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첨단이 공존하는 도시 오울루

멈춤과 자연의 호흡으로 되찾는 균형

자연의 시간을 마주하는 예술과 문화

에어기타로 외치는 ‘평화의 메시지’

핀란드 오울루에서 차로 30분여 달리면 만날 수 있는 코이텔리 급류의 모습 [Visitoulu]
핀란드 오울루에서 차로 30분여 달리면 만날 수 있는 코이텔리 급류의 모습 [Visitoulu]

[헤럴드경제(오울루)=손미정 기자] 폭우가 지나간 강은 부쩍 커진 덩치로 빼곡한 숲 사이를 빠르게 지나간다. 쏟아지는 햇볕을 자유로이 튕겨내며 흐르는 세찬 물소리에 뻐근한 도시의 감각들이 순식간에 흐트러진다. 바위를 만나면 돌아가고, 때론 갈라졌다 다시 만나는 강줄기를 따라 숲을 걷는다.

강물의 백색소음과 우거진 나무 사이를 파고든 따스한 햇볕, 숲이 안기는 푸른 청량함을 즐기며 몸속 깊이 자연의 호흡을 들이마신다. 자연만이 존재하는, 평범한 듯 특별한 시간. 애쓰지 않아도 자연히 바다로 향하는 강물을 바라보다 보면, 한동안 멈추지 못했던 발걸음이 자연스레 느려진다.

한 방문객이 핀란드 오울루 키이민키의 코이텔린코스키 숲길을 걷고 있다. 손미정 기자
한 방문객이 핀란드 오울루 키이민키의 코이텔린코스키 숲길을 걷고 있다. 손미정 기자

핀란드 오울루 도심에서 차로 삼십 분 남짓 떨어진 코이텔리(Koiteli). 울창한 숲 사이, 키이민키 강을 따라 펼쳐진 약 3㎞ 길이의 급류 지대는 하이킹과 피크닉, 카누, 낚시를 즐길 수 있는 오울루의 대표적인 야외 휴양지다. 비선형으로 숲과 강을 가로지르는 다리와 데크를 걷다 보면, 어느새 온전히 자연의 호흡과 결을 맞추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는 곳. 도심에서 이렇게 가까운 거리에 원시림에 가까운 자연이 펼쳐진다는 사실은, 오울루라는 도시를 이해하는 첫 번째 단서다.

핀란드에서 다섯 번째로 큰 이 도시는 우리에게 ‘노키아의 도시’로 잘 알려져 있다. 하지만 핀란드 IT(정보기술) 산업을 이끌어 온 인구 22만명의 이 도시가 지닌 진가는, 첨단으로 무장한 도심을 조금만 벗어나면 자리한 숲과 습지, 바다가 어우러진 선물 같은 자연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첨단과 자연이 서로를 배척하지 않고 상호보완하는 도시. 이 극단의 대비야말로 오울루를 설명하는 가장 정확한 방식일지 모른다.

멈춤은 곧 전진…자연에서 마음의 균형을 찾다

‘포레스트마인드(ForestMind)’ 참가자들이 나무 기둥에 몸을 기대어 휴식을 취하고 있다. 손미정 기자
‘포레스트마인드(ForestMind)’ 참가자들이 나무 기둥에 몸을 기대어 휴식을 취하고 있다. 손미정 기자

이곳에서 멈춤은 금기가 아닌, 속도의 시대를 잘 살아내기 위한 처방이다. 가공된 세계에서 지친 심신을 온전히 품어내는 건 자연이다. 국토의 약 70%가 숲, 10%가 호수로 덮인 ‘숲과 호수의 나라’에서, 자연은 휴양지가 아니라 일상의 배경이자 회복의 기본값에 가깝다.

몸과 마음, 자연의 균형을 되찾는 법은 핀란드에서 이미 하나의 체계로 개발돼 있다. 오울루에서 만나는 ‘포레스트 마인드(Forest Mind)’ 프로그램이 그중 하나다. 특별한 도구나 장소가 필요한 것이 아니다. 걷다가 발길을 멈추고, 일상의 자연에서 새로운 것을 발견하는 즐거움을 만끽하는 것이 전부다. 나무에 기대 잠시 일상의 무게를 나눠봐도, 나무 기둥을 한가득 껴안고 온기를 느껴봐도 좋다. 중요한 건 무엇을 하느냐가 아니라 멈추고자 하는 의지와 용기다.

