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강승연 기자] 메리츠화재가 지난해 역대 최대 실적을 달성하며 손해보험업계 톱3로 올라서는 기염을 토했다. 선제적으로 장기인보험 시장에 집중하고 자산운용 역량을 제고하는 전략이 통한 것으로 보인다. 메리츠화재가 상위 4개사로 굳혀 있던 손보업계 구도를 흔들면서 향후 순위 경쟁엔 더욱 불이 붙을 것으로 전망된다.
‘1조클럽’ 메리츠화재, 업계 3위 달성
23일 각사가 공시한 2022년 결산실적 발표내용을 종합하면, 메리츠화재는 지난해 영업이익과 당기순이익 기준으로 업계 3위를 달성한 것으로 나타났다.
메리츠화재가 잠정 집계한 영업이익은 1조1787억원(이하 별도기준)으로, 창사 이래 처음 ‘1조클럽’에 입성했다. 이는 삼성화재(1조6721억원), DB손해보험(1조3111억원)에 이어 3위 실적으로, 현대해상(8229억원)과 KB손해보험(5388억원·연결기준)과 격차를 크게 벌렸다.
당기순이익 기준으로도 메리츠화재(8683억원)는 삼성화재(1조1414억원), DB손해보험(9806억원) 다음의 실적을 거뒀다. 현대해상(5609억원), KB손해보험(5580억원)과는 순익 규모가 3000억원가량 차이가 났다.
매출(10조7193억원)은 2년 연속 10조원을 달성하며 KB손해보험(12조2331억원)을 턱밑까지 추격했다. 35조7723억원인 총자산 규모도 KB손해보험(42조7367억원)을 뒤쫓고 있다. 건전성 지표인 지급여력(RBC) 비율은 삼성생명(285.0%)에 이어 두 번째로 높은 203.8%를 기록했다.
선제적 장기인보험 집중 전략 통했나
진입이 어려운 라이선스 산업인 보험은 대형사와 장기 거래하는 고객이 많아 업계 내 순위도 잘 바뀌지 않는 시장으로 잘 알려져 있다. 이런 시장에서 메리츠화재가 영업이익·당기순이익 3위로 올라선 데는 공격적인 장기인보험 시장 공략 전략이 주효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메리츠화재는 김용범 부회장이 대표이사로 취임한 2015년부터 빅4 손보사가 85%를 차지하는 자동차보험 대신, 장기 수익성에 유리한 장기인보험에 집중하는 전략을 써왔다. 암보험 등 장기인보험은 보험기간이 상대적으로 길어 안정적인 수익이 가능하고 손해율도 상대적으로 낮은 편이지만, 자동차보험 중심이었던 기존 손보사들이 적극적으로 뛰어들진 않았던 시장이었다.
장기인보험은 올해부터 시행된 새 회계제도(IFRS17) 하에서 보험계약서비스마진(CSM)이 높은 것으로 평가되는 만큼, 앞으로 메리츠화재 실적에 더욱 긍정적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장기인보험 매출 성장세에 힘입어 메리츠화재는 매출액(원수보험료) 시장점유율을 2017년 8.3%에서 지난해 3분기 말 11.1%로 끌어올린 상태다.
업계 톱 수준 투자수익도 역할…김용범표 ‘프라이싱’ 전략 집중
자산운용 역량도 주목할 만하다. 지난해 손보사들은 대체로 보험영업이익에선 적자를 보고 투자영업이익에서 돈을 버는 구조였기 때문에 자산운용 성과가 전체 수익을 좌우하는 상황이었다. 메리츠화재의 투자이익률은 지난해 말 기준 4.2%로, 2~3% 수준이었던 다른 손보사들에 비해 1%포인트 이상 높았다. 총자산수익률(ROA)은 2019년부터 업계 1위를 달리고 있다. 작년 3분기 기준 ROA는 3.62%로 업계 상위사 평균(약 1.4%)을 2배 이상 웃돌았다.
메리츠화재는 올해 우량한 신계약 확보를 통해 수익성을 제고하는 한편, 특유의 ‘프라이싱’ 전략을 견지하면서 부문별로 영업력을 조절할 계획이다. 메리츠화재는 미래가치가 크고 시장가격이 손익분기점(BEP)보다 높게 평가된 영역에서만 공격적인 가격 정책을 통해 점유율을 확대하는 전략을 전개하고 있다. 메리츠화재는 최근 운전자보험, 어린이보험 등 장기인보험 예정이율을 잇달아 인상해 보험료를 낮췄다.
김 부회장은 최근 사내 CEO(최고경영자) 메시지를 통해 “향후 경쟁에서 승리하느냐, 패배하느냐의 관건은 어느 회사가 가장 정확하고 가장 빨리 수익성을 개선하느냐, 얼마나 빨리 수익성을 담보할 만한 상품 가격을 정해 시장에 출시하느냐에 있다”며 “우리의 목표는 여타 보험사 수준이 아니라 금융산업 전체에서 가장 빠르고 정확한 프라이싱 체계를 구축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