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팔 히말라야 국경지역 대홍수
해발 5200m 빙하덩어리 추락 가능성
“마을 통째로 휩쓴 지진 같은 산사태”
中연결 42㎞ 교역로·교량 19개 ‘초토화’
전력·통신망 끊기며 구조·수색 난항
강상류 막혀 홍수재발 가능성 ‘초비상’
중국 국경과 맞닿은 네팔 중북부 히말라야 산악지대에서 26일(현지시간) 발생한 대홍수로 사망자가 최소 160명으로 늘어나는 등 인명피해가 갈수록 커지고 있다. 당초 홍수를 촉발한 것으로 지목됐던 지진은 미국 지질조사국(USGS)의 추가 분석 결과, 실제로는 거대한 빙하가 붕괴하면서 발생한 지진 유사 현상이었던 것으로 파악됐다. 빙하와 암석이 한꺼번에 무너지며 쏟아진 물이 산악지대를 휩쓸면서 중국으로 향하는 42㎞ 규모의 핵심 교역로와 도로·교량이 사실상 끊겼고, 431MW 규모의 발전시설까지 초토화됐다.
26일(현지시간) AP·AFP 통신에 따르면 네팔 경찰은 이날 수색 작업을 통해 시신 157구를 수습했다고 밝혔다. 앞서 중국 관영 CCTV도 국경 인근 티베트 지역에서 3명이 숨졌다고 보도해 현재까지 집계된 사망자 수는 160명에 달한다.
네팔 관광부는 관광객 403명이 현재 실종 상태이며 이 가운데 341명은 외국인이라고 전했고, 경찰관 28명도 연락이 두절됐다고 말했다. 중국 측도 현재 실종자가 265명이라고 보고했다. 현지 수력발전소 건설 현장 인근에서 연락이 끊긴 한국남동발전과 두산에너빌리티 소속 한국인 9명도 실종 상태다.
홍수의 정확한 원인은 아직 규명되지 않았다. 당초에는 지진이 원인으로 지목됐다. 미 지질조사국(USGS)은 현지시간 오전 8시37분 카트만두 북쪽 네팔·중국 국경 지역에서 규모 4.4의 진동을 관측했지만, 추가 분석을 거쳐 규모 5.2의 빙하 붕괴 사태로 정정 발표했다.
지질조사국은 “네팔과 중국 국경 인근에서 규모 5.2의 지진파 사건이 발생했다”며 “우리는 해당 사건이 빙하 붕괴와 토석류로 인해 발생한 것이고, 이것이 하류에 연쇄적인 재앙적 영향을 초래했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이어 이 사건은 당초 규모 4.4 지진으로 보고됐지만, 인근 지진 관측소와 장주기 지진파, 위성 사진을 추가로 분석한 결과, 지진이 발생하지 않았다는 결론에 이르렀다고 설명했다.
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국제 연구진은 해발 약 5200m에 있던 거대한 빙하 덩어리가 떨어져 나와 1200m 아래 계곡으로 추락했을 가능성을 유력하게 보고 있다. 얼음과 암석이 뒤섞인 대규모 산사태가 강을 일시적으로 막은 뒤 물이 쌓이면서 형성된 천연댐이 무너져 엄청난 양의 물이 하류로 한꺼번에 쏟아졌을 수 있다는 것이다.
카트만두에 본부를 둔 통합산악발전국제센터(ICIMOD) 소속 기후 전문가들도 온난화가 진행 중인 히말라야 지역 빙하에서 발생한 대규모 눈사태가 강을 막았다가 이것이 터지면서 급류가 쏟아져 내렸을 가능성이 크다고 설명했다.
장창궁 ICIMOD 기후·환경위험 담당 책임자는 “네팔과 중국 국경 강 상류에 여전히 막힌 부분이 남아있어 두 번째 홍수가 발생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사고 현장은 도로와 통신망이 동시에 끊기면서 구조대조차 접근하기 어려운 고립 상태가 이어지고 있다. 이날 카트만두포스트와 AP통신 등에 따르면, 최대 피해지역인 라수와의 티무레에서는 홍수가 헬기 착륙장까지 쓸어가 구조 헬기가 현장 상공까지 접근하고도 착륙하지 못한 채 되돌아갔다. 악천후까지 겹치면서 구조·구호물자를 실은 헬기 3대도 회항했다. 네팔 당국은 군과 민간 헬기를 동원해 구조 작업을 벌이고 있지만 일부 피해지역은 여전히 육로 접근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통신 두절로 생사조차 확인되지 않는 사람도 속출하고 있다. 외국인 관광객과 네팔인 관광객 수백명이 연락이 닿지 않고 있으며, 수력발전 사업 관계자 60명과 군·경 등 보안인력 85명도 실종 상태다. 특히 랑탕콜라 수력발전소에서는 엔지니어와 운전기사, 근로자 등 60명이 연락 두절됐으며 이 가운데 35명은 홍수 발생 당시 터널 안에서 작업 중이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당국은 도로와 통신이 끊긴 지역의 생존자를 찾기 위해 열화상 카메라를 장착한 드론까지 투입하고 있다.
