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독한 갈등과 반목의 시간이다. 노동 분야는 특히 그 어느 때보다 혹독한 갈등의 섬에 갇혀 있다. 타협의 미학은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다. ‘Yes or No’만 정답으로 간주되다 보니 갈등의 섬에서 빠져나올 방법은 찾지도 못하고 있다. 갈등 비용도 갈수록 커지고 있다.
갈등과 반목의 리스트는 끝없이 이어진다. 지방노동위원회, 중앙노동위원회로 이어지는 원청의 사용자성을 둘러싼 조정신청. 여기서 끝나지 않고 법의 심판을 구하는 집행정지 신청, 행정소송으로 갈등과 반목은 쉼없이 되풀이된다. 그 뿐인가. 경영성과급 등 노동쟁의 대상 시행지침은 또 다른 갈등을 예고하고 있고, 화이트칼라 이그젬션(고소득 노동자 근로시간 규제예외)을 골자로 한 메가특구특별법 노동특례 관련 사회적 대화는 첫 출발선부터 삐거덕거린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노동정책의 실패’를 얘기하는 이들이 부쩍 늘고 있다. 얼마전 한 재계 인사는 “노동정책은 그 영향이 단시간에 나타나지 않는다. 서서히 영향을 주다가 나중에 돌이킬 수 없는 영향을 미친다”고 말했다. 현재의 노동정책은 낙제점이라는 얘기다.
재계의 넋두리로만 치부할 수 없는 것은 ‘노동정책의 실패’라는 (재계의) 진단 속에는 ‘불확실성’과 ‘판단보류’라는 큰 바위가 버티고 있기 때문이다. 예측 불가능한 불확실성과 사회적 대화의 탈을 쓴 판단보류는 경제는 물론, 정치, 사회제도 등 인간 사회가 가장 싫어하는 기피대상 1순위다. 원청과 하청으로 이뤄진 부조리한 노동구조에서 사용자 범위를 확대하고 질서있는 단체교섭을 통해 그 격차를 줄이겠다는 노란봉투법(개정 노동조합법)의 목표점은 나쁘지 않다.
하지만 정작 노란봉투법은 추상적이고 불확실성에 갇혀 오히려 분쟁과 소송만 불려 놓고 있다. 사용자성의 판단 기준이 되는 실질적 지배력에 대한 불명확한 법 규정은 사용자나 노동자나 모두 대법원 판례만 쌓이기를 기다리는 ‘시간의 공백’만 낳았을 뿐이다.
노란봉투법 이후 불거진 노동쟁의 대상 논란에 고용노동부가 내놓은 지침도 마찬가지다. 법적 구속력이 없다는 재계의 볼맨 소리는 차치하고라도, ‘근로조건에 영향을 미치는 사업경영상의 결정’을 노동쟁의 대상에 추가한 노란봉투법 2조가 보여준 불확실성의 빈칸을 채우지 못했다.
고용부는 이번 지침에서 공장 신설·이전, 인공지능(AI) 같은 신기술 도입 등의 발표 직후나 착수 단계에서는 의무교섭 대상이 아니라고 했다. 하지만, 발표와 동시에 구조조정이나 배치전환 계획 등이 구체화해 근로조건 변동이 ‘객관적으로 예상’되는 시점부터는 교섭 대상이라고 명시했다. 앞뒤가 맞지 않는다. 게다가 ‘객관적으로 예상’ 역시 모호하기는 마찬가지여서 분쟁 여지를 또 다시 남겨 놓았다. 기업이익과 연동하는 방식의 경영성과급 요구에 대해서도 노동쟁의 대상이 될 수 없다고 했지만, 이 역시 현장의 혼란을 잠재우지는 못하고 있다. “근로자의 임금·복지 기타 대우 등 근로조건의 결정에 관한 사항에 해당하는 경영성과급은 의무적 교성대상에 해당한다”고 규정한 부분만 놓고 보면 경영성과급이 어떤 경우에 임금 등의 근로조건에 해당하는지를 알 수 없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대런 애쓰모글루는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라는 저서에서 인센티브를 유발해 빈부격차를 줄일 수 있는 포용적 경제제도의 요건으로 확고한 사유재산 보장, 공평무사한 법체제, 공평한 경제환경을 보장하는 공공서비스를 꼽는다. 공평무사한 법체제는 모두가 신뢰할 수 있고, 다툼이 있을 수 없는 확실하고 객관적이어야 한다. 대법 판례만을 쌓이기를 목놓아 기다리게 하는 법은 공평무사한 법체제라 할 수 없다.
한석희 콘텐츠부문장 겸 산업부장
hanimomo@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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