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김주리 기자] 중미 코스타리카가 엘살바도르의 초대형 교도소를 본뜬 수용시설을 개소했다. 마약 밀매 조직과 갱단의 폭력 범죄가 급증하자 최대 5100명의 중범죄자를 격리할 수 있는 대규모 교도소를 마련하고 강경 치안 정책에 나선 것이다.
16일 AFP통신과 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코스타리카 정부는 지난 14일 수도 산호세 인근 산라파엘 데 알라후엘라에서 ‘조직범죄 고도격리센터’(CACCO·카코) 개소식을 개최했다.
시설은 기존 라레포르마 교정단지 내에 건설됐다. 총 건축 면적은 3만1000㎡로, 각각 1020명을 수용할 수 있는 5개 구역으로 구성됐다. 최대 수용 인원인 5100명은 코스타리카 전체 수감자의 약 20%에 해당한다.
교도소의 설계와 운영 방식에는 엘살바도르의 초대형 교도소인 ‘테러범 수용센터’(CECOT·세코트)가 영향을 미쳤다. 엘살바도르 정부는 시설 설계와 운영체계 구축에도 협력했다.
주황색 죄수복·하루 야외활동 1시간…엄격한 수감 생활
새 교도소는 조직범죄 집단의 지도부와 청부살인범, 교도소 안에서도 범죄조직을 지휘하는 고위험 수감자 등을 집중적으로 관리하기 위해 마련됐다.
수감자들은 주황색 죄수복을 착용하며 외부 활동은 하루 1시간으로 제한된다. 가족 면회에도 엄격한 규정이 적용된다.
시설 곳곳에는 24시간 감시할 수 있는 영상장비와 출입 통제 시스템이 설치됐다. 휴대전화 등 외부 통신수단 반입을 차단하고 교도소 내부에서 범죄조직의 활동이 이어지는 것을 막는 데 초점을 맞췄다.
코스타리카 정부는 이달 말부터 수감자 이송을 시작할 예정이다. 이송 작업은 단계적으로 진행되며 올해 말까지 약 2500명을 수용한다는 계획이다.
라우라 페르난데스 코스타리카 대통령은 개소식에서 범죄에 강력하게 대응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그는 새 시설이 범죄조직을 상대로 국가의 통제력을 회복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나이브 부켈레 엘살바도르 대통령에게도 감사를 표시했다. 페르난데스 대통령은 엘살바도르가 범죄와의 싸움에서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며 교도소 건설에 협력한 부켈레 대통령에게 감사의 뜻을 전했다.
페르난데스 대통령은 16일 엘살바도르를 방문해 세코트 교도소의 시설과 운영 방식을 직접 살펴볼 예정이다.
살인사건 3년 연속 800건 넘어…마약조직 범죄에 강경 대응
코스타리카가 초대형 교도소 건설에 나선 배경에는 급격한 치안 악화가 있다.
한때 중미에서 치안이 안정적인 국가로 평가받았던 코스타리카에서는 최근 국제 마약조직의 활동이 확대되면서 살인과 조직범죄가 늘고 있다.
코스타리카 사법당국에 따르면 2023년 살인사건은 905건으로 사상 최고 수준을 기록했다. 2024년에는 876건, 지난해에는 873건으로 다소 줄었지만 여전히 높은 수준을 유지했다.
당국은 상당수 살인사건이 마약 운송 경로와 지역 유통망을 둘러싼 범죄조직 간 충돌에서 발생한 것으로 보고 있다.
코스타리카는 남미의 코카인 생산지역과 북미·유럽 소비시장을 연결하는 주요 운송 경로에 위치해 있다. 국제 마약조직이 항구와 물류망을 활용하면서 조직 간 세력 다툼이 격화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페르난데스 대통령은 지난 5월 취임 이후 조직범죄에 대한 강경 대응을 주요 국정과제로 추진해 왔다.
정부는 새 교도소를 통해 범죄조직 핵심 인물을 일반 수감자들과 분리하고, 기존 교정시설의 과밀 수용 문제도 완화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중남미 다른 국가들도 대규모 교도소 건설에 나서고 있다.
에콰도르 정부는 약 1만50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신규 교도소 건설을 추진하고 있다. 기존 교도소의 과밀 수용과 범죄조직의 시설 장악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조치다.
게이코 후지모리 대통령이 이끄는 페루 정부 역시 조직범죄 단속을 강화하고 교정시설 확충에 나서는 등 강경 치안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엘살바도르 모델 확산…범죄 감소 효과와 인권 침해 논란
코스타리카의 새 교도소는 엘살바도르 부켈레 대통령의 치안 정책에서 직접적인 영향을 받았다.
부켈레 대통령은 2022년 갱단 폭력이 급증하자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하고 대대적인 범죄조직 소탕 작전을 시작했다. 이후 갱단 관련 혐의로 체포된 사람은 9만명을 넘어섰다.
2023년 문을 연 세코트는 최대 4만명을 수용할 수 있는 초대형 교도소다. 조직범죄 관련 수감자들을 대규모로 격리하면서 엘살바도르의 강경 치안 정책을 상징하는 시설이 됐다.
엘살바도르 정부 발표에 따르면 인구 10만명당 살인 발생 건수는 2015년 100건을 웃돌았으나 지난해에는 1.3건까지 감소했다.
범죄 감소 성과가 알려지면서 중남미 각국에서도 부켈레식 강경 대응을 도입하려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인권 침해 논란도 이어지고 있다.
국제 인권단체들은 엘살바도르 정부가 비상사태를 장기간 유지하면서 영장 없는 체포와 자의적인 구금, 적법절차 위반 등을 반복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수감자들의 변호인 접견과 가족 면회가 제한됐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인권단체들이 집계한 구금 중 사망자도 500명을 넘어섰다.
부켈레 대통령은 최근 비상사태 이후 체포된 사람 가운데 최대 절반을 석방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갱단과 협력한 혐의로 수감된 사람들의 가담 정도를 개별적으로 심사하고 조기 석방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설명했다. 석방 대상자에 대한 감독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다만 갱단 소탕을 위한 국가비상사태는 유지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코스타리카에서도 엘살바도르식 치안 정책을 둘러싼 논쟁이 이어지고 있다. 강력한 범죄조직 통제가 필요하다는 정부 입장과 기본권 침해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맞서고 있다.
코스타리카 정부는 새 교도소에서 강력한 보안 조치를 시행하면서도 기본적인 인권을 존중하겠다는 방침이다. 범죄조직의 영향력을 차단하기 위한 초대형 교도소가 실제 치안 개선으로 이어질지, 수감자 처우와 인권 문제를 어떻게 관리할지가 향후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rainbow@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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