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강진)=김광우 기자] “누군가 반려동물로 키웠던 개들인 거죠”
전남 강진의 한 개농장. 웬만한 대형견 한 마리가 몸을 뉘기만 해도 꽉 찰 듯한 좁은 철창 안. 목줄을 찬 작은 개 한 마리가 눈에 띄었다.
철창 아래에는 색이 하얗게 바랠 정도로 오래된 배설물이 수북하게 쌓여 있었다. 주변에는 백골이 된 개의 머리뼈까지 바닥을 뒹굴고 있었다.
굳이 되짚지 않아도, 지난 수십년간 지속돼 온 사육 환경을 짐작할 수 있는 풍경이었다.
한켠에는 흙투성이가 된 목줄이 아무렇게나 널려 있었다. 누군가의 곁에서 살던 개들까지 이곳으로 흘러들어왔다는 흔적이다.
한때 개들로 가득했을 녹슨 우리, 상당수는 이미 텅 비어 있었다. 그 사이 마지막까지 남은 수십여마리 개들이 사람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겁에 질려 구석으로 몸을 숨기는 개가 있는가 하면, 낯선 사람을 향해 꼬리를 흔들며 철창 사이로 코를 내미는 개도 있었다.
이날 농장에 남아 있던 개는 70여마리. 모두 살아서 철창 밖으로 나왔다. 농장을 떠나 치료와 재활을 거쳐 새로운 가족을 만날 기회를 얻었다.
말 그대로 ‘행운의 개들’이다.
개식용을 끝내기로 법까지 만든 지 2년여가 지났다. 하지만 식용견 농장에 있던 모든 개가 이들처럼 살아서 새 주인을 찾은 것은 아니다.
먼저 문을 닫은 개농장에서 사육되던 개 대부분은 구조되지 못한 채 도축됐다. 그리고 아직 농장에 남아 있는 개들이 있다.
개식용 전면 금지까지 남은 시간은 불과 수개월. 이번 구조 활동과 같이, 하나의 목숨이라도 더 살리려는 노력이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남은 개 모두가 새로운 삶을 보장받을 수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 개식용 산업이 사라지는 순간까지 수많은 개들의 희생이 이뤄지고 셈.
지난달 29일 글로벌 동물보호단체 한국 휴메인 월드 포 애니멀즈는 전남 강진의 한 개농장에서 마지막까지 남아 있던 개 70여마리를 구조했다.
한때 이 농장에 있던 개는 지금보다 훨씬 많았다. 과거 최대 1000마리의 개가 이곳에서 사육됐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사육 규모가 줄면서 70여마리가 마지막까지 농장에 남았다.
구조된 개들의 모습도 제각각이었다. 진돗개뿐만 아니라 저먼셰퍼드, 웰시코기 믹스, 허스키 믹스, 스피츠 믹스 등 다양한 중·소형견이 섞여 있었다. 사육 환경이 그러하듯, 상태는 좋지 못했다. 일부는 영양실조나 피부감염 등으로 치료가 필요한 상태였다.
이들 대부분은 미국과 캐나다의 재활시설과 협력 보호단체로 옮겨져 치료와 행동교정 등을 거친 뒤 새 가족을 찾게 된다. 아직 비행이 어려울 정도로 어린 강아지들은 어미와 함께 머물다가 내년 2월 이후 이동할 예정이다.
이상경 한국 휴메인 월드 포 애니멀즈 캠페인 팀장은 “지난 10여년간 우리 구조팀은 수천마리의 생명을 구조하며 이 동물 학대 산업에서 개들이 겪는 고통을 직접 목격해왔다”며 “어쩌면 특별법 전면 시행을 앞두고 마지막이 될지 모르는 이번 구조는 말로 다 표현하기 어려울 만큼 뜻깊은 순간”이라고 설명했다.
이날 구조는 하루아침에 이뤄진 게 아니다. 올해 초 한 시민의 제보로 외부에 알려졌다. 제보를 받은 국내 동물보호단체가 휴메인 월드 포 애니멀즈 측에 도움을 요청했고, 이후 관할 지자체에 농장 상황을 신고했다.
현장조사에서는 동물 사육·관리와 관련한 동물보호법 위반 사항이 확인됐다. 결국 80세 농장주는 남아 있던 개들의 소유권을 휴메인 월드 포 애니멀즈 측에 넘겼다. 앞으로 개식용 산업에 다시 참여하지 않겠다는 내용에도 서명했다.
이후 수개월에 걸쳐 구조 준비가 이어졌다. 해외 이동에 필요한 건강검진과 예방접종이 진행됐고, 각종 검역·운송 서류까지 마련됐다.