돋보기를 가져다 대고 들여다 본 나무 기둥의 모습. 평범했던 나무 껍질이 마치 암석 동굴과 같이 새롭게 다가오는 순간이다. 손미정 기자
돋보기를 가져다 대고 들여다 본 나무 기둥의 모습. 평범했던 나무 껍질이 마치 암석 동굴과 같이 새롭게 다가오는 순간이다. 손미정 기자

파울리나 파카슬라티 포레스트마인드 강사는 “자연의 힘을 마음의 회복을 위해 이용하는 것이 핵심”이라며 “스트레스를 줄이면 집중력과 회복탄력성이 높아진다. 그 말은 곧 멈추는 것도 진전(Progress)이라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숲을 걷다 보면 때마침 자라난 버섯과 야생 베리들을 만날 수 있다. 좀처럼 보기 힘든 야생의 생산물들을 신기하게 바라보고 있으니, 동행한 현지 관계자들이 기꺼이 따서 맛보라고 권한다. 촉촉이 젖은 숲의 땅을 밟으며 달콤한 블루베리와 새콤한 링곤베리를 따다 보면, 성큼 지나가는 시간이 못내 아쉽다.

핀란드 오울루 남쪽 리민카의 한 숲에서 발견한 링곤베리. 손미정 기자
핀란드 오울루 남쪽 리민카의 한 숲에서 발견한 링곤베리. 손미정 기자

‘모두의 권리(Jokamiehenoikeus)’라 부르는 핀란드의 이 원칙은 누구나 자유롭게 야생의 생산물을 채집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한다. 덕분에 여름과 가을철 숲을 찾아 베리를 채집하고 버섯을 따는 것은, 핀란드인들에게 당연하고도 익숙한 일상이다.

시간을 다시 읽다, 클라이밋 클락(Climate Clock)

클라이밋 클락 프로젝트 중 하나인 슈퍼플렉스의 작품 ‘슈퍼 켈로(Super Kello, 2026)’,  마이자 토이바넨 [Oulu2026]
클라이밋 클락 프로젝트 중 하나인 슈퍼플렉스의 작품 ‘슈퍼 켈로(Super Kello, 2026)’, 마이자 토이바넨 [Oulu2026]

올해 오울루는 특별한 타이틀을 하나 더 얻었다. 유럽연합(EU)이 매년 회원국의 도시 중 하나를 선정해 문화예술 프로그램을 지원하는 ‘2026 유럽문화수도(Oulu2026)’에 선정된 것이다.

문화수도란 명칭에 걸맞게 오울루는 북부 핀란드 39개 지방자치단체와 함께 한 해 동안 다양한 문화예술 프로그램을 선보인다. 겨울에는 결빙된 바다와 설원을 배경으로 한 액티비티, 여름에는 숲과 강, 호수를 무대로 한 야외 프로그램이 이어진다. 물론 그 중심에는 자연이 있다.

그 중 ‘클라이밋 클락(Climate Clock)’은 오울루 유럽문화수도의 핵심 프로젝트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아티스트들이 오울루 지역 과학자들과 협업해 만든 영구 설치 공공예술 시리즈다.

‘시계(Clock)’라는 이름에는 기후위기가 똑딱거리며 다가오고 있다는 경고, 여기에 인간이 만든 시간과는 다른 자연 고유의 시간에 대한 은유가 함께 담겨 있다. ‘우리를 자연의 시간에 다시 연결하는 것’을 목표로 한 이 프로젝트는 하우키푸다스, 키이민키, 오울루 시내, 오울룬살로, 윌리이, 윌리키이민키 등 오울루 전역 6~7곳에 설치돼 있다.

