포함되지 않았다.
사면을 여러 차례 요청해온 재계는 이번 광복절 사면에 대해 환영하며 기업인들이 경제발전에 더욱 적극 기여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대한상공회의소는 논평을 통해 “광복절 특별사면을 통해 주요 기업인의 사면·복권이 이뤄진 것을 환영한다”며 “이번에 사면된 분들이 경제위기를 타개하고 국가의 미래 번영을 이어가기 위해 기업인으로서 역할과 책임을 다해줄 것”이라고 전했다. 다만 “사면 폭이 크지 않은 것은 아쉽다”고 평했다.
한국경영자총협회는 “글로벌 경제 복합 위기와 주요국들의 패권경쟁 격화로 인한 국가적 위기상황에서 기업인들이 경영 일선에 복귀해 국민경제에 헌신할 기회를 준 대통령의 특별사면 결정을 적극 환영한다”며 “이번 사면이 경제활력 회복을 위한 기업 투자활성화라는 기업인 사면 본래의 취지뿐만 아니라 범국가적 과제인 국민통합을 이루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재계 한 관계자도 “최근 대내외 경제 여건이 어려운 복합 위기상황에서 경제인이 다시 뛸 수 있도록 기회를 준 점에서 크게 환영한다”며 “위기극복을 위해 민간경제의 활력 제고가 무엇보다 중요한 시점임을 고려할 때 경제인들도 이러한 국민적 기대에 부응해 적극적으로 국가경제 발전에 나설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삼성그룹은 이번 사면에 대해 최대한 표현을 자제하며 말을 아끼고 조심하는 눈치다.
재계에서는 기업인들의 정상적인 경영활동을 보장하고 국가경제에 기여하기 위해 사면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를 내왔다. 대한상의, 전경련, 경총, 한국무역협회, 중소기업중앙회, 한국중견기업연합회 등 재계단체는 지난 4월 문재인 전 대통령 퇴임 직전 기업인들의 사면을 건의하기도 했다.
▶경기둔화·여론 고려…취업 제한 사라진 이 부회장=이번 사면은 글로벌 금리인상, 물가상승, 소비둔화, 무역수지 적자 등 대내외적 경제상황 악화가 이번 결정의 배경이 됐을 것으로 풀이된다. 반도체·배터리 등 국가 핵심 전략산업이 경제안보에 중추 역할을 할 뿐 아니라 2030부산세계박람회 유치 등과 같은 국가적인 이벤트 유치도 고려된 것으로 보인다.
특히 이 부회장은 최근 한 여론조사에서 사면 찬성에 대한 여론이 77%에 이르는 등 국민적인 요구도 높았다. 이는 지난 2009년 고(故) 이건희 전 삼성그룹 회장의 사면 당시 여론조사 결과인 47%보다도 높은 수치다.
이 부회장은 지난 박근혜 전 대통령 정부 시절 ‘국정 농단 사건’에 연루돼 징역 2년6개월을 선고받고 지난해 8월 가석방됐다. 지난달 29일 형기를 마치고 ‘자유의 몸’이 됐으나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5년간 취업이 제한됐다.
가석방 중이었던 탓에 공개적인 경영행보를 이어가기는 힘들었다. 특히 취업 제한 때문에 무보수·비상근 상태로 있어야만 했고, 오너로서 할 수 있는 중요한 의사결정을 하기는 어려웠다. 고(故) 이건희 전 삼성그룹 회장이 별세한 이후에도 부회장 타이틀은 유지됐다.
이 부회장은 이번 사면을 통해 판결로 잃었던 권리를 되찾았다. 사면법으로 규정한 복권은 유죄를 선고받아 정지된 자격을 회복시켜 주는 조치로, 형 집행 종료 및 집행 면제를 받은 경우에만 이뤄진다.
▶이 부회장, 경영활동 보폭 넓힐까=업계에선 이 부회장의 사면으로 글로벌 네트워킹을 활용한 경영활동 보폭 확대에 기대를 거는 분위기다. 이 부회장은 지난해 11·12월과 올해 6월 출장을 통해 글로벌 정보기술(IT)·통신기업인들과 교류하고 최첨단 반도체기술력 확보를 위해 직접 발로 뛰었지만 반도체·바이오·6G 등 미래 먹거리를 위해서는 더욱 과감하고 신속한 경영행보가 이어질 필요가 있다는 주문이 제기됐다.
특히 최근 국가안보 자산으로 부각되고 반도체산업에서 삼성의 역할에 기대를 거는 목소리 역시 커지고 있다. 반도체를 비롯한 신사업 관련 대규모 인수·합병(M&A)을 위해서는 그룹총수의 의사결정이 필요하다. 시장에서는 삼성전자가 지난 2017년 하만을 인수한 이후 대형 M&A가 없었다는 점을 우려하기도 했다.
삼성전자는 최근 외부 인재를 수혈하며 M&A 기대감을 키우고 있다. 디바이스솔루션(DS) 부문에서 다수의 글로벌 반도체기업에 대한 투자 자문 이력이 있는 마코 치사리를 반도체혁신센터장으로 영입했다. 애플 출신 김우평 부사장을 패키징솔루션센터장으로, 인텔 출신의 슈퍼컴퓨터 전문가 로버트 위즈네스키를 부사장으로 각각 선임하기도 했다. 삼성전자 신수종 사업발굴을 위해 디바이스경험(DX) 부문 산하에는 신사업 TF장으로 최근 정성택 부사장을 영입했다.
오정근 한국금융ICT융합학회장은 “반도체나 바이오기술력이 앞서가고 있지만 절대 안심할 수 없는 상황”이라며 “치열한 글로벌 기술경쟁에서 앞서 나가는 데에 이 부회장의 사면 복권이 중요한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신동빈, 투자·해외 사업 가속화=신 회장이 이번 사면으로 글로벌 경영활동에서 제약이 해소된 만큼 롯데그룹의 해외 사업도 가속화할 것으로 보인다. 롯데케미칼과 롯데건설은 각각 인도네시아와 베트남에서 사업을 본격 추진하고, 최근 미국 시카고 ‘킴튼 호텔 모나코’를 인수한 롯데호텔도 글로벌 호텔로서 브랜드파워를 강화한다. 신 회장을 중심으로 한 2030부산세계박람회 유치 지원활동도 탄력을 받을 전망이다.
투자활동에도 속도가 날 전망이다. 롯데는 지난 5월 향후 5년간 신성장 사업인 ▷헬스 앤드 웰니스 ▷모빌리티 ▷지속 가능성 부문 등에 총 37조원 규모의 국내 투자계획을 발표했다.
특히 롯데바이오로직스는 1조원 규모의 국내 공장 부지 후보군을 검토 중이다. 롯데 유통사업군 역시 인천과 서울 상암 등에 지역 랜드마크가 될 수 있는 대규모 쇼핑몰사업을 추진 중이다. 롯데는 이를 통해 지역경제 활성화 및 고용창출 효과를 기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