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회 LA한국영화제 개막작 선정
데뷔작 이후 10년 만에 LA行
주연 서수빈 “주인이의 돌발 행동, 마음으로 이해”
[헤럴드경제=정호원 기자] “제 영화가 하나의 장소가 됐으면 좋겠어요. 우리가 평소 잘 오픈하지 못하는 어떤 이야기를 꺼낼 수 있는 자리요.”
25일 연합뉴스에 따르면 영화 ‘세계의 주인’을 연출한 윤가은 감독은 24일(현지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LA) 하모니 골드 프리뷰 하우스에서 이같이 말했다. ‘세계의 주인’은 올해 처음 열린 LA한국영화제의 개막작이다.
이 영화는 ‘우리들’(2016), ‘우리집’(2019)에 이은 윤 감독의 세 번째 장편이다. 전교생이 참여한 아동 성범죄자 출소 반대 서명운동에 혼자 참여하지 않겠다고 밝힌 여고생 이주인(서수빈 분)이 주인공이다. 주인은 어린 시절 친족에게 성폭력 피해를 입었다.
영화는 주인을 중심으로 여러 이야기를 엮는다. 성폭력 피해 생존자에게 ‘피해자다움’을 요구하는 사회의 시선, 청소년의 성, 저마다 조금씩 결핍을 가진 가족, 친구 관계 등이다.
윤 감독은 영화를 만든 이유에 대해 “성폭력과 트라우마를 다룬 영화인데, 이런 것이 빈번하게 일어나는 보통의 폭력인데도 불구하고 이야기할 자리가 많지 않다고 느꼈다”고 설명했다.
지난해 개봉한 ‘세계의 주인’은 국내외에서 호평을 받았다. 제50회 토론토국제영화제에서는 경쟁 부문인 플랫폼 부문에 한국 영화로는 처음 초청됐다. 제16회 베이징국제영화제 파노라마 부문에도 공식 초청됐고, 제9회 핑야오국제영화제에서는 2관왕에 올랐다.
올해 들어서도 수상이 이어졌다. 한국영화감독조합(DGK)이 여는 디렉터스컷 어워즈에서 각본상을 포함해 3관왕을 차지했다. 윤 감독은 이 영화로 올해의 여성영화인상, 올해의 양성평등문화상, 한국영화제작가협회상 작품상도 받았다.
LA 관객과의 만남은 윤 감독에게 남다른 의미가 있다. 그는 “데뷔작(‘우리들’)을 LA에서 상영해 너무 기뻤던 기억이 있는데 딱 10년이 된 시점에 3번째 영화로 다시 올 줄은 몰랐다”며 “감사하고 감격스럽다”고 말했다.
주연 배우 서수빈은 영화가 주목받는 이유로 이야기의 다층성을 꼽았다. 그는 “이 영화가 특정한 하나의 이야기만 하지 않기 때문 아닐까”라며 “복잡하고 다면적인 이야기를 관객들이 저마다의 시선과 마음으로 받아들이면서 영화가 더 확장되는 것 같다”고 했다.
복잡한 내면을 가진 주인을 어떻게 연기했는지도 털어놨다. 서수빈은 “저만 하더라도 어떤 행동을 할 때 왜 그랬는지 전부 알고 하지 않는다”며 “주인이를 다 알지 못한다는 생각으로 다가갔고, (그럼에도) 주인이의 돌발 행동들이 전부 마음으로 이해가 됐다”고 말했다. 주인이 속을 알 수 없는 표정을 지을 때는 과거의 상처를 떠올리기보다 주변 인물들을 생각하며 연기했다고 한다.
영문 제목에 얽힌 이야기도 나왔다. 이 영화의 영문 제목은 ‘더 월드 오브 러브’(The World of Love)다. 윤 감독은 “‘세계의 주인’은 중의적인 의미를 담고 있는데 이를 번역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며 “세계라는 단어는 놓치고 싶지 않았고, 주인과 동격으로 올 수 있는 말을 고민하다가 (극 중) 주인이가 가장 원하는 직접적인 단어인 사랑을 가져왔다”고 설명했다.
또 다른 후보는 ‘애플’(사과)이었다. 극 중 주인은 사과를 무척 싫어하지만, 영화가 끝날 때까지 그 이유는 나오지 않는다.
윤 감독은 이 빈칸을 일부러 남겼다고 했다. 그는 “제가 쓴 이야기지만 저조차도 주인이가 (트라우마에서) 회복이 됐는지 아닌지를 이야기할 수 없고, 이 인물을 잘 모르겠다고 느꼈다”며 “그렇기에 영화적으로도 빈칸이 있었으면 했다. 일부러 사과를 싫어하는 이유를 정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어 “사과가 트라우마와 연관이 있는지, 아니면 그냥 맛이 없어서 싫어하는지, 혹은 주인이에게 또 다른 상처가 있는지와 같은 물음표가 남아서 영화를 본 사람들이 이야기할 수 있었으면 했다”고 덧붙였다.
한편 LA한국영화제는 주LA한국문화원이 24일부터 26일까지 사흘간 여는 행사로, LA에서 공식 한국영화제가 열리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새로운 흐름, 새로운 목소리’를 주제로 독립·예술영화와 단편, 인공지능(AI) 영화 등 19편을 상영한다.
won@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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