캘리포니아주 억만장자 재산 5% 일회성 과세 추진
11월3일 주민투표…최대 250명 대상 140조원 확보
구글 공동창업자 브린 1억달러 투입하며 저지 총력
민주 소속 뉴섬 주지사도 반대…‘부자 엑소더스’ 우려
[헤럴드경제=서지연 기자] 재산이 10억달러(약 1조4000억원)라면 약 700억원을 세금으로 한꺼번에 내야 한다. 재산이 100억달러라면 세금만 약 7000억원에 달한다.
미국에서 억만장자가 가장 많이 사는 캘리포니아가 이처럼 초부유층의 재산 5%를 일회성으로 걷는 ‘억만장자세’를 추진하면서 거센 논쟁에 휩싸였다. 찬성 측은 최대 250명의 억만장자에게 세금을 걷으면 약 1000억달러(약 140조원)의 재원을 마련할 수 있다고 주장하지만, 실리콘밸리 부호들은 “부자들을 다른 주로 내쫓는 결과를 낳을 것”이라며 총력 저지에 나섰다.
24일(현지시간)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캘리포니아주는 오는 11월3일 순자산 10억달러 이상인 주민에게 보유 재산의 5%를 일회성으로 부과하는 이른바 ‘억만장자세’를 주민투표에 부친다.
과세 대상은 최대 250명이다. 이들이 보유한 재산을 모두 합치면 2조달러가 넘는 것으로 추산된다. 세계 최대 기술기업들이 몰려 있는 실리콘밸리를 품은 캘리포니아는 미국에서도 억만장자가 가장 많이 거주하는 지역이다.
찬성 측은 억만장자세를 통해 약 1000억달러를 확보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거둬들인 세금은 의료와 교육, 식품 지원 등에 투입한다는 구상이다. 극소수 초부유층의 재산 일부를 한 차례 과세하는 것만으로 대규모 복지 재원을 마련할 수 있다는 논리다.
여론은 팽팽하다. 지난 8월 여론조사에서는 유권자의 48%가 찬성하고 41%가 반대했다. 9월 조사에서는 찬성 52%, 반대 46%로 나타났다. 아직 어느 쪽도 승리를 장담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실리콘밸리 억만장자들은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대표적인 인물이 구글 공동창업자 세르게이 브린이다. 브린은 억만장자세를 막기 위한 움직임 등에 1억달러 이상을 투입했다.
브린은 어린 시절 가족과 함께 소련을 떠난 경험까지 언급하며 반대 목소리를 냈다. 그는 1979년 가족과 함께 사회주의를 피해 소련을 떠났다면서 당시 체제가 얼마나 파괴적이고 억압적인 사회를 만들었는지 알고 있다고 주장했다.
민주당 소속 개빈 뉴섬 캘리포니아 주지사도 억만장자세에 반대하고 있다. 캘리포니아 한 곳에서만 초부유층에 세금을 부과하기보다는 미국 전체에 적용되는 연방 차원의 제도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반대 측이 가장 우려하는 것은 ‘부자 엑소더스’다. 막대한 세금을 피하려는 억만장자들이 텍사스나 플로리다처럼 세 부담이 낮은 주로 거주지를 옮길 경우 당장은 세금을 더 걷더라도 장기적으로는 캘리포니아의 세수와 투자 기반이 약화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특히 억만장자 한 명이 떠나는 것만으로도 세수에 미치는 영향이 클 수 있다. 캘리포니아는 고소득층이 주 소득세의 상당 부분을 부담하는 구조인 만큼 초부유층의 이탈은 단순히 이번에 걷을 재산세뿐 아니라 향후 소득세와 자본이득세 감소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게 반대 측의 논리다.
찬성 측은 이 같은 우려가 과장됐다고 맞선다. 실리콘밸리가 가진 기업 생태계와 인재, 대학과 연구기관 등은 단순히 세금 부담만으로 대체하기 어려운 경쟁력이라는 것이다. 억만장자들의 막대한 자산 증가에 비하면 한 차례 5%를 부과하는 것이 과도한 부담도 아니라는 주장이다.
부유세를 둘러싼 논쟁은 미국만의 문제도 아니다. 유럽에서도 한때 여러 국가가 부유층의 순자산에 세금을 매겼지만 프랑스와 독일, 스웨덴 등은 자본 유출과 조세 회피, 세금 부과를 위한 자산 가치 산정의 어려움 등을 이유로 제도를 폐지하거나 축소했다. 반면 노르웨이와 스위스 등 일부 국가는 현재도 부유세를 유지하고 있다.
오는 11월 주민투표는 ‘부자에게 더 걷어 복지 재원을 마련할 것인가, 부자를 붙잡아 세수와 투자를 지킬 것인가’를 가르는 시험대가 될 전망이다. 미국 최대 경제 규모를 자랑하는 캘리포니아에서 억만장자세가 현실화할 경우 미국 내 부유층 과세 논쟁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sjy@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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