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기체계의 눈과 귀 역할을 하는 국방반도체의 국산화율이 1% 남짓이라는 사실은 우리 안보의 가장 취약한 고리가 어디에 있는지를 보여준다. 정부가 지난 7월 ‘국방반도체 국산화 및 산업생태계 조성전략’을 심의·의결한 것도 이 취약점을 더는 방치할 수 없다는 판단에서다. 그 해법의 중심에는 민·관 합작 특수목적법인, 이른바 SPC(Special Purpose Company)가 있다.
국방·RF반도체는 시장 규모보다 안보적 가치가 훨씬 큰 전략물자다. AESA 레이더, 유도무기, 군용위성의 핵심에는 GaN·SiC 기반 화합물반도체가 자리하지만, 생산 가능한 국가는 극소수다. 자체 생산 역량이 없으면 유사시 무기체계 공급망이 흔들릴 수 있다.
문제는 경제성이다. 수요처가 정부·방산업체로 제한돼 민간 투자만으로 파운드리를 구축하기 어렵다. 이 시장 실패를 보완하려는 것이 SPC 기반 ‘상생팹’이다. 공공기관과 민간기업이 공동 출자해 제조·양산 기반을 마련하고 초기 수요를 창출하는 구조다. 그런데 이 전략이 작동하려면 반드시 갖춰야 할 조건이 있다. 국방·화합물반도체는 설계 변경이 공정·패키징·검증 전체에 영향을 미치고, 군용 규격상 이송·재검증 비용이 민수 대비 훨씬 크다. 설계-제조-패키징-실증·인증 기능이 분산되면 SPC 구조 자체가 비효율에 잠식된다. 이 네 기능 모두를 국내 최고 수준으로 갖춘 곳은 대전이 유일하다.
대덕특구에는 국방과학연구소(ADD),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한국기초과학지원연구원(KBSI), 나노종합기술원(NNFC), 한국과학기술원(KAIST)과 소부장·수요기업이 집적돼 있으며, 지역 RF GaN 기업들은 레이더·드론탐지·위성통신용 고출력 소자로 설계·시제품 경쟁력을 축적해 왔다. 반세기 가까이 축적된 이러한 국가 R&D 역량은 SPC 구상에 실질적 뒷받침이 될 수 있다. 백지에서 새 산업단지를 조성하기보다 기존 국가 자산을 양산 체계로 전환·활용하는 편이 사업의 실현 가능성을 높인다는 점에서, 대전을 거점으로 검토하는 것은 매몰 비용과 시간을 최소화할 합리적 접근이다.
다만 대전에도 공백은 있다. 화합물반도체 전용 파운드리·패키징 기반이 부족해 소량양산 이후 역외 위탁이 불가피하고, 군용 신뢰성·내환경성 검증 인프라도 충분하지 않다. 따라서 SPC 상생팹과 실증·인증 허브를 연계해 ‘설계-양산-검증’의 끊어진 고리를 이어야 한다. 이를 위해 ADD는 기술개발 방향을, ETRI·NNFC는 설계·제조·시제품 기반을, KBSI는 신뢰성 검증을 각각 뒷받침해야 한다.
이 모든 역량을 하나의 산업생태계로 엮는 조정자는 대전시다. 안산국방산단과 유성·장대 일대의 부지·인프라 계획을 상생팹과 출연연의 실증·검증 기능과 연계하고, 지역 대학의 전문인력 양성과 기업의 채용 수요도 연결해야 한다. 방위사업청의 국방조달 예산이 지역 기업의 매출과 고용으로 이어지도록 조달·실증 연계 프로그램도 촘촘히 설계할 필요가 있다.
국방반도체 국산화는 이제 방향이 아니라 속도의 문제다. SPC라는 사업 구조와 대전의 연구개발 역량, ADD·ETRI·NNFC·KBSI의 기능을 유기적으로 결합해 실제 파운드리 가동률과 검증 실적, 무기체계 조달 성과로 연결해야 한다. 설계에서 양산, 신뢰성 검증까지 전주기를 물리적으로 완결할 수 있는 곳은 대전이 유일하며, 정부의 국방반도체 국산화 전략 역시 이 사실을 전제로 설계될 때 비로소 실현 가능성을 갖는다. 대전이 국가 전략거점으로 자리 잡아야만 우리는 무기체계의 눈과 귀를 남의 손에 맡기지 않는 나라에 다가설 수 있다.
윤재식 한국기초과학지원연구원 책임연구원
nbgkoo@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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