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성 유기농 말차를 시리얼로…‘마시는 차’에서 ‘먹는 차’로 발상 전환
2024년 창업 후 초기 3개월 매출 6600만원…올해 매출 1억원 눈앞
박람회 시식으로 소비자 반응 확인…“좋은 제품과 좋은 사업은 달랐다”
5년 뒤 매출 10억원 목표…해외 진출·차 문화 체험 공간 추진
[헤럴드경제=김선국 기자] 말차 라테, 말차 케이크, 말차 쿠키. 요즘 말차는 찻잔보다 디저트 접시에서 더 자주 보인다. 이 흐름을 눈여겨본 청년이 있다. 차는 ‘마시는 것’이라는 틀을 깨고, ‘먹는 차’를 만들었다.
전남 보성에서 3대째 차 사업을 이어온 집안의 조승하(2004년생) 다격 대표다. 대학생인 그는 또래 친구들에게 차를 권할 때마다 “쓰다”, “어렵다”는 반응을 들었다. 좋은 차를 만드는 것만으로는 젊은 소비자를 끌어들일 수 없다고 봤다. 그가 택한 것은 차 자체가 아니라 먹는 방식을 바꾸는 일이었다.
한국농수산대학교 특용작물학과에 재학 중인 조 대표는 2024년 다격을 창업했다. 제품 기획부터 원료 조달, 제조, 브랜딩, 유통까지 사업 전반을 직접 챙긴다. 직원은 1명이다. 지난해 매출은 9200만원이었고, 올해는 16일 기준 1억원에 육박해 이미 지난해 실적을 넘어섰다.
대표 제품은 보성산 유기농 말차를 9.3% 넣은 시리얼 ‘말차꾸덕’이다. 차를 다기에 우려 마시는 대신 우유나 요거트에 곁들여 아침 식사나 간식으로 먹도록 만들었다. 설탕과 밀가루는 넣지 않았고 기름 없이 만들었다. 단맛은 스테비아로 더했다. 전통 차의 원료는 살리고 소비자가 즐기는 방식을 바꾼 것이다.
조 대표는 “다격은 보성의 차를 마시는 원료에서 매일 먹는 식품으로 바꾸는 브랜드”라고 설명했다.
3대째 이어온 차 농사...대학에서 특용작물 공부
차는 조 대표에게 낯선 농산물이 아니었다. 가족이 차를 재배하고 가공하는 모습을 보며 자랐다. 좋은 원료를 생산하는 일과 그 원료의 가치를 시장에서 인정받는 일은 다르다는 현실도 자연스럽게 접했다.
대학에서 특용작물을 공부하고 식품 분석과 품질관리 실습을 경험하면서 관심은 생산에서 판매로 확장됐다. 농산물의 품질을 높이는 것만큼이나 소비자가 원하는 형태로 가공하고, 시장에 맞는 브랜드를 만드는 일이 중요하다고 판단했다.
또래의 반응은 사업 방향을 구체화하는 계기가 됐다. 차를 그대로 권하면 선뜻 손을 내밀지 않던 사람들도 말차가 디저트나 간식에 들어가면 관심을 보였다. 차를 즐기지 않는 사람에게 차의 효능이나 풍미를 설명하기보다 일상에서 부담 없이 먹을 수 있는 제품을 만드는 편이 낫겠다고 생각했다.
말차 열풍을 단순히 유행으로 소비하는 대신, 전통 차 산업의 소비층을 넓힐 기회로 본 셈이다. 기존 차 소비자를 겨냥한 제품이 아니라 차를 즐기지 않던 사람까지 고객으로 끌어들이는 데 초점을 맞췄다.
2024년 9월 제품을 선보인 뒤에는 박람회와 팝업 행사장을 직접 누볐다. 온라인 광고에 먼저 돈을 쓰기보다 소비자에게 제품을 맛보게 하고 반응을 살폈다. 어떤 맛에 관심을 보이는지, 가격을 들은 뒤 어떤 질문을 하는지, 구매를 망설이는 이유는 무엇인지 기록했다. 현장에서 얻은 반응을 제품 개발과 판매 전략에 반영했다.
예상과 다른 결과도 나왔다. 말차를 즐기는 마니아가 주요 고객일 것으로 생각했지만, 실제로는 평소 차를 즐기지 않던 소비자도 시식 후 제품을 구매했다. 한 번 제품을 산 고객이 다시 부스를 찾아 재구매하는 일도 있었다.
조 대표는 “제가 페르소나로 설정했던 일반 소비자가 다시 제품을 선택했을 때 시장에서도 통할 수 있겠다는 확신이 생겼다”고 말했다.
초기 성과도 뒤따랐다. 창업 초기 약 3개월 동안 올린 매출은 6600만원. 조 대표는 농산물을 생산하는 데 그치지 않고 가공과 브랜딩, 유통을 결합하면 부가가치를 높일 수 있다는 가능성을 확인했다.
