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차 업계 성장속도 겁날 정도”…위기의식 토로
남양연구소 아이디어 페스티벌서 “새 희망 가지게 돼”
130개 아이디어 중 6개 본선 진출
트렁크 혁신 기술 대상
[헤럴드경제(화성)=정경수 기자] “중국 자동차 업체들의 디자인 경쟁력이 상당히 높아졌고, 가격도 1만달러가량 저렴했습니다.”
현대자동차·기아가 19일 경기도 화성시 남양연구소에서 ‘2026 아이디어 페스티벌’을 열었다. 이날 무대에 오른 이재규 현대차·기아 차량개발1담당 전무는 최근 프랑스 파리 모터쇼에서 확인한 중국 자동차 업체들의 경쟁력을 언급하며 이같이 말했다.
중국 업체들이 디자인과 가격 경쟁력을 앞세워 유럽 시장을 빠르게 공략하는 모습을 보면서 현대차그룹의 미래에 대한 위기감도 커졌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이날 연구원들이 직접 개발한 6개의 발명품을 접한 뒤 그의 생각은 달라졌다.
이 전무는 “중국 자동차 업체들이 디자인과 가격 경쟁력을 앞세워 유럽 시장을 공략하는 과정을 보면서 ‘현대차그룹 역시 안심할 수 없다’는 위기감을 느꼈다”면서 “그러나 오늘 다양한 기술 아이디어를 소개받으면서 새로운 희망을 가지게 됐고, ‘우리에게 아직 희망이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그가 희망을 발견한 곳은 연구원들이 일상에서 느꼈던 사소한 불편함을 해결하기 위해 직접 만든 시제품을 선보이는 사내 경연대회다.
올해로 17회를 맞은 현대차·기아 아이디어 페스티벌에는 총 130건의 아이디어가 접수됐다. 이 가운데 서류와 발표 심사를 통과한 6개 팀이 본선 무대에 올랐다. 참가자들은 약 4개월 동안 설계부터 제작, 검증까지 직접 맡아 머릿속 구상을 실제 작동하는 기술로 구현했다.
가장 높은 평가를 받은 작품은 의외로 복잡한 인공지능(AI)이나 로봇 기술이 아니었다. 한 손으로 트렁크 바닥판을 접어 적재 공간을 넓히는 ‘트라이폴드 러기지보드’가 대상을 차지했다.
M.S.V.2팀이 개발한 이 장치는 기존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의 트렁크 바닥판을 앞으로 밀면 세 겹으로 접혀 뒷좌석 등받이 쪽에 고정되는 방식이다. 바닥판을 아예 분리하지 않고도 트렁크 아래에 숨어 있던 공간을 활용할 수 있다.
현장 시연에서는 기존 방식으로는 싣기 어려웠던 유모차가 바닥판을 접은 뒤 트렁크에 들어가는 과정이 공개됐다. 바닥판을 차량 바깥쪽으로 당기면 무거운 짐을 싣는 보조 선반으로도 활용할 수 있다. 간단한 테이블 기능까지 갖췄다.
조광래 현대차·기아 MSV내장설계2팀 파트장은 “트렁크 공간을 오랫동안 설계해 왔지만, 정작 제 가족들조차 트렁크 바닥 아래 넣어둔 우산을 꺼내거나 찾지 못하더라”며 “사람은 세 번이나 동작해야 하는 기능은 잘 사용하지 않는다. 한 손으로 한 번에 끝낼 수 있도록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에서 아이디어를 냈다”고 설명했다.
첨단 기술을 일상에 접목한 작품들도 눈길을 끌었다. 최우수상을 받은 컴포트 드라이브팀의 ‘멀미 Zero’는 자동차 내부의 엠비언트 라이트와 뒷좌석 디스플레이를 활용해 탑승객의 멀미를 줄이는 기술이다.
차량이 좌우로 회전하거나 가속·감속할 때 실내 조명이 움직이며 탑승객에게 차량의 움직임을 시각적으로 전달한다. 눈으로 보는 움직임과 몸으로 느끼는 움직임 사이의 차이를 줄여 멀미를 완화한다는 원리다.
