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공됐거나 건설중인 세계 10대 초고층빌딩 모두 아시아·중동 위치…초고층빌딩 건설후 경제붕괴 많아 中 등 우려
‘더 높이, 더 멀리, 더 빨리.’ 올림픽 구호가 아니다. 하늘과 가까워지려는 인간 욕망의 다른 말이다.
초고층 스카이라인의 상징이었던 미국에서는 경기 침체와 업무 공간 활용 방식 변화로 ‘마천루’ 건설 붐이 싸늘하게 식어가고 있지만, 아시아와 중동에서는 그 열기가 급팽창하고 있다.
건축역사학자 주디스 두프리는 자신의 저서에서 “대부분의 마천루는 미국에서 지어졌지만, 최근 ‘초고층(Supertall)’ 빌딩은 아시아에 있다”며 “팽창하는 인구에 따른 수요의 성장이 그 원인”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문자 그대로, 올라가는 것 외에 갈 곳이 없다”고 진단했다.
▶아시아ㆍ중동 쏠림 가속=영국의 BBC방송은 “세계 100대 초고층 빌딩의 3분의 2는 아시아와 중동에 위치한다”며 ‘서에서 동으로의 극적인 전환’이라고 평가했다.
실제로 이미 완공됐거나 건설 중인 세계 10대 초고층 빌딩 중 아시아와 중동이 아닌 곳은 한 곳도 없다. 현존하는 최고층 빌딩인 부르즈칼리파(828m)는 아랍에미리트연합(UAE) 두바이에 있다. 2019년 완공 예정인 사우디아라비아 제다의 킹덤타워는 1000m 이상을 예고하고 있어 부르즈칼리파를 제치고 1위 권좌에 새롭게 등극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중국은 지난 10년간 초고층 빌딩 건설 붐을 맞았다. 현재 중국 대륙의 33개 도시에 200m가 넘는 빌딩만 200개가 넘는다. 내년 완공을 눈앞에 둔 중국의 상하이타워는 632m로, 아시아 최고층 빌딩에 이름을 올리게 된다.
▶바벨탑의 저주=하지만 일각에서는 중동과 아시아에 일고 있는 초고층 바람이 ‘바벨탑의 저주’로 귀결되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 21세기판 바벨탑인 ‘마천루의 저주’는 경기가 호황기를 누릴 때 지어지기 시작한 초고층 건물이 완공 시점에 부동산 버블이 꺼지면서 경제위기가 찾아온다는 속설이다. 1999년 도이체방크의 애널리스트 앤드루 로런스가 내놓은 이 가설은 2009년 UAE의 두바이월드가 부르즈칼리파 완공 직전 채무 상환 유예를 선언한 데 이어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지면서 유명세를 탔다.
시장은 다음 타깃으로 중국을 주목하고 있다. 미국 경제 전문 온라인 매체 비즈니스인사이더는 중국 브로드그룹이 발표한 ‘후난성 창사에 7개월 만에 838m의 스카이시티빌딩을 짓겠다’는 계획이 위기 전조가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중국 지방정부의 부채 문제가 가중되는 상황에서 중국 경제의 경착륙 우려까지 불거졌기 때문이다.
역사적으로 ‘마천루의 저주’는 수차례 목격됐다. 미국 뉴욕 크라이슬러빌딩(319m)과 엠파이어스테이트빌딩(381m)이 세워질 당시 세계는 대공황에 휩쓸렸다. 1970년대 중반 뉴욕 세계무역센터(각 415m, 417m)는 오일 쇼크로 휘청거렸고, 1997년 말레이시아 페트로나스타워(452m)는 아시아 외환위기의 직격탄을 맞았다. ▶美, 초고령 마천루 1위=도심의 스카이라인 ‘성장판’이 닫힌 미국의 마천루는 갈수록 늙어가고 있다. 초고층 건축과 도시건축에 관한 최고 권위의 국제 단체인 CTBUH(Council on Tall Building and Urban Habitat)가 지난해 세계 각국 10대 고층 빌딩의 평균 연령을 조사한 결과, 미국이 34년으로 가장 높았다. 그다음으로 베네수엘라(24년) 프랑스(22년) 폴란드(21년) 영국(11년) 순으로 나타났다. 반면 중국은 9년, UAE 4년, 사우디아라비아와 한국이 각각 3년으로 젊은 초고층 빌딩을 보유한 국가로 꼽혔다.
▶마천루에 불타는 도시?=마천루가 도시의 발전을 상징하는 랜드마크 역할을 하지만 순기능만 있는 것은 아니다. 운영상의 적자뿐만 아니라 고층 빌딩을 뒤덮은 유리에서 반사된 열기에 주차된 차량이 녹아내리는 재산권 침해 논란이 일기도 한다. 최근 문제가 된 빌딩은 바로 영국 런던 펜처치 20번가에 위치한 ‘워키토키’ 빌딩. 건물 모양이 거대한 무전기를 닮았다고 해서 붙여진 워키토키 건물은 높이 160m의 37층으로, 오목하게 들어간 외관 유리에서 계란프라이를 할 수 있을 만큼의 뜨거운 열기가 뿜어져 나온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유리로 뒤덮인 빌딩이 반사해내는 ‘죽음의 광선’에 승용차 ‘재규어WJ’의 차체 일부가 녹아내렸다”면서 “빌딩 건축주는 재규어 주인에게 차량수리비로 약 946파운드(162만원)를 보상했다”고 전했다.
천예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