청년 창업가가 배운 사업의 조건...소비자 반응 챙기고 재고 관리하고
물론 매출이 곧 수익을 의미하지는 않았다. 제품을 판매하기도 전에 원료비와 제조비, 물류비, 행사비가 먼저 나갔다. 제조업체의 최소 생산수량을 맞춰야 했고, 원료나 패키지 공급이 늦어지면 제품 출시 일정 전체가 밀렸다. 대학 수업을 들으면서 제품 개발과 생산, 납품, 정산까지 챙기는 일도 만만치 않았다.
조 대표가 창업 과정에서 얻은 가장 큰 교훈은 제품 경쟁력과 사업의 지속 가능성이 별개라는 점이다.
그는 “초기에는 제품을 만드는 데 집중한 나머지 반복적으로 판매할 유통 구조와 현금흐름을 충분히 설계하지 못했다”며 “좋은 제품과 좋은 사업은 같지 않다는 점을 배웠다”고 말했다.
이후에는 생산 규모를 먼저 키우기보다 샘플 테스트와 현장 판매를 통해 소비자 반응을 확인한 뒤 생산량을 결정하는 방식으로 바꿨다. 수요를 확인하지 않은 채 재고부터 쌓는 위험을 줄이기 위해서다.
다시 창업한다면 무엇을 먼저 하겠느냐는 질문에도 답은 명확했다. “고객 100명에게 직접 판매한 뒤 왜 샀고 왜 사지 않았는지를 기록하고, 그 결과를 바탕으로 생산량과 패키지에 투자하겠다”고 했다.
다격은 ‘말차꾸덕’에서 확인한 가능성을 바탕으로 제품군과 판로를 동시에 넓힐 계획이다. 말차 시리얼을 오리지널·마일드·프로틴 등으로 세분화하고, 말차 스프레드와 말차 단백질 간식 ‘말차피쉬’도 선보일 예정이다. 온라인 판매와 박람회 중심의 판로는 급식·프랜차이즈·호텔·기업 간식 등 기업 간 거래(B2B) 시장으로 확대한다. 해외에서는 베트남을 시작으로 미국·오스트리아·일본을 목표 시장으로 삼아 바이어 상담과 제품 검증을 추진한다.
“청년 농부, 새로운 세대가 찾게 하는 상품 고민해야”
창업 초기 정부 지원사업도 제품을 시장에 내놓는 데 도움이 됐다. 창업중심대학 예비창업자 지원과 국가식품클러스터의 청년식품창업 관련 지원을 통해 제품 개발과 시험 분석, 패키지 제작의 기반을 마련했다. 다만 조 대표는 지원금을 확보하는 것보다 지원이 끝난 뒤에도 사업을 이어갈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지원사업이 초기 시장을 검증하는 기회가 될 수 있지만, 지원금 자체가 목표가 돼서는 안 된다”며 “지원 종료 후에도 고객이 계속 구매하는 구조를 만드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말했다.
조 대표가 가장 자랑스럽게 여기는 성과도 매출 규모만은 아니다. 3대째 이어온 집안의 차 산업을 그대로 물려받는 데 그치지 않고, 보성 차를 또래 소비자가 직접 돈을 내고 구매하는 새로운 식품으로 만들어냈다는 점이다. 첫 제품 출시 이후 9회 이상의 박람회와 판매 행사에 참여했고, 80건 이상의 고객 후기를 확보했다. 처음에는 학생이 만드는 작은 제품 정도로 바라보던 주변의 시선도 재구매 고객이 늘면서 달라졌다.
조승하 다격 대표는 농업을 꿈꾸는 또래 청년들에게도 생산 이후의 시장을 함께 고민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는 “농업에 들어온다는 이유만으로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라며 “고객이 돈을 내고 반복해서 구매할 이유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다격은 내년 매출 1억5000만원을 목표로 잡았다. 보성 차를 활용한 식품을 다양화하고, 소비자가 차 문화를 직접 경험할 수 있는 오프라인 공간도 마련할 계획이다. 5년 뒤에는 연 매출 10억원 이상의 안정적인 식품기업으로 성장한다는 구상이다.
3대째 이어온 보성 차밭에서 조 대표가 물려받은 것은 차만이 아니다. 앞선 세대가 좋은 차를 만드는 방법을 쌓았다면, 그는 그 차를 새로운 세대가 찾게 하는 방법을 고민한다. 차를 우려 마시지 않는 세대라면 시리얼로 먹게 하면 된다는 발상의 전환이다.
조 대표는 “한국 말차를 특별한 날 즐기는 기호식품이 아니라 누구나 일상에서 부담 없이 경험하는 식품으로 만드는 것이 목표”라며 “보성 차의 가치를 새로운 소비 방식으로 알리고 싶다”고 말했다.
adastra@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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