佛 교육악화·생활고에 55만명 거리로

긴축정책·불평등 등 불만 극단으로 치달아

고교생 촉발뒤 청년·노조·‘노란조끼’ 가세

1750곳으로 시위 확산…방화·약탈 일삼아

1883년 건립 시청 파손 상점 1500곳 피해

경찰 탄약도 소진…내년 대선 앞 책임공방

에마뉘엘 마크롱(오른쪽) 프랑스 대통령이 18일(현지시간) 파리 엘리제궁에서 주재한 범정부 위기 대응 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생활비 급등에 항의하는 전국 시위에 이어 폭력 사태와 약탈이 발생한 다음 날 열린 회의다.  [EPA-AFP]
에마뉘엘 마크롱(오른쪽) 프랑스 대통령이 18일(현지시간) 파리 엘리제궁에서 주재한 범정부 위기 대응 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생활비 급등에 항의하는 전국 시위에 이어 폭력 사태와 약탈이 발생한 다음 날 열린 회의다. [EPA-AFP]

프랑스 전역을 뒤흔든 대규모 폭동으로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의 위기관리 능력이 도마 위에 올랐다. 고물가와 교육환경 악화에 대한 불만으로 학생과 노동자 등이 거리로 쏟아졌지만 정부는 시위 규모조차 제대로 예측하지 못했다. 일부 도시에서는 경찰이 시위 진압용 탄약을 소진한 사이 공공시설이 불탔다. 연금개혁을 둘러싼 갈등과 재정난 속에 누적된 사회적 불만이 폭발하면서 지지율이 15%까지 떨어진 마크롱 대통령에게 치안 실패 책임론까지 더해지고 있다.

프랑스 내무부와 노동총연맹(CGT)에 따르면 지난 17일(현지시간) 프랑스 전역 1750곳에서 집회가 열려 고유가 등 생활비 폭등, 공공 서비스 약화, 마크롱 정부의 긴축 재정 등을 비판했다. 파이낸셜타임스(FT)와 가디언 등은 프랑스 정보기관이 전국 시위 참가자를 약 10만명으로 예상했으나 실제 참가자는 정부 추산 55만명에 달했다고 보도했다. 주최 측 추산으로는 80만명에 이른다. 당국이 시위 규모를 크게 과소평가하면서 경찰 병력 배치와 폭력 사태에 대한 사전 대비가 미흡했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피해 규모도 컸다. 전국적으로 1500곳가량의 상점과 사업장이 약탈당하거나 파손된 것으로 전해졌다. 파리 중심가의 라파예트 백화점, 셀린느·디올 등 명품 매장, 레퓌블리크 광장 인근 슈퍼마켓과 휴대전화 매장 등이 시위대의 주요 타깃이 됐다. 평화적인 행진과 별개로 복면을 쓴 집단이 상점과 공공시설을 공격하면서 치안당국의 대응 능력에 대한 의문이 커졌다.

이번 사태는 교육 여건 개선을 요구하는 학생들의 집회에 고물가로 생활비 부담이 커진 시민과 노동자들이 가세하면서 급격히 확산했다. 교사 부족과 노후 학교시설 등 교육 문제로 시작된 항의가 연료비 상승과 공공서비스 악화에 대한 불만으로 이어진 것이다. 중동 전쟁에 따른 에너지 가격 상승까지 겹치면서 정부의 경제정책 전반을 향한 반발이 커졌다는 분석이다.

생활비와 연료비 상승에 항의하는 전국적인 시위가 열린 다음 날인 18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 도심에서 소요 사태가 발생한 가운데 불길과 연기가 치솟고 있다.  [로이터]
생활비와 연료비 상승에 항의하는 전국적인 시위가 열린 다음 날인 18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 도심에서 소요 사태가 발생한 가운데 불길과 연기가 치솟고 있다. [로이터]

특히 2018년 유류세 인상에 반발해 시작된 ‘노란 조끼’ 시위와 마찬가지로 생활비 부담이 사회적 갈등의 주요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자동차 의존도가 높은 지방 주민과 농민, 운송업 종사자들에게 연료비 상승은 직접적인 생계 부담이다. 여기에 교육 여건 개선을 요구하는 학생들까지 시위에 참여하면서 항의의 범위가 세대와 계층을 넘어 확대됐다.

가장 상징적인 사건은 중부 리모주에서 발생했다. 19세기에 건립된 시청사가 방화로 크게 파손된 가운데 기욤 게랭 시장은 경찰의 대응 실패를 강하게 비판했다. 그는 오후 3시30분께 현장 지방경찰이 시위 진압용 탄약을 소진하면서 폭력 가담자들을 저지하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게랭 시장은 이를 국가의 중대한 실패로 규정하고 정부에 재건 지원을 요구했다.

정부가 시위 규모를 제대로 예측하지 못한 데다 폭력 가담자들의 이동과 공격에도 효과적으로 대응하지 못했다는 것이 지방정부의 문제 제기다. 일부 야당 인사들은 경찰 배치 규모까지 문제 삼았지만 내무부는 관련 주장에 반박했다. 시위 진압 과정에서 청소년이 중상을 입은 사건까지 발생하면서 경찰의 준비 부족과 과잉 대응 논란이 동시에 불거졌다.

이번 사태는 치안 문제를 넘어 마크롱 정부의 정치적 취약성도 드러냈다. 마크롱 대통령은 2017년 집권 이후 노동시장과 연금제도 개편 등 구조개혁을 추진했지만 사회적 반발과 정치권의 대립에 부딪혔다. 정년을 62세에서 64세로 높이는 연금개혁은 대규모 시위를 촉발했고, 개혁을 둘러싼 갈등은 장기간 이어졌다. 2024년 조기 총선 이후 집권 세력이 의회 과반을 확보하지 못하면서 예산안 처리와 주요 정책 추진에도 어려움을 겪고 있다.

특히 재정 건전성 회복과 사회적 요구 사이에서 정부의 정책 선택지가 좁아지고 있다는 점이 문제다. 프랑스의 국가부채는 국내총생산(GDP)의 110%를 웃돌아 유럽연합(EU)의 부채 기준인 60%를 크게 초과한다. 정부는 재정적자를 줄이기 위해 지출을 억제해야 하지만 시민들은 교육과 복지 등 공공서비스에 대한 투자를 확대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구조개혁을 추진하면 사회적 반발이 커지고 개혁을 미루면 재정 부담과 성장 둔화 문제가 누적되는 상황이다.

정치권은 폭동의 책임을 놓고 충돌하고 있다. 극우 국민연합(RN)의 마린 르펜은 정부의 치안 대응을 비판했고, 급진좌파 굴복하지않는프랑스(LFI)의 장뤼크 멜랑숑은 정부의 준비 부족이 혼란을 키웠다고 주장했다. 르코르뉘 총리는 폭력의 책임을 경찰 지휘부에 돌리는 것은 부당하다며 반박했다. 마크롱 대통령의 정치적 입지도 좁아진 상태다. 폭동 이전 실시된 입소스 여론조사에서 그의 지지율은 15%에 그쳤으며 르코르뉘 총리의 지지율도 22%로 나타났다. 내년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정부의 위기 대응 능력이 주요 정치 쟁점으로 떠오르고 있다.

서지연 기자


sjy@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