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죄를 입증할 책임은 국가에 있다.
민주제도를 지탱하는 것은 선거만이 아니다. 행정부가 권력을 남용할 때 이를 제어할 독립적인 사법부가 있어야 한다. 독재자들의 절대권력을 공개적으로 높이 평가해 온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역시 사법적 심사의 대상이다. 2025년 재집권 이후 미국 연방대법원은 관세 부과를 비롯한 행정부의 여러 조치에 제동을 걸거나 제한을 가했다. 행정부의 명령이 법에 어긋날 때 사법부가 이를 심사하고 바로잡을 수 있다는 점은 민주제도가 작동하는 중요한 조건이다.
재판의 정의는 결과뿐 아니라 절차의 공정성에 있다. 결론을 미리 정해 놓고 피고인에게 충분한 방어 기회를 주지 않는 법정을 영어로 ‘캥거루 법정(kangaroo court)’이라고 한다. 국가가 압도적인 인력과 자원을 동원해 개인을 기소하는 만큼, 범죄를 입증할 책임도 전적으로 국가에 있다. 피고인이 자신의 결백을 증명해야 하는 것이 아니다.
필자가 직접 지켜본 캐나다 토론토의 한 법정에서는 통역관이 도착하지 않자 재판장이 “Case dismissed!(사건을 기각한다)”라고 선언했다. 모든 사건이 이렇게 종결되는 것은 아니지만, 국가가 개인을 재판하려면 피고인이 재판을 이해하고 참여할 조건부터 갖춰야 한다는 원칙을 보여 준 장면이었다.
러시아처럼 권력이 집중된 국가에도 법원과 재판은 존재한다. 그러나 법원이 있다는 사실만으로 사법부가 독립적이거나 재판이 공정하다고 말할 수는 없다. 국가 권력이 결론을 정해 놓고 법원이 그 결론에 법적 형식을 부여한다면, 재판은 권력의 도구가 된다. 러시아에서는 모스크바의 바스마니 지방법원 이름을 딴 ‘바스마니식 사법(Basmanny justice)’이라는 표현이 쓰인다. 법보다 국가 권력의 요구에 종속된 사법을 비판하는 말이다.
러시아 형사재판의 무죄율은 1%에도 못 미치는 것으로 보고된다. 거의 모든 재판의 결론이 미리 정해져 있다고 할 수 있다. 행정부와 정보기관의 압력 아래 국가의 주장을 받아들이는 법원, 피고인의 반박보다 권력의 요구를 앞세우는 재판은 독립적인 사법부가 민주제도에서 왜 필요한지를 보여 준다.
러시아의 사법 현실을 보여 주는 법정 모습에서는 피고인을 철창으로 둘러싸인 작은 공간에 가둔 채 재판을 진행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런 배치는 피고인을 판결 전에 이미 위험한 범죄자로 보이게 한다. 변호인과의 소통이나 자유로운 재판 참여에도 장애가 될 수 있다. 유럽인권재판소는 2014년 러시아 관련 사건에서 법정의 금속 철창 안에 피고인을 가두는 처우가 인간의 존엄을 침해한다고 판단했다.
필자는 육영수 여사를 온화하고 훌륭하게 내조했던 영부인과 다른 모습으로 기억하는 사람을 만나 본 적이 없다. 박정희 대통령이 이끌었던 산업화와 가난을 극복해 온 시대의 의미도 잘 알고 있다. 이번 칼럼은 우리 20세기 역사에서 큰 발자취를 남긴 두 분의 존엄을 훼손하려는 글이 아니다. 국가가 개인의 죄를 어떤 증거와 절차로 입증했는지 묻는 글이다.
역사는 국가의 발표에서 끝나지 않는다. 민주제도에서는 남아 있는 의문을 증거로 검증하고, 확인된 사실과 아직 풀리지 않은 의문을 독자에게 구분해 설명해야 할 책임이 있다. 역사를 토론하며 사실과 증거를 바탕으로 합리적으로 생각하는 자세를 키우는 것 역시 우리가 역사에서 배워야 할 일이다.
