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일 재계에 따르면 SK·삼성·현대차·두산 그룹 등 국내 주요 대기업들이 미국 원전 설계기업 웨스팅하우스에 최대 4조원 규모의 지분 투자를 검토하고 있다고 한다. 정부가 주도하는 한미 원전 협력에 국내 기업들이 전략적 투자자로 참여하는 방식이다. AI(인공지능) 확산에 따른 전력 수요 급증으로 미국은 2030년까지 대형 원전 10기를 건설할 예정이다. 투자가 이뤄진다면 국내 기업들에 새로운 기회가 될 수 있다는 기대가 나온다.

최근 정부는 1200억달러(약 160조3400억원)를 투입해 미국 현지에 원전 8기를 건설하고, 웨스팅하우스 지분을 공모가 대비 10% 할인된 가격에 인수하는 내용의 대미 투자 협의를 체결했다. 정부가 목표로 하는 인수 지분율은 5~10%(의결권 포함)로 한국전력과 한국수력원자력의 재무 부담을 줄이기 위해 민간에 손을 내민 것이다.

미국 원전 시장 진출에 적극적인 SK그룹은 조 단위 자금 투입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미 SK와 SK이노베이션은 2022년 미국 소형모듈원전(SMR) 기업 테라파워에 2억5000만달러를 투자해 주요 주주가 됐고, 지난 8월에는 테라파워와 글로벌 SMR 사업을 공동 추진하기로 했다. 삼성물산과 현대건설, 두산에너빌리티, GS건설 등도 투자 참여를 검토하고 있다. 웨스팅하우스 지분 투자가 실제 사업 수주로 이어진다면 삼성물산과 현대건설은 원전 건설을, 두산에너빌리티는 원자로 등 핵심 기자재 공급을 확대할 수 있다. SK도 기존 SMR 투자와 연계해 미국 에너지 사업의 기반을 넓힐 수 있다.

하지만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도 적지 않다. 웨스팅하우스의 목표 지분율인 5~10%로 경영 참여와 의사결정 권한을 확보할 수 있을지가 불분명하다. 이사회 참여권이나 주요 경영 사항에 대한 권한을 충분히 확보하지 못하면 투자 규모에 걸맞은 영향력을 행사하기 어려울 수 있다. 주주가 되더라도 미국 원전 건설이나 핵심 기자재 공급 물량을 보장받는 것은 아니다. 국내 기업의 사업 참여 범위와 계약 조건을 구체적으로 확보해야 한다. 과거 한전·한수원과 웨스팅하우스가 원전 기술의 지식재산권을 둘러싸고 분쟁을 벌였던 전례도 있다. 양측이 2025년 1월 합의한 내용에 국내 기업들의 권리 확보가 충분히 담겼는지가 중요하다.

AI 확산으로 세계 각국이 원전 건설에 속도를 내고 있는 점은 우리에게 좋은 기회다. 웨스팅하우스의 설계 기술과 국내 기업의 우수한 시공 능력을 결합하면 미국은 물론 유럽 등 제3국 시장 진출도 노려볼 만 하다. 다만 투자는 기업의 자율적인 경영 판단에 따라 이뤄져야 한다. 기업 참여를 독려하기에 앞서 투자할 만한 매력적인 조건을 만드는 것이 정부의 역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