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손해배상 판결 … “위자료 2000만원 지급해야”
1년 간 ‘고(故) 이타미 준 설계’ 호텔 홍보문구
세계적 건축가…한국인 최초 프랑스 예술문화훈장
유족·이타미 준 재단 “허위 사실로 정신적 고통”
“건축가 고(故) 이타미 준 선생이 자연의 흐름을 거스르지 않으려 애쓰며 지어낸 제주 최초의 5성급 호텔.”
[헤럴드경제=안세연 기자] 지난 2023년 1월, 제주의 5성급 호텔인 씨에스호텔앤리조트가 공식 홈페이지 메인에 내건 문구다. 재일 한국인으로 세계적 건축가인 고(故) 이타미 준(유동룡·1935~2011)의 이름과 얼굴도 나란히 걸었다. 1년간 홍보 문구가 유지되면서 SNS에선 “이타미 준이 설계한 호텔”이라는 입소문이 퍼졌다.
하지만 허위 사실이었다. 정작 작가는 해당 호텔의 설계와 아무런 관련이 없었다. 무단 도용이었다.
유족 “이타미 준, 호텔 건축·설계에 일절 관여하지 않아”
뒤늦게 이 사실을 알게 된 작가의 유족과 이타미 준 재단이 지난해 10월, 문제를 공론화했다. 당시 재단 측은 “이타미 준은 씨에스호텔앤리조트의 건축·설계에 일절 관여하지 않았다”며 “재단의 항의에 호텔이 해당 이미지를 삭제했으나 수많은 소비자들이 오인했고 지금도 잘못된 정보가 남아 있다”고 했다.
작가의 딸인 유이화 재단 대표는 “건축가의 이름은 하나의 문화자산”이라며 “상업적 홍보에 무단으로 사용된 것은 예술의 존엄을 훼손한 행위”라고 지적했다. 재단은 호텔 측을 형사 고소하는 동시에 민사상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이타미 준은 지난 2003년 한국 건축가 최초로 프랑스 기메동양박물관에서 회고전을 열었다. 같은 해 한국인 건축가 최초로 프랑스 예술문화훈장 ‘슈발리에’를 받았다. 일본 최고 권위의 건축상인 ‘무라노 도고상’을 비롯해 ‘아시아 문화환경상’ 등을 수상하며 국제적 명성을 쌓았다.
법원 “유족에게 위자료 2000만원 지급”
재판 과정에서 재단 측은 “고인은 생전에 이 사건 호텔을 건축한 적이 없는데도 호텔 측이 허위의 게시글을 게시했다”며 “유족에게 정신적 손해를 입혔으므로 1억원을 손해배상 해야한다”고 주장했다.
31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법 민사25부(부장 권기만)는 유족 측 주장을 일부 받아들였다. 호텔 측에서 유족에게 위자료 2000만원을 지급하라고 지난달 24일 판결했다.
법원은 “호텔 측이 게시글에 적시한 ‘고인이 해당 호텔을 건축했다’는 사실은 명백히 허위”라며 “세계적 건축가인 고인의 성명과 초상을 무단으로 도용해 영업에 이용했다”고 지적했다.
이어 “이는 헌법상 행복추구권과 인격권을 내용으로 하는 성명권 및 초상권 침해를 구성한다”고 판단했다.
법원은 손해배상액으로 2000만원을 인정했다. 재판부는 “게시글이 홈페이지에서 차지하는 비중, 고인의 건축계 내 인지도, 호텔에서 항의 이후 취한 시정조치의 종류와 내용 등을 모두 고려했을 때 유족의 추모감정 침해를 원인으로 해 배상해야 할 위자료를 2000만원으로 정한다”고 설명했다.
재판 과정에서 유족 측은 퍼블리시티권 침해·부정경쟁행위·명예훼손 등을 이유로 한 책임도 물었지만 인정되지 않았다. 법원은 “유족 측이 재산상 손해를 입었는지 여부를 알 수 없고, 양측이 동종업종에 종사하고 있지도 않으며 게시글이 고인의 사회적 평가를 침해할 만한 내용도 아니다”고 판단했다.
이 판결은 지난 11일 확정됐다. 1심 판결에 대해 양측 모두 불복하지 않았다.
한편 유족은 호텔 측 대표이사를 저작권법 위반 등 혐의로 고소했지만 사과를 받은 뒤 취소했다.
notstrong@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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