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진단 규제 완화 방안 영향
주택 시장 침체에 전격적으로 완화 방안 내놔
주거환경, 노후도 따라 재건축 가능
서울 30만가구 혜택…“사업추진 속도”
“재초환 규제완화 뒤따라야 진짜 효과”
[헤럴드경제=박일한 기자] 정부가 재건축 사업 ‘첫 단추’인 안전진단 절차를 대폭 완화하면서 주요 재건축 사업지들의 사업이 탄력을 받을 전망이다.
8일 발표된 ‘재건축 안전진단 합리화 방안’은 안전진단 평가 항목 중 가장 충족하기 어려운 ‘구조 안전성’ 가중치를 현행 50%에서 30%로 낮추고, ‘주거환경’과 ‘설비노후도’ 가중치를 각각 30%로 높여, 구조 안전에 심각한 문제가 없어도 단지가 오래돼 불편하면 재건축이 가능하도록 한 게 핵심이다. 2차 정밀안전진단(적정성 검토)은 지방자치단체에 권한을 위임해 지자체가 요청할 때만 제한적으로 시행하도록 했다. 사실상 폐지수준의 조치라는 평가가 나온다.
국토교통부가 내놓은 합리화방안은 문재인 정부 때인 2018년 3월 강화된 재건축 안전진단 기준을 4년 만에 박근혜 정부 수준으로 완화해 재건축 사업을 촉진하기 위한 것이다. 박근혜 정부는 2015년 5월 안전진단 평가 항목에서 구조안전성 기준을 20%까지 낮췄고, 주거환경(40%), 설비노후도(30%) 평가기준을 대폭 높여 주차장 시설 등 주거환경이 불편하면 구조안전에 문제가 없어도 재건축을 추진할 수 있도록 했다.
그런데 문재인 정부 때 집값이 폭등하면서 재건축 사업이 시장을 자극한다는 여론이 커졌다. 당시 정부는 안전진단 평가에서 구조안전성 비중을 50%로 대폭 상향해 안전진단을 재건축 규제수단으로 운영했다.
이는 재건축 연한(30년)이 지나 각종 시설이 낡고 녹물이 나와도 건물이 무너질 위험만 없으면 재건축 첫 관문부터 막히는 결과를 초래했다. 목동신시가지 9·11단지, 노원구 태릉우성 등 서울 주요 재건축 단지가 줄줄이 안전진단을 통과하지 못했다. 규제 강화 이후 재건축 안전진단 통과 건수가 연간 기준 서울 21건에서 2건으로 급감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이런 상황을 고려해 대선공약으로 안전진단 기준 완화를 내걸었고, 새 정부는 안전진단 규제 완화를 국정과제로 추진했다. 출범 초기엔 집값 자극 우려로 재건축 규제완화에 다소 소극적인 듯했으나 최근 주택시장 침체가 본격화하자 준비해 왔던 규제 완화를 단행하기로 결정한 것으로 보인다.
박용선 국토부 주택토지실 주택정비과장은 “안전진단 기준을 재건축 규제 수단을 운영하면서 도심 내 양질의 주택공급 기반이 크게 위축됐다”며 “국민의 소득수준 향상, 기술발전 등에 따라 증가하는 주거환경 향상 요구에 대응하기 위해 이번 재건축 안전진단 합리화 방안을 마련했다”고 설명했다.
재건축 사업을 추진하기 위한 첫단계인 안전진단은 ‘30점이하’, ‘30~40점’, ‘40~45점’, ‘45~50점’, ‘50~55점’, ‘55점 초과’로 판정된다. 현재 재건축은 ‘30점이하’만 바로 추진 가능하고, ‘30~55점이하’는 조건부 재건축‘, ‘55점 초과’는 ‘유지보수’ 판정을 받는다.
정부는 이번에 무조건 재건축이 가능한 범위를 기존 30점 이하에서 45점 이하로 대폭 높였다. ‘조건부 재건축’은 ‘45~55점’ 구간으로 좁혔다. 또 조건부 재건축에 해당하면 ‘적정성 검토’를 거쳐야 하는데, 이를 자지체가 요청할 때만 받을 수 있도록 했다.
이는 사실상 폐지 수준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평가다. 이재국 책사컨설팅 부동산연구소장은 “최근 몇 년동안 재건축 사업이 제대로 추진되지 못했던 상황을 고려해 대다수 지자체가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2차 정밀안전진단을 요청하기 어려울 것”이라며 “사실상 폐지수순으로 본다”고 해석했다. 실제 지난달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은 “2차 정밀안전진단은 원칙적으로 없애야 한다는 게 기본 방침”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이번 안전진단 개정 규정은 시행령·행정규칙을 바꾸는 것만으로도 가능해 내년 1월부터 바로 시행될 예정이다. 서울에서만 서울 양천구 목동 신시가지 단지나 노원구 상계·중계·하계동 등 재건축 가능 연한(준공 후 30년)을 채웠지만 아직 안전진단을 받지 않은 30여만 가구가 대상이다.
이번 조치는 특히 현재 안전진단을 수행 중인 단지에도 모두 ‘소급 적용’돼 시장 효과는 더 클 것으로 보인다. 현행 규정으로 조건부재건축에 해당해 공공기관의 적정성 의무 검토 대상 평가를 받았더라도 개정된 규정에 따라 지자체의 판단만으로 ‘2차 정밀안전진단’을 받지 않고 사업 추진이 가능해진다는 이야기다.
당장 최근 지구단위계획이 통과된 목동신시가지가 유망하며, 안전진단 절차를 통과하지 못했던 목동신시가지11단지와 태릉우성 등은 안전진단을 다시 신청할 것으로 전망된다.
국토부의 분석에 따르면 개정된 평가항목 배점 비중과 조건부 재건축 범위를 적용하게 되면, 안전진단 통과 단지가 크게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 구체적으로 2018년 3월 이후 현행 기준에 따라 안전진단이 완료된 단지(46개) 중 54.3%(25개)는 ‘유지보수’ 판정으로 재건축이 어렵고, 45.7%(21개)가 ‘조건부 재건축’판정을 받아 재건축이 가능했으나, 같은 단지에 개선된 2개 기준을 모두 적용하면, ‘유지보수’ 판정이23.9%(11개)로 크게 줄고, 26.1%(12개)가 ‘재건축’ 판정을 받게 된다. 또 50%(23개)가 ‘조건부 재건축’ 판정을 받을 수 있게 된다.
박원갑 KB국민은행 부동산수석전문위원은 “80년대 후반 준공된 재건축 단지 중엔 집주인 기대감으로 일부 호가 상승이나 급매물 회수 현상이 나타날 것”이라며 “하지만 고금리 태풍에 집값 추가하락 우려로 매수심리가 바닥권이라 거래가 쉽지 않아 시장이 크게 자극받긴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재건축 추진단지들은 일단 행정적 절차 추진하겠지만 재건축의 최종관문에서 사업성을 좌우하는 재건축초과이익환수제 규제완화가 뒤따라야 속도를 낼 수 있을 것”이라고 예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