英 장애·질병급여 수급자 700만명…전체 인구 10% 넘어

테니스 엘보·난독증에도 새 차량 지원…수급 기준도 논란

앤디 버넘 영국 총리가 지난 9일(현지시간) 잉글랜드 중부 맨체스터에 위치한 치매 요양 센터를 방문해 주민들의 의견을 경청하고 있다. [AP]
앤디 버넘 영국 총리가 지난 9일(현지시간) 잉글랜드 중부 맨체스터에 위치한 치매 요양 센터를 방문해 주민들의 의견을 경청하고 있다. [AP]

[헤럴드경제=정목희 기자] 영국에서 장애·질병 관련 복지급여 수급자가 급증하면서 국가 재정에 경고등이 켜졌다. 전체 인구의 10%가 넘는 약 700만명이 관련 급여를 받는 가운데 연간 지출액도 1000억파운드(약 177조원)를 넘어서면서 복지제도의 지속 가능성을 둘러싼 우려가 커지고 있다.

16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영국인 캐서린 위엘란드는 2021년 극심한 불안 증세로 외출은 물론 혼자 몸을 씻는 것조차 어렵다고 신고한 뒤 매달 약 700파운드(약 124만원)의 장애 급여를 받았다. 그는 장애인 지원 차량 프로그램으로 소액의 보증금만 내고 BMW를 제공받아 미용실과 음식점, 놀이공원 등을 드나들었다. 멕시코 칸쿤으로 여행을 떠나 집라인을 타고 사륜 오토바이를 모는 모습이 담긴 사진을 소셜미디어(SNS)에 게시하기도 했다.

위엘란드는 올해 초 사기 혐의를 인정해 부정수급액 약 2만3000파운드(약 4000만원)를 반환하게 됐지만 실형은 면했다. 그의 변호인은 법정에서 “복지급여를 받는다고 외출하면 안 되는 줄 몰랐다”고 주장했다.

이 사건은 영국에서 불거진 복지제도 논쟁에 기름을 부었다. 현재 영국에서 질병 또는 장애 관련 급여를 한 종류 이상 받는 사람은 약 700만명으로 전체 인구의 10%를 넘는다. 특히 생산연령인구 수급자는 2019년 290만명에서 470만명으로 6년간 60% 이상 급증했다.

의료비를 제외한 질병·장애 복지 지출은 올해 1000억파운드를 웃돌 전망이다. 이는 영국 국방비보다도 약 3분의 1 많은 규모로, 정부 전망대로라면 관련 지출은 향후 4년 안에 1300억파운드까지 불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신규 장애급여 신청 중 상당수는 우울증과 불안장애, 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ADHD) 등 정신건강 문제와 관련돼 있다. 이러한 질환은 신체적 장애에 비해 정부가 상태를 객관적으로 확인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실제로 2017년부터 2025년까지 암 관련 장애급여 신청이 두 배로 늘어나는 동안 정신질환 관련 신청은 네 배로 급증했다.

수급자가 현금급여 일부를 포기하는 대신 3년마다 새 차를 이용할 수 있는 제도도 있다. 영국 신차 7대 중 1대가 이 제도를 통해 공급된다. 지난해에는 주된 의학적 상태가 테니스 엘보인 수급자 40명, 밀 불내증 50명, 난독증 320명이 이 제도로 새 차를 제공받았다.

영국은 소득이나 취업 여부와 관계없이 장애로 인한 추가 생활비를 보전해주는 개인독립수당(PIP)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신청자의 일상생활 수행 능력 등을 평가해 지급 여부를 결정하지만, 의사 소견서가 필수인 것은 아니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면담 대부분이 전화나 온라인 등 비대면으로 전환되면서 심사의 실효성을 둘러싼 의문도 커졌다.

문제는 영국을 비롯한 유럽 대부분의 국가가 고령화, 국방비 증액, 친환경 에너지 전환, 국채 이자 부담 등으로 지출은 폭증하는 가운데 경제성장률이 부진해 세수 확대는 제한적이라는 점이다. 영국은 그동안 증세와 차입으로 재정 부담을 감당해 왔다. 팬데믹 이후 추가로 빌린 돈만 1조파운드다. 그러나 조세 부담은 2차대전 이후 최고 수준이고, 부유층은 두바이 등 저세율 지역으로 떠나고 있다. 영국의 차입 비용은 주요 7개국(G7) 가운데 가장 높으며, 최근에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영국 자산운용사 래스본스의 데이비드 쿰스 투자 책임자는 급증하는 복지 지출에 대해 “어느 모로 보나 지속 가능하지 않다”며 “채권시장도 이를 반영하고 있다”고 말했다.

영구의 10년 만기 국채금리는 연초 4.5%에서 5.5%로 올랐다. 키어 스타머 전 총리가 2030년까지 연간 50억파운드를 절감하기 위해 수급 자격요건 강화 등 복지 개혁안을 꺼내들었지만 거센 반발에 철회했다. 복지급여가 이미 국민의 당연한 권리로 인식되는 상황에서 사회안전망을 개혁하려는 시도는 정치적 자살골이 돼버렸다는 진단이다.

앤디 홀데인 전 영란은행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시장에서는 현 정부를 ‘틱톡 영상만 더 잘 만드는 전통적인 증세·지출 확대형 사회주의 정부’가 아닌지 의심하고 있다”며 “영국 정부가 투자자의 신뢰를 회복하고 차입 비용을 낮추려면 복지와 같은 분야에서 정치적으로 고통스러운 지출 삭감을 단행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줘야 한다”고 말했다.


mokiya@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