박정희 대통령의 장기 집권 후반에는 대한민국의 사법부 역시 행정부와 중앙정보부의 영향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권력이 행정부에 집중되고, 사회의 불공정과 불의를 알릴 언론마저 검열받던 ‘입틀막’ 시대였다. 법원은 존재했지만 국가 권력의 주장을 독립적으로 검증하고 피고인의 권리를 실질적으로 보호할 수 있었는지가 문제다. 문세광은 바로 그 사법 체제 생태계에서 재판받았다.
1974년 8월 15일 육영수 여사 저격 사건으로 기소된 문세광의 법정 사진에는 가죽수갑과 번호가 부착된 수의가 보인다. 2000년대 이전의 법무부 훈령에 따르면 수갑을 ‘금속수갑’과 ‘가죽수갑’으로 구분하고, ‘가죽수갑’은 정신이상자, 중범죄자 등 교정사고 위험이 큰 수용자에게 장시간 계속하여 수갑을 사용할 필요가 있을 때 사용하였다.
가죽수갑의 장기간 사용은 이후 헌법적 심사의 대상이 됐다. 수용자에게 약 388일간 가죽수갑을 채운 처우에 관해 헌법재판소가 2003년 위헌 판단을 내린 사건도 있다. 공판정에서 피고인의 신체를 구속하지 못하도록 하는 원칙과 교정시설에서 가죽수갑을 사용하는 문제는 구분해 살펴야 한다.
반면 윤석열 전 대통령이 수의 대신 정장 차림으로 형사재판에 출석한 모습도 보도됐다. 사복을 입었다는 사실만으로 공정한 재판이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법정에서 피고인을 어떤 모습으로 보이게 하는가는 무죄추정과 인간의 존엄을 생각하게 하는 중요한 문제다. 그 권리는 피고인의 지위나 국민적 호감도에 따라 달라져서는 안 된다.
한편 통역관의 증언으로 소개된 내용에는 검사가 박 대통령 암살 시도 중 사람들이 사망했던 사실 대신 “한 사람이 부상당했다”고 말하자 문세광이 자신의 죄가 무거워져 석방되지 못할 것을 걱정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문세광이 일본어로 “육 여사가 맞은 것은 얼마 전에 알았다. 내 기억으로는 육 여사를 겨냥하지 않았다”고 진술했다는 보도도 있다. 문세광이 당시 사건의 결과와 자신의 처지를 어느 정도 정확히 파악하고 있었는지 의문을 갖게 하는 부분이다.
필자는 1987년 6월 민주화운동을 취재하러 서울에 왔을 때, 당시 필자가 일하던 로스앤젤레스 타임스의 도쿄·서울 지국장 샘 제임슨(Sam Jameson) 선배를 처음 만났다. 탁월한 관찰력을 지닌 그는 2013년 세상을 떠날 때까지 필자의 선배이자 친구였다. 1960년부터 일본특파원으로 동아시아를 취재했던 샘은 자신이 1974년 8·15 저격 사건 현장에 있었으며, 육 여사를 숨지게 한 총탄이 문세광이 아닌 다른 사람의 총에서 나왔다고 생각한다고 여러 번 말했다. 저널리즘에서 가장 가치 있는 내용은 기자가 직접 보고 기록한 내용이다.
샘은 세상을 떠나기 111일 전인 2012년 12월 29일, 필자에게 보낸 이메일에서 “2013년 8월이면 일본외신기자클럽(FCCJ) 회원이 된 지 50년이 된다”고 썼다. 오랫동안 서울을 찾지 못한 것을 아쉬워하며 다음과 같은 말도 남겼다.
“Regretfully, I haven‘t been to Seoul for years but found myself sympathizing with Park Keun Hye because I had covered the assassinations of both her mother and her father.”
“오랫동안 서울에 가지 못해 아쉽지만, 나는 박근혜에게 연민과 공감을 느꼈다. 그의 어머니와 아버지가 모두 암살당한 사건을 내가 직접 취재했기 때문이다.”
이 한 문장에는 샘의 긴 취재 인생이 압축되어 있다. 그는 일본과 한국에서 반세기에 가까운 시간을 보내며 동아시아 현대사의 현장을 지켜봤고, 1974년 육영수 여사 피격 사건뿐 아니라 1979년 박정희 대통령 피살 사건도 직접 취재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을 정치적으로 평가한 것이 아니라, 부모 두 사람의 피살 사건을 모두 취재했던 기자로서 한 인간이 겪었을 상실에 공감한 것이다.
