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장실 점거 100일 넘어…노조, 게릴라 파업 예고도
회사 측, “공동교섭 요구는 특별공로금 때문” 선 그어
하반기 업황 부진 우려…최고 경영판단에 장애물 산적
“정부가 노사관계 불법 행위 엄단해야” 목소리 커져
[헤럴드경제=원호연 기자] 노동조합의 400만원 특별공로금 지급 요구가 현대제철을 미궁 속으로 몰아넣고 있다. 노조가 100일 이상 사장실을 무단으로 점거하며 게릴라 파업까지 예고하고 있지만, 정부의 미온적인 태도로 인해 회사 측은 속수무책이다. 하반기 철강업계 업황마저 꺾일 것으로 전망되면서 현대제철의 경영환경은 갈수록 악화할 것으로 보인다.
11일 철강업계에 따르면 현대제철 노사는 2022년 임금 및 단체협약(임단협) 협상 방식을 놓고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 5개 노조 지회(당진·당진하이스코·순천·인천·포항)는 회사 측에 공동교섭을 요구하며 9차례에 걸쳐 일방적으로 교섭 일정을 통보했다. 회사 측이 이에 응하지 않자 노조는 ‘교섭 해태’로 규정하며 게릴라 파업을 예고했다. 일시와 장소, 방법 등을 사전에 알리지 않고 파업을 진행하겠다는 얘기다.
현대제철 관계자는 “현재 당진지회는 통상임금과 관련된 합의가 이뤄지지 않았고, 나머지 지회와 임금체계가 달라 공동교섭이 어려운 상황”이라며 “상황을 뻔히 아는 노조가 공동교섭을 고집하는 것은 결국 5개 지회가 한자리에 모여 특별공로금 400만원 지급을 회사 측에 압박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현대제철 노조는 현대자동차와 기아, 현대모비스가 지급한 직원당 400만원의 특별공로금을 현대제철에도 적용할 것을 주장하며 지난 5월 2일부터 당진공장 내 사장실 점거를 이어오고 있다.
현대제철은 경찰에 노조 집행부 등 50여 명을 특수주거침입 및 업무방해, 특수 손괴 혐의로 고소했다. 경찰이 회사 측에 대한 고소인 조사는 마쳤지만, 노조 집행부는 일정 조정 등으로 조사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 현대제철 관계자는 “최근 노사 문제에 대한 사회 분위기상 자체적으로 점거를 풀기는 쉽지 않고 정확한 피해 상황을 집계해야 소송 등 다른 절차를 진행할 수 있다”며 “그런데도 경찰은 생산시설이 아니라는 이유로 공권력 투입을 주저하고 있다”고 전했다.
노조가 사장실을 점거하면서 당진공장을 찾아 현장 점검을 해왔던 안동일 사장은 100일 넘게 현장경영을 하지 못하고 있다. 사장실 점거가 당장의 생산 차질로 이어지지 않더라도 현장 상황에 기반한 빠른 경영 판단을 방해한다면 현대제철의 제품 및 가격 경쟁력에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다.
하반기에는 전 세계적인 인플레이션으로 인한 소비 위축과 경기침체 우려가 팽배하다. 철강 제품 가격 인하도 불가피한 상황이다. 특히 건설 시장 위축으로 철근 가격은 t(톤)당 15만원 이상 하락하며 1년 전으로 복귀했다. 차 강판 가격 인상도 쉽지 않을 것으로 전망돼 최고경영진의 적극적인 경영 판단이 어느 때보다 필요한 시점이라는 게 회사측 설명이다.
일각에서는 특별 공로금 등 성과보상 체계에 대해 현대차그룹 차원에서 기준을 제시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도 나온다. 이에 대해 현대차그룹 관계자는 “그룹에서 개별 회사의 노사협상에 개입할 경우 오히려 노조 측의 반발을 불러 일으킬 수 있다”면서 “각 계열사의 상황과 성과 기여도가 다른 만큼 일률적인 기준을 적용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재계 관계자는 “결국 노사관계에서 불법적인 행위를 엄단하겠다고 밝혀 온 현 정부가 의지를 가지고 현대제철 문제를 적극 해결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