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이 이제 며칠 남지 않았다. 지난해 말부터 시작된 반도체 경기 침체가 올 한 해 동안 이어지면서 빨리 이 터널을 벗어나길 기원했는데 드디어 그 끝이 보인다.
올해 초 우리나라 반도체 수출이 지난 2010년대 중반 수준으로 대폭 줄어들었고 국내 대표기업들의 실적이 적자를 기록하면서 국내 반도체 산업 경쟁력에 문제가 생긴 것은 아닌지, 구조적인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닌지 우려가 컸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그보다는 글로벌 경기 둔화로 인해 세계 반도체 시장이 위축되면서 우리도 그 영향에서 벗어나지 못했다고 보는 것이 정확한 판단인 것 같다. 물론 우리의 주력 품목인 메모리반도체 특성상 경기 변동에 민감하게 반응하다 보니 안정성이 떨어진다는 평가에서 벗어날 수는 없겠지만 시스템반도체 시장 역시 축소됐으니 굳이 품목 선정에 대한 시시비비는 가릴 필요가 없을 것 같다.
올 한해 반도체산업 경기가 좋지 않았던 것은 무엇보다 글로벌 경기 회복이 지연되고 있기 때문이다. 반도체의 주요 수요산업별 비중을 보면 통신기기, PC·컴퓨터의 비중이 높게 나타나고 있다. 통신기기 중에서도 스마트폰이 커다란 비중을 차지하고 있으며 PC와 소비자 가전까지 포함한다면 반도체 시장에서 개인 소비자의 영향력을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다.
그런데 코로나19 기간에 주요국들이 시행한 양적완화로 인해 인플레이션이 발생함에 따라 최근 대부분 긴축재정으로 전환했고 소비심리는 급속도로 위축됐다. 이러한 영향으로 인해 올해 개인 소비가 줄었고 반도체 경기 역시 불황으로 전환된 것이다.
하지만 수요 부진이 이어지면서 재고가 쌓이고 수익이 낮아지자 반도체 기업들은 감산을 시작했고 최근 그 감산 효과가 나타나면서 반도체 단가가 조금씩 상승하고 있다. 게다가 최근 주목을 받는 인공지능(AI)이 반도체 시장에 활기를 불어넣기 시작했다.
챗(Chat) GPT의 등장과 함께 AI 서비스 활용의 대중화가 실현됐고 내년에는 개인용 디바이스에서도 AI 기능을 수행하는 제품들이 출시될 예정이다.
개인용 수요 증가는 반도체 시장을 견인할 것이고 따라서 2024년 반도체 경기 전망은 매우 희망적이다. 세계 시장 조사 전문기관에서도 내년 반도체 시장이 가파르게 성장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하지만 너무 낙관적인 기대는 잠시 접어두어야 할 것 같다. 여전히 글로벌 경기는 회복세가 둔하고 지정학적 위험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반도체 산업 경기는 오랜 불황의 터널을 벗어나고는 있지만, 서서히 호황기로 전환되고 있다’라고 할 수 있겠다.
이러한 여러 가지 정황을 종합적으로 판단하면 우리 반도체 기업의 내년 매출 전망은 매우 긍정적이다. 비록 시장 규모는 아직 크지 않아도 AI 서버용 메모리반도체(HBM)는 우리 기업이 사실상 독점 생산하고 있으며 늦어도 내년 하반기에는 글로벌 경기도 어느 정도 회복해 반도체 수요 증가가 예상되기 때문이다. 이번 반도체 경기 불황은 예전보다 길었지만 우리 기업은 감산 등의 노력으로 이를 조금씩 변화시켰다. 이제는 공수를 전환해 호황이 조금이라도 빨리 올 수 있게 하고 더 오랫동안 누릴 수 있는 전략이 필요한 시점이다.
김양팽 산업연구원 성장동력산업연구본부 신산업실 전문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