그런 샘이 필자에게 여러 차례 반복해서 말한 것이 있었다. 1974년 8월 15일 국립극장 현장에서 육영수 여사를 숨지게 한 총탄은 문세광의 총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고 자신은 생각한다는 것이었다. 직접 현장에서 암살사건을 목격하고 수십 년이 지난 뒤에도 같은 기억을 반복해서 전한 그의 증언은 당시 총탄의 출처와 탄도를 다시 검토해야 할 이유를 제기한다.
수사와 발표의 관계도 중요하다. 당시 수사 책임자는 신문에 실린 사건 내용이 자신의 수사팀이 아니라 중앙정보부에서 발표한 것이라고 발언했다. 총격 당일인 1974년 8월 15일 자 사건 설명에는 수사팀도 모르는 내용이 포함돼 있었다는 것이다. 수사팀은 중앙정보부가 제시한 설명과 다른 가능성을 독립적으로 검토했는가. 검찰과 법원은 이를 증거에 따라 심사했는가.
공식 수사와 판결은 문세광의 총격으로 육 여사가 사망했다고 판단했다. 필자가 검토한 수사보고서의 설명에 따르면, 장전된 다섯 발 가운데 네 발이 발사됐고 한 발은 불발이었으며, 다섯 발의 행방이 모두 설명돼 있다는 것이다. 한편 육 여사의 피격 시점이 문세광의 마지막 발사 이후였다는 분석도 있다. 각 탄환의 행방과 피격 시점을 현장 기록 및 탄도 자료와 대조해야 한다.
육영수 여사를 숨지게 한 탄환은 어디에 있으며, 그 탄환이 문세광의 총에서 나왔다는 판단은 어떤 증거에 근거했는가. 탄환을 확보했다면 감정과 보관 기록을, 확보하지 못했다면 그 출처를 입증한 다른 증거를 밝혀야 한다.
방어권 역시 검증해야 한다. 관련 보도에는 국선변호인 송명관·차영조 변호사가 협박과 비난을 받아 선정 취소를 요청했지만 변호를 계속했다는 내용이 있다. 변호인이 지정됐다는 사실만으로 충분하지 않다. 위협 없이 증거를 다투고 국가의 주장에 반박할 수 있었는지가 중요하다.
일본에서 태어나 자란 문세광에게 통역이 충실히 제공됐는지도 확인해야 한다. 일본어 답변을 한국어 조서에 기록했다는 사실만으로 혐의와 증거를 정확히 이해하고 방어권을 행사했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그가 육 여사를 겨냥하지 않았다고 진술했다는 보도와 석방을 기대했다는 통역관의 증언도 기록과 대조해야 한다.
필자가 의견을 구한 법조인은 당시 재판부가 육 여사를 사망하게 한 탄환의 확보와 감정을 요구하지 않았던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유신 시절이고 중정을 통한 수사와 이를 거스를 수 없는 분들이 맡아 재판했으니까요. 또한 수사기록에는 그런 부분에 대한 내용은 들어 있지 않았을 가능성이 크고, 검사나 나아가 변호인 측에서도 문세광 탄환이 아닐 수 있다는 데에 아무런 의심을 갖지 않았을 가능성이 큽니다. 따라서 탄환 및 발사 각도, 발사된 탄환 숫자, 전후 사정을 분석한 자료가 새 증거로 확보된다면 다시 재판을 해 볼 가치는 있다는 의견입니다.”
문세광은 1974년 10월 19일 사형을 선고받고, 12월 17일 대법원에서 형이 확정된 뒤 사흘 만에 처형됐다. 항소와 상고를 거쳤다는 사실과 충분한 방어 기회를 보장받았다는 평가는 별개다. 돌이킬 수 없는 형벌을 서둘러 집행하면서 새로운 증거나 구제절차를 검토할 실질적인 기회가 있었는지 물어야 한다.
탄환을 찾지 못했다는 사실만으로 문세광의 무죄가 입증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국가가 어떤 증거로 그의 형사책임을 입증했는지는 분명히 설명돼야 한다. 언론의 역할은 국가의 발표를 되풀이하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확인된 사실과 풀리지 않은 의문을 구분하고 증거로 검증해야 한다.
육영수 여사를 숨지게 한 탄환은 어디에 있는가? 사형을 집행한 국가가 답해야 할 질문이다.
hongi@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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