이 기술은 단순한 구상에 머물지 않았다. 연구팀은 1만㎞가 넘는 실차 주행 시험을 진행했으며, 시험에 참여한 48명 가운데 40명이 멀미 완화 효과를 경험했다고 밝혔다. 추가적인 하드웨어 없이 기존 차량의 조명과 센서 등을 활용할 수 있다는 점도 특징이다.
또 다른 최우수상은 시각장애인의 보행을 돕는 스마트 안경 ‘아이-브릿지’에 돌아갔다. 로봇이 주변 지형과 장애물을 인식하는 자율주행 기술을 안경에 접목한 것이다. 전방의 턱이나 경사, 장애물을 감지하면 골전도 이어폰 등을 통해 이동 방향과 위험 요소를 음성으로 안내한다.
개발에 참여한 연구원은 시각장애인과 함께하는 가이드 러닝 봉사활동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고 설명했다. 자동차에서 내린 뒤에도 목적지까지 안전하게 이동할 수 있도록 로봇의 인지 기술을 사람의 보행에 활용하겠다는 구상이다.
아이를 키우는 부모들의 고민에서 출발한 작품도 있었다. ‘늘봄’은 자율주행 인지·판단 기술을 활용한 영유아 모니터링 장치다. 차량에 장착하면 뒷좌석 아이의 눈 감김과 목 기울어짐 등을 감지하고, 유모차에 옮겨 달면 접근하는 자전거나 킥보드, 차도 진입 위험 등을 부모에게 알려준다.
개발에 참여한 최수영 책임연구원은 두 아이의 아버지다. 특히 생후 15개월 된 둘째가 뒷좌석에서 잘 자고 있는지 확인하려고 운전 중 뒤를 돌아볼 때마다 아내로부터 “앞에 봐”라는 말을 들었던 경험이 개발의 출발점이었다고 소개했다.
아이의 성장에 맞춰 형태가 달라지는 카시트도 등장했다. ‘핀 프린트 시트’는 좌석과 등받이에 설치된 78개의 구동장치가 개별적으로 움직이며 탑승자 체형에 맞는 형태를 만드는 기술이다. 1세와 3세, 6세 등 성장 단계에 따라 좌석 형태를 조절하고, 성인용 시트로도 전환할 수 있도록 설계됐다.
장거리 화물차 운전자의 하루를 가족에게 보여주는 ‘히어로 레코더’도 관심을 모았다. 운전자를 촬영한 영상을 AI가 분석해 하루를 1분짜리 영상으로 편집하는 기술이다.
연구팀은 경남 함안에서 14년째 화물차를 운행하는 김원선 씨의 하루를 영상으로 제작해 공개했다. 오전 5시 33분에 시작해 오후 8시 16분에 끝난 긴 노동의 시간을 짧은 영상으로 압축한 것이다. 개발팀은 운전자의 졸음만 감시하던 차량 카메라를 운전자의 하루를 기억하는 장치로 바꿔보자는 생각에서 출발했다고 설명했다.
물론 이날 선보인 기술들이 당장 양산차에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안전성 검증과 비용, 내구성 등 넘어야 할 과제가 남아 있다. 앞서 2021년 최우수상을 받은 다기능 콘솔은 싼타페의 양방향 멀티 콘솔로 발전했고, 지난해 수상한 트레일러 견인 성능 향상 소프트웨어는 5세대 투싼에 적용됐다.
이 전무는 “그동안 도전과 실패, 혁신을 수없이 강조해왔지만, 오늘은 오히려 스스로를 돌아보게 됐다”며 “입사 34년 차지만 저 역시 이처럼 새로운 아이디어를 현실로 구현하는 도전은 해보지 못한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아직 완벽하지 않은 아이디어일지라도 주저하지 않고 당당하게 선보이는 모습이 인상 깊었다”며 “연구원들의 도전 정신을 보며 뿌듯함을 느꼈고, 현대차그룹의 미래가 밝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강조했다.
kwater@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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