휴메인 월드 포 애니멀즈가 국내 개농장 구조에 나선 것은 지난 2015년부터다. 그동안 구조한 개는 약 3000마리. 이번 강진 구조는 국내에서 진행하는 마지막 대규모 개농장 구조에 해당한다.
국회는 2024년 1월 ‘개의 식용 목적의 사육·도살 및 유통 등 종식에 관한 특별법’, 이른바 개식용종식법을 통과시켰다. 같은 해 2월 6일 법이 제정됐고, 8월 7일부터 시행됐다.
다만 개를 식용 목적으로 기르고 죽이는 행위가 이때부터 곧바로 금지된 것은 아니다. 농장과 도축·유통업체, 음식점 등이 사업을 정리할 수 있도록 약 3년의 유예기간을 뒀다.
문제는 이 기간 농장에서 사라진 개 대부분이 구조되지 못하고 도축됐다는 점이다.
지난해 10월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소속 서천호 의원이 농식품부에서 제출받아 공개한 자료를 보면, 2025년 8월 말까지 폐업한 개사육농장은 1072곳이었다.
이들 농장에서 사육됐던 개 34만6313마리 가운데 33만4648마리, 96.6%가 도축됐다. 다른 개농장으로 옮겨진 개는 9308마리, 사육 과정에서 폐사한 개는 1806마리였다.
반면 반려견이나 경비견으로 전환된 개는 166마리, 분양·입양된 개는 385마리에 그쳤다.
휴메인 월드 포 애니멀즈도 같은 문제를 지적한다. 단체는 정부 통계를 토대로 개식용종식법이 통과된 2024년 이후 올해 5월까지 식용 목적 사육견 가운데 구조된 개의 비율이 약 0.3%에 불과한 것으로 보고 있다.
애초 산업 규모가 워낙 컸다. 농식품부에 따르면 2024년 정부에 신고된 개사육농장은 1537곳, 식용 목적으로 사육되고 있던 개는 약 46만6000마리에 달했다.
정부는 이들을 모두 구조하는 대신 번식을 줄여 사육 규모를 감축하고, 농장을 일찍 폐업할수록 더 많은 지원금을 주는 방식으로 조기 폐업을 유도했다.
실제 농장 숫자는 빠르게 줄었다. 농식품부가 올해 5월 발표한 자료를 보면 1537곳 가운데 1265곳이 폐업했다. 반면 구조 및 보호 여력은 턱없이 부족했다.
농식품부가 2024년 개식용종식 기본계획을 발표할 당시 전국 동물보호센터는 228곳으로, 한 번에 약 2만1000마리를 보호할 수 있었다. 당시에도 이미 약 1만5000마리가 보호 중이었다. 수십만마리를 감당할 수 있는 규모가 아닌 셈이다.
민간단체 활동에 의지할 수도 없었다. 휴메인 월드 포 애니멀즈는 대규모 개농장 구조와 해외 입양을 진행하는 유일한 국제 동물보호단체. 하지만 지난 10여년간 국내 개농장에서 구조한 개는 약 3000마리 수준이다.
이번 강진 농장의 70여마리를 구조하는 데만 소유권 이전부터 건강검진, 예방접종, 검역, 해외 운송과 입양 준비까지 수개월이 필요했다.
수십만마리에 달했던 식용견 규모를 고려하면 전반적인 보호·구조 여력이 부족했던 셈. 하지만 정부와 지자체까지 현실적인 한계가 있다는 핑계로, 아직 농장에 남아 있는 개들을 외면해서는 안 된다는 지적이 나온다.
전면 금지까지 남은 기간 동안 한 마리라도 더 살릴 수 있도록 보호와 구조에 더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는 것.
실제 농식품부가 올해 5월 집계한 기준으로 272개 개사육농장은 여전히 운영 중이었다. 정부는 이들 농장의 조기 폐업을 유도하고 신규 입식과 음성적인 사육을 막는 한편, 잔여견 발생을 최소화하기 위한 현장점검을 강화한다는 계획이다.
동물보호단체들은 여기에 더해 남아 있는 개들이 실제 구조와 입양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보다 적극적인 지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이상경 캠페인 팀장은 “이들 70여마리 개들은 사라져가는 개식용 산업 속에서 고통받아 온 수많은 개들 가운데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한국 휴메인 월드 포 애니멀즈는 “개식용종식법의 전면 시행까지 얼마 남지 않은 유예기간 동안 산업에서 희생되는 개들의 수를 최소화하기 위해 정부의 적극적인 행정조치가 필요하다”며 “법 시행 이후에도 단속과 감시의 사각지대에서 개식용을 목적으로 한 불법 행위가 발생하지 않도록 정부와 지자체가 철저한 법 집행과 관리·감독에 총력을 다할 것을 촉구한다”고 강조했다.
woo@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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