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월, 추가 금리 인하에 모호한 태도
라가르드 “통화 정책 효과 반감”
[헤럴드경제=원호연 기자]미국 연방준비제도(Fed)의 통화 정책 방향을 엿볼 수 있어 관심을 모았던 잭슨홀 미팅이 다소 모호한 메시지만 남긴 채 끝났다. 잭슨홀에 모인 각국 중앙은행 수장들은 최근 경제 구조의 근본적 변화로 통화 정책의 위력이 반감되고 있다며 고민을 드러냈다.
블룸버그 통신은 지난 25~27일(현지시간) 미국 와이오밍 주 잭슨홀에서 열린 올해 잭슨홀 미팅에 대해 “현재 상황이 불확실성 속에서 겸손함이 필요하다는 것이 지배적인 분위기였다”고 평가했다.
제롬 파월 미 연준 의장은 첫날 기조연설에서 향후 금리 인상 여부와 관련해 신중한 접근을 강조했다. 그는 “인플레이션이 고점에서 하락한 것은 반가운 진전이지만 여전히 높은 수준에 머물러 있다”면서 “긴축적인 통화 정책은 더욱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인플레이션을 정책 목표치인 2%로 지속적으로 낮추기 위해서는 지금 추세보다 낮은 경제 성장률과 노동시장의 냉각이 필요하다는 판단이다. 그러면서도 “(연준은) 신중하게 진행할 수 있는 위치에 있다”며 과잉 긴축을 경계했다.
최근 경제학자와 정치권 일각에서 연준의 목표치를 2%에서 3%로 상향해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선 “우리의 목표는 앞으로 계속될 것”이라며 선을 그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파월 의장의 모호한 발언에 대해 “정책 입안자들이 금리를 다시 올릴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더라도 인플레이션이 다시 상승할 경우 금리를 추가로 인상할 수 있는 선택권을 쥐기 위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각국 중앙은행장들은 오랫 동안 예상했던 인플레이션 둔화가 현실화됐음에도 이것이 지속되지 않을 수 있다는 우려에 휩싸여 있다”고 부연했다. 현재까지 강하게 추진해온 긴축 정책이 충분히 효과를 내고 있는지 연준 스스로도 자신하지 못하고 있다는 얘기다.
크리스틴 라가르드 유럽중앙은행(ECB) 총재는 인플레이션에 대한 통화 정책의 효과가 반감됐다는 점을 솔직하게 시인했다. 그는 “현재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상황에 대한 기존의 각본은 존재하지 않으며 우리의 임무는 새로운 각본을 작성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노동시장의 변화, 녹색 경제로의 전환, 블록화에 따른 세계 경제의 분열로 특징지워진 최근 세계 경제의 변화로 더 예측하기 어렵고 뿌리 뽑기 어려운 지속적인 가격 압력을 가져올 것이라고 경고했다.
우에다 가즈오 일본은행 총재 역시 “지정학적 긴장이 고조되면서 제조업과 일자리가 본국으로 돌아오는 ‘리쇼어링’ 경향을 고려할 때 세계 경제에 변곡점이 서서히 다가오고 있다”면서 “이는 생산 비효율성을 초래할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공급망 변화에 대한 논문을 발표한 캐서린 러스 캘리포니아대학교 경제학 교수는 선진국 시장의 무역이 중국과 같은 전통적인 파트너에서 베트남이나 멕시코와 같은 국가로 이동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며 “이러한 종류의 마찰이 발생하기 시작하면 경제의 많은 부분이 통화 정책에 덜 민감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전 영란은행 정책 입안자였던 크리스틴 포브스 메사추세츠공과대학교 경제학 교수는 “우리는 이러한 구조적 변화가 모두 중요하고 크다는 점을 잘 알고 있다”면서 “통화정책을 설정하는 방법의 매개 변수가 바뀌기 때문에 중앙은행이 통화정책을 운영하기가 매우 어려워졌다”고 설명했다.
이러한 변화는 경제 과열을 자극하거나 경기 침체를 유발하지 않는 이른바 ‘중립 금리’에도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 미국 전 재무장관인 래리 서머스 하버드대 명예교수는 최근 “앞으로의 인플레이션 수준은 더 높아질 것”이라며 “2020년대의 중립 금리는 연 1.5~2.0%로 오를 것”이라고 전망했다. 중립금리가 상승하면 인플레이션 압력을 낮추기 위한 중앙은행의 긴축 정책의 효과가 반감된다.
피에르 올리비에 구린차스 국제통화기금(IMF)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코로나19, 우크라이나 전쟁, 기후 전환과 관련된 충격이 국가 안팎의 여러 부문에 다양한 방식으로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보다 세분화된 모델이 필요할 것”이라며 “어떤 특정 충격이 엄청난 가격 상승을 초래하고 어떤 충격은 그렇지 않은지 복잡성을 파악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