이날 네팔 도로국은 누와코트 지역 베트라와티에서 중국 국경 라수와가디 검문소까지 이어지는 42㎞ 도로 전 구간이 홍수 피해를 입었다고 밝혔다.
라수와가디는 수도 카트만두와 중국 티베트를 잇는 핵심 육상 관문이다. 내륙국인 네팔이 중국에서 상품과 건설자재 등을 들여오는 주요 통로다. 이번 홍수로 도로 곳곳이 유실됐고 차량 통행이 가능한 교량 19개도 파괴됐다.
지난해 홍수로 파손돼 중국 정부의 지원을 받아 확장·복구 중이던 샤프루베시~중국 국경 16㎞ 구간도 다시 피해를 입었다. 복구가 끝나기도 전에 같은 지역이 또다시 홍수에 휩쓸린 것이다.
전력망의 충격도 크다. 홍수가 주요 수력발전소가 몰려 있는 보테코시강과 트리슐리강 유역을 덮치면서 431MW가 넘는 발전 능력이 전력망에서 이탈한 것으로 현지 언론은 전했다. 라수와가디와 칠리메 등 수력발전소가 피해를 입었고 트리슐리 3B 허브의 220㎸ 변전소와 송전선도 파괴됐다.
네팔은 히말라야의 급격한 고도차와 풍부한 수량을 이용한 수력발전에 전력 생산을 크게 의존한다. 최근에는 남는 전력을 주변국에 수출하며 수력발전을 성장산업으로 키우고 있다. 그러나 발전소와 송전망, 중국으로 향하는 도로가 모두 좁은 산악 하천을 따라 집중돼 있어 한 번의 대형 홍수가 물류와 전력 인프라를 동시에 마비시킬 수 있다는 취약성이 드러났다.
한국인 피해에 대한 우려도 이어지고 있다. 차승원 네팔 한인회장은 국내 언론과의 통화에서 “예전에도 중국 티베트와의 국경 인근에서 종종 홍수가 일어나기는 했지만, 네팔에서 10년가량 살고 있는데 이런 규모의 홍수는 처음”이라고 말했다.
실종 등 이번 홍수로 인해 입은 한인들의 피해는 더 커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왔다. 여행사를 통해 간 것이 아닌 개인 여행으로 홍수 발생 지역을 간 이들의 피해는 아직 확인하지 못한 상태다.
네팔 정부 역시 육군과 경찰 등으로 구성된 구조팀을 피해 지역에 보내 수색 작업을 벌이고 있다. 사스미트 포카렐 네팔 정부 대변인은 구조 작업을 지원해달라고 인도와 중국에도 요청했다고 밝혔다.
국경 너머 중국도 피해를 봤다. 중국 관영 신화통신에 따르면 티베트자치구 르카쩌시 지룽현에서도 사상자와 실종자가 발생했으며 도로와 통신·전력망이 끊겼다. 중국 당국은 지룽에서 네팔 국경으로 향하는 도로를 7일간 양방향 통제하기로 했다.
이번 재난은 히말라야 지역의 기후변화 위험에도 다시 경고음을 울렸다. CNN은 지구온난화로 빙하가 빠르게 녹고 산악 지형이 불안정해지면서 네팔이 기후재난에 특히 취약해지고 있다고 전했다.
빙하가 녹으면서 고산지대에는 거대한 빙하호가 만들어지고 얼음이 사라진 산비탈의 암석은 점차 불안정해진다. 여름철 융빙에 극한 강수까지 겹치면 물과 얼음, 토사가 한꺼번에 하류로 쏟아지는 대형 홍수로 이어질 위험도 커진다.
특히 네팔로서는 단순한 자연재해 이상의 문제다. 중국과 연결되는 핵심 교역로와 수력발전소·변전소·송전망이 모두 히말라야 계곡에 집중돼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에도 같은 지역에서 홍수가 발생해 도로와 교량이 파손됐지만 복구가 끝나기도 전에 또다시 대규모 피해가 발생했다. 서지연 기자
sjy@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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