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영화 ‘암살자(들)’이 역사 왜곡 논란과 정치권의 전방위적 ‘상영 중단’ 압박 속에서 개봉 엿새 만에 박스오피스 2위로 내려앉았다.
29일 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KOBIS)에 따르면, ‘암살자(들)’은 전날 전국 6만 7000여 명(매출액 점유율 26.8%)을 동원해 ‘타짜: 벨제붑의 노래’(이하 ‘타짜 4’·6만 8000여 명)에 박스오피스 1위 자리를 근소하게 내줬다. 개봉 나흘 만에 100만 관객을 돌파하고 추석 연휴에만 140만여 명을 동원, 누적 관객 156만 명을 달성했으나 지금은 다소 주춤한 상황이다. 다만 연휴 이후 전체 관객 급감과 스크린 분배가 맞물린 1000여 명 차이의 박빙 승부인 만큼, 흥행 동력이 꺾인 것은 아니다.
극장가의 순위 싸움보다 뜨거운 것은 영화가 지핀 ‘역사적 뇌관’이다. 영화는 1974년 8월 15일 육영수 여사 피격 사건의 공식 결론이었던 북한·조총련(재일본조선인총련합회) 단독 범행설 외에, 당시 정권 핵심부나 중앙정보부(KCIA) 윗선의 개입 가능성을 다룬 가설적 의혹을 서사의 동력으로 삼았다.
보수 정치권과 박정희대통령기념재단은 즉각 ‘상영 철회’를 들고나오며 총공세를 퍼부었다.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노무현 전 대통령을 건드리면 고소하면서 박정희 전 대통령 모욕은 표현의 자유냐”며 “표현의 자유가 좌파의 전유물이냐”고 쏘아붙였다. 주진우 의원은 “유족의 가슴을 미어지게 하는 패륜적 범죄이자 엄정 처벌 대상”이라고 규정했고, 유영하 의원과 박성훈 수석대변인 역시 “명백한 정치적 프로파간다이자 선동”이라며 날을 세웠다. 박정희대통령기념재단 또한 성명을 통해 “국가적 비극을 오락으로 전락시켜 사실을 왜곡했다”며 제작사의 대국민 사과와 전국 극장 상영 즉각 중단을 요구했다.
정치권의 압박에도 허진호 감독과 함께 스페셜 GV 무대에 오른 박찬욱 감독은 영화에 대한 감탄을 숨기지 않았다. 그는 “결과를 보고 정말 너무나 잘 기획했구나, 정말 영리하고 스마트하다며 여러 번 감탄했다”며 “영화를 보고 정말 놀랐다. 브라이언 드 팔마의 영화 속 장면들을 보는 것 같았다”고 호평했다.
파문이 번지자 제작사 하이브미디어코프와 제작진은 “‘암살자(들)’은 1974년 역사적 사건을 모티브로 공개된 기록에 영화적 상상력을 더한 극영화”라며 “특정한 결론을 확정하거나 사실을 왜곡하려는 의도가 없다”고 밝혔다. 이어 “영화 어디에서도 특정 인물을 사건의 배후로 규정하지 않았으며 가설을 사실로 제시하지도 않았다”며 “정치적 목적이 없는 순수 창작의 산물로 바라봐 달라”고 당부했다.
그러나 온라인상의 여론 지형은 극심한 양극화의 늪에 빠졌다. 실관람객 인증 기반의 CGV 골든에그지수(Golden Egg Index) 91%, 네이버 실관람객 평점 8.3점으로 작품성에 대한 지지가 견고한 반면, 포털 네티즌 평점은 조직적 ‘별점 테러’로 인해 2.2점(10점 만점)까지 추락했다.
여기에 이종배 국민의힘 전 서울시의원은 29일 서울경찰청에 허진호 감독과 제작진을 형법상 허위사실 적시 명예훼손 혐의로 고발했다. 이 전 시의원은 “영화 제목도 ‘암살자’가 아니라 복수형인 ‘암살자(들)’로 정해 문세광 외에 다른 암살 주체가 존재할 가능성을 암시하고 있다”며 “관객들이 박정희 전 대통령이 시해 배후에 있었거나 범행에 관여했을 가능성이 있는 것처럼 인식하게 한다”고 주장했다.
한편 29일 오전 기준 실시간 예매율에서는 일본 애니메이션 ‘극장판 치이카와: 인어 섬의 비밀’이 40.8%로 1위를 질주하는 가운데, ‘암살자(들)’은 11.3%로 2위를 지키고 있다.
sh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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