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 지급정지에 항의한 고객, 다음 날 사기 신고
사기범 신뢰해 피해 인지 늦어져…자발적 송금 유도
금융사기 피해액 3년 새 3배, 송금 후 회수 어려워
우리은행, 진술 교차 검증·거래 패턴 분석해 피해 차단
[헤럴드경제=서상혁·김서현 기자] “왜 내가 내 돈을 못 보내게 하느냐.”
지난 2월 우리은행 고객인 50대 A씨는 이미 1억2000만원을 보낸 지인 계좌에 8000만원을 추가로 송금하려다 은행에 가로막혔다. 상대 계좌가 주식 리딩방 투자사기로 신고된 곳이었기 때문이다. A씨는 다음 날 영업점을 찾아 항의하다, 다음 날에야 경찰에 사기 피해를 신고했다.
12일 서울 중구 우리은행 본점에서 열린 ‘금융사기 예방 기자간담회’에서는 이처럼 피해자가 사기 사실을 뒤늦게 인지한 사례와 이를 막기 위한 은행의 대응 과정이 공개됐다.
우리은행에 따르면 지난 2월 A씨 계좌에는 가족 명의 계좌에서 1억2000만원이 입금된 뒤 곧바로 다른 은행의 계좌로 이체됐다. 이후 A씨 본인의 증권계좌에서 8000만원이 추가로 들어왔고, 이 돈을 같은 계좌로 송금하려는 과정에서 이상거래탐지시스템(FDS)이 작동해 이체가 차단됐다.
우리은행은 즉시 상대 은행에 연락해 해당 계좌가 투자사기로 신고된 사실을 확인하고 지급정지 조치를 했다. A씨에게 거래 목적을 묻자 “지인에게 돈을 빌려줬다”고 설명했지만, 정작 지인의 기본적인 정보에는 제대로 답하지 못했다.
이튿날 영업점을 찾은 A씨는 해당 계좌가 주식 리딩방 사기로 신고됐다는 설명을 듣고 생각해보겠다며 돌아갔다. 이후 하루가 더 지나서야 경찰에 피해를 신고했다.
전재홍 우리은행 금융사기예방부 총괄수석은 “피해자는 그동안 사기범의 말을 믿고 행동해왔기 때문에 은행에서 갑자기 사기라고 이야기해도 바로 받아들이지 못한다”며 “관련 정보를 충분히 설명해주고 시간이 지나야 본인이 속았다는 사실을 깨닫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피해자가 사기 사실을 쉽게 알아차리지 못하는 배경에는 갈수록 교묘해지는 범죄 수법이 있다. 범죄조직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공개된 정보 등을 분석해 피해자의 개인적 상황과 심리를 파고든다. 투자사기의 경우 처음에는 소액 투자를 권유하고 실제로 수익금을 인출할 수 있게 해 신뢰를 쌓은 뒤 거액의 투자를 유도한다. 피해자 스스로 돈을 보내도록 만드는 방식이다.
금융사기 피해 규모도 커지고 있다. 경찰청에 따르면 국내 금융사기 피해액은 2022년 7911억원에서 지난해 2조3755억원으로 3년 만에 약 3배 늘었다. 피해금이 여러 대포통장으로 분산되거나 가상자산으로 전환되면 자금 추적과 환급도 어려워진다.
우리은행이 제시한 자료에 따르면 2022년부터 올해 1분기까지 보이스피싱 피해환수율은 약 22%에 그쳤다. 이마저도 지급정지 등을 통해 피해자에게 돌려준 금액이 포함된 수치다. 전 수석은 “실제로 수사기관이 범죄조직을 검거해서 피해금을 찾아오는 비율은 굉장히 낮다”며 “보이스피싱 조직 자체가 와해되지 않는 이상 빠져나간 피해금을 다시 찾기는 거의 불가능하다고 봐도 된다”고 설명했다.
이에 우리은행은 FDS로 이상거래를 포착하면 고객에게 송금 목적을 확인하고, 다른 금융회사와 의심 계좌 정보를 공유해 사기 여부를 판단하고 있다. 거래 금액과 자금 이동 경로뿐 아니라 송금인과 수취인의 진술이 일치하는지도 확인하는 방식이다.
지난 9월에는 송금인과 수취인의 관계에 대한 설명이 엇갈리는 점을 포착해 2억6000만원의 피해를 막기도 했다. 타 금융회사 고객 B씨가 우리은행 고객 C씨에게 2억9000만원을 송금한 뒤 이 중 3000만원이 다른 은행의 사기 의심 계좌로 빠져나간 사례다.
우리은행은 해당 금융회사와 연락해 송금 경위를 확인했다. B씨는 C씨가 자신의 조카사위로, 투자 경험을 쌓아보라며 돈을 보냈다고 설명했다. 반면 C씨는 자신이 B씨의 조카라고 답했다. 두 사람의 관계에 대한 설명이 엇갈리자 은행은 계좌를 정지시켰고, 이후 B씨가 영업점을 찾아 사기 피해를 신고했다. 이를 통해 남아 있던 2억6000만원의 추가 유출을 막았다.
전 수석은 “다른 은행과의 협업이 굉장히 중요하다”며 “피해자가 자신이 사기를 당했다는 사실을 인지하기까지 생각보다 시간이 오래 걸린다는 점도 알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금융사기는 한 기관만 노력한다고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며 “경찰과 금융기관, 다른 관계기관들이 협력할 수 있는 네트워크를 강화하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검찰 사칭 보이스피싱에 속아 대출금으로 금을 구매하려던 고객의 피해를 막은 사례도 있다. 지난해 5월 58세 D씨가 대출금 1억8000만원을 금거래소 계좌로 송금하자, 우리은행은 거액을 대출받아 금을 구매하는 거래를 의심해 고객에게 연락했다.
세 차례 시도 끝에 고객과 통화한 은행 직원은 D씨가 검찰 사칭범의 지시에 따라 금을 현물로 받아 전달하려던 사실을 파악했다. D씨는 이미 닷새 전 다른 금거래소에 1억3000만원을 송금해 피해를 본 상태였다. 은행 직원은 즉시 사기범과의 통화를 끊도록 안내하고 경찰 전기통신금융사기 통합대응단 신고로 연결했다. 이를 통해 추가 대출금 1억8000만원으로 구매하려던 금이 사기범에게 넘어가는 것을 막았다.
전 수석은 “금융사기가 의심되고 고객이 제대로 소명하지 못하면 바로 거래를 정지시키고 있다”며 “30분이나 1시간 안에 다른 계좌로 돈이 빠져나가 추가 피해가 발생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가장 중요한 것은 피해금이 송금되기 전에 차단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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