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AI·디지털 서밋 참석 위해 방한

韓·WB, ‘모두를 위한 AI’ 전략에 공감대

삼성에 중고 휴대전화 수리·재사용 제안

개도국 10억명 디지털 접근성 확대 추진

[헤럴드경제=양영경 기자] 아제이 방가 세계은행(WB) 총재가 한국 정부의 미래대응기금 조성 방안에 대해 “좋은 생각”이라며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한국의 디지털 발전 경험을 개발도상국에 전수하는 협력을 강조하면서 삼성에도 중고 휴대전화를 수리해 제공하는 방안을 제안했다고 밝혔다.

글로벌 빅테크의 대규모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 투자에 대해서는 사업 모델의 타당성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면서도 투자는 한동안 이어질 것으로 전망했다.

이재명 대통령이 19일 청와대에서 아제이 방가 세계은행그룹 총재와 접견하고 있다. [연합]
이재명 대통령이 19일 청와대에서 아제이 방가 세계은행그룹 총재와 접견하고 있다. [연합]

방가 총재는 19일 서울 용산구 그랜드하얏트호텔에서 ‘글로벌 AI·디지털 서밋’ 참석을 계기로 기자들과 만나 “한국은 실제로 전 세계적인 데이터센터 호황에 많은 혜택을 입은 국가”라며 “미래대응기금에 대해서 알고 있고 좋은 생각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지금 돈을 많이 벌었다고 이것을 써버리면 나중에 AI를 둘러싼 상황이 바뀌었을 때 그 돈이 모두 없어질 수 있다”며 “비상 상황에 대비해서 구축하는 기금이 재정을 현명하게 사용하는 길이라고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방가 총재가 참석하는 이번 서밋은 20~22일 서울에서 열리는 세계은행그룹 행사로, AI·디지털 기술을 통한 개도국의 일자리 창출과 성장 기회 확대를 논의한다. 워싱턴DC 외부에서는 처음 개최되는 것으로, 160여개국 900여명이 참석한다.

방가 총재는 AI 확산에 따른 노동시장 충격에 대비해야 한다는 점에서도 미래대응기금 조성의 필요성에 공감했다. 그는 “거대언어모델(LLM)과 그 활용이 어느 정도 노동시장의 혼란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불가피하다고 생각한다”며 “전망 기관마다 내용이 조금씩 다르지만 고소득국에서는 약 3분의 1의 일자리가 크든 작든 어느 정도 영향을 받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AI로 인한 생산성 향상은 앞으로 장기간에 걸쳐 더 많은 일자리를 창출하게 될 것”이라면서도 “궁극적으로는 그렇겠지만 그때가 되기까지 조정의 시간이 있을 것”이라고 봤다.

특히 노동에 대한 과세 비중이 자본보다 높은 상황에서 일자리가 사라지면 실직자를 지원해야 하는 부담이 발생한다는 점을 언급하며 “그런 면에서도 한국이 좋지 않은 상황에 대비해 미래대응기금을 조성한다는 것은 좋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글로벌 AI 투자에 대해서는 조정 가능성을 경계했다. 방가 총재는 “빅테크들이 하는 투자는 지금 대규모 데이터센터에 집중돼 있다”며 “그러나 채권시장에서는 이들 데이터센터의 사업 모델이 타당한지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지금까지 이 부문이 굉장히 크게 성장했기 때문에 조정이 있을 것이고 그다음에 반등이 있을 수 있다”면서도 “조정이 없지는 않겠지만 여기에 대한 투자는 한동안 계속 이뤄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AI 투자 호황이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경제에 미칠 영향에 대한 질문에는 태국 부총리와 나눈 대화를 소개했다. 방가 총재는 “한국과는 다르지만 태국도 AI 붐에 의해 혜택을 보고 있는데 호황이 있다면 어려움도 있을 것이라고 이야기했다”고 말했다.

방가 총재는 한국 정부가 세계은행의 디지털 전략에서 중요한 파트너라고 평가했다. 그는 이날 이재명 대통령을 만나 논의한 내용을 소개하며 “세계은행그룹에서는 ‘사람을 위한 AI(AI for the People)’라고 부르는 것을 한국에서는 ‘모두를 위한 AI(AI for All)’라고 부른다”며 “동일한 전략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의 디지털 공공인프라 구축 경험에도 주목했다. 방가 총재는 경제 발전 수준과 관계없이 디지털 공공인프라를 구축하면 이를 토대로 디지털 신분증과 행정서비스 등 다양한 서비스를 발전시킬 수 있다고 설명했다. 현재 약 60개 개도국이 이러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소개했다.

세부적인 협력 사례도 소개했다. 방가 총재는 “우선 한국 정부가 재정 지원을 해 준 글로벌 AI·디지털 지식센터가 한국에 구축돼 있다”며 “한국의 디지털 경험을 다른 국가에 나누는 일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삼성과 만났을 때는 휴대전화 가격이 지금 너무 높기 때문에 오래된 휴대전화를 수리해서 제공하는 방법은 없겠느냐는 아이디어를 공유했다”면서 삼성과의 협력 가능성도 시사했다. 메모리 반도체 부족에 따른 휴대전화 가격 상승이 단기간에 해결되기 어려운 만큼 선진국의 중고 휴대전화를 수리해 개도국에서 재사용함으로써 디지털 접근성을 높이자는 구상이다.

세계은행은 이번 서밋을 계기로 첫 글로벌 디지털 전략을 출범시키며 디지털 접근성 확대, 기기 가격 부담 완화, 디지털 서비스 활성화, AI 활용 역량 구축을 4대 과제로 제시했다. 특히 향후 10~15년간 개도국에서 12억명의 청년이 노동시장에 진입하지만 창출될 일자리는 약 4억2000만개에 그칠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디지털 기술을 통한 생산성 향상과 일자리 창출이 필요하다고 봤다.

방가 총재는 “전 세계에서 인터넷에 접근하지 못하는 사람은 22억명이며 이 가운데 95%가 저소득·중소득국에 있다”고 말했다. 세계은행은 6억명에게 광대역 인터넷을, 4억명에게 인터넷 기반 서비스 이용 기회를 제공하는 등 총 10억명의 디지털 접근성을 높일 계획이다.

이와 함께 대규모 컴퓨팅 자원 없이 농업·교육·보건의료 등에 활용할 수 있는 ‘스몰 AI(Small AI)’를 강조했다. 엘살바도르 초등학생의 스페인어 발음을 평가하는 AI와 인도 농민이 휴대전화로 작물 병충해를 확인하는 애플리케이션을 사례로 소개했다.

방가 총재는 AI의 영향을 받는 일자리 비중이 중소득국에서는 10% 미만으로 낮아지고 저소득국에서는 부정적 영향 없이 긍정적 효과만 나타날 것이라며 개도국에서는 AI가 일자리를 빼앗기보다 교사와 농민, 보건의료 인력의 업무를 돕는 역할을 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AI 혁명에서 개도국들의 필요를 고려하지 않는다면 이들이 뒤처질 수 있다”며 “문제를 바라보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해결하기 위해 행동할 것”이라고 말했다.


y2k@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