클라이밋 클락 프로젝트 중 하나인 안티 라이티넨의 작품 ‘올렛 태사(Olet Tässä, 2026)’, 마이야 토이바넨 [Oulu2026]
클라이밋 클락 프로젝트 중 하나인 안티 라이티넨의 작품 ‘올렛 태사(Olet Tässä, 2026)’, 마이야 토이바넨 [Oulu2026]

코이텔리에서는 그중 하나인, 핀란드 작가 안티 라이티넨의 작품 ‘올렛 태사(Olet Tässä, 당신은 여기에 있습니다)’를 만날 수 있다.

공중에 매달린 두 개의 구체, 그리고 나뭇가지를 비틀어 만든 원형 프레임 여러 개가 마치 숨은그림찾기를 하듯 숲 곳곳에서 방문객을 기다린다. 원형 프레임의 존재는 건너편 풍경을 마치 한 폭의 그림으로 만들고, 둥근 구체는 바람을 따라 회전하며 시간을 살아 움직이게 만든다. ‘당신은 여기에 있다’는 뜻의 제목처럼, 관객들은 지금 서 있는 이 자리, 이 순간의 자연을 직시하게 된다.

“전쟁 대신 에어기타를”…허공에서 평화를 외치다

핀란드 오울루에서 매해 개최되는 에어기타 월드 챔피언십 현장의 모습 [Oulu2026]
핀란드 오울루에서 매해 개최되는 에어기타 월드 챔피언십 현장의 모습 [Oulu2026]

오울루는 매년 에어기타 월드챔피언십이 열리는 도시로도 유명하다. 실제 악기 없이 음악에 맞춰 허공에서 기타 연주 퍼포먼스를 펼치는 이 이색 대회는 1996년부터 이어져 오고 있는 오울루의 자랑거리 중 하나다.

올해는 챔피언십 30주년을 맞아 13개국에서 50명 이상의 참가자가 경쟁했다. 지난 8월 말, 포키센푸이스토 공원에 마련된 수변 무대에서 열린 결선은 약 5000명의 관객이 지켜보는 가운데 진행됐다. 같은 음악을 듣고도 참가자마다 전혀 다른 퍼포먼스를 선보이는 모습이야말로 이 대회의 가장 큰 볼거리다.

비록 ‘가짜 연주’이지만, 우승을 가리기 위한 채점 기준은 명확하다. 독창성과 무대 장악력, 기술력, 예술적 표현력 등 여러 기준 가운데 가장 눈에 띄는 건 바로 ‘에어니스(Airness)’다. 단순히 기타 연주를 흉내 내는 걸 넘어, 그 자체로 하나의 예술 작품이 되는 정도를 뜻한다.

핀란드 오울루에서 열린 에어기타 월드 챔피언십에서 한 참가자가 열정인 연주를 선보이고 있다. [Oulu2026]
핀란드 오울루에서 열린 에어기타 월드 챔피언십에서 한 참가자가 열정인 연주를 선보이고 있다. [Oulu2026]

2011년 챔피언이자 일명 ‘데빌스 니스(Devil’s niece)’이라 불리는 알린 베스트팔은 “에어니스는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부분이다. 하지만 실제로 보면 그것이 무엇인지 곧바로 느낄 수 있다”고 설명했다.

대회 중간중간 사회자가 “메이크 에어(Make Air)”라고 선창하면, 객석에서 “낫 워(Not War)”라는 거대한 외침이 터져 나온다. ‘전쟁 대신 에어기타를’. 이 대회가 30년째 외쳐온 슬로건이다. 웃음과 재치, 광기와 열정이 뒤섞인 이 대회는 악기 하나 없이도 평화와 웃음을 나눌 수 있음을 보여준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진짜처럼 믿고 연주하는 몸짓은, 눈에 보이지 않는 믿음과 사랑, 평화에 대한 신념의 몸짓이기도 하다.

2012년 챔피언인 미국의 저스틴 하워드는 “무언가를 믿는 순간 그것은 진짜가 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마음이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서 “우리는 에어(기타)를 만드는 사람이지, 전쟁을 만드는 사람이 아니다. 우리는 진짜이며, 평화는 진짜”라고 강조했다.


balme@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