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분비대사 질환 권위자 박철영 강북삼성병원 교수 인터뷰
4개 대학병원 내분비내과 전문의 ‘데이터제너레이션 프로젝트’
기존 당뇨병 임상 사후분석으로 렙틴 등 수치 개선 확인
글로벌 톱저널 3편 게재…300억 투입 맞먹는 학술 성과
지방세포 분비 물질 조절 신호 포착…후속 기전 규명 착수
“글로벌 제약사는 막대한 자본을 들여 대규모 연구를 하지만 한국은 허가 임상 하나에도 100억원 이상이 들어가는 큰 연구들을 글로벌 제약사와 같은 연구 방식을 취하기 어렵습니다. 게재된 세 편의 논문은 혈당 관련해서는 신기능 저하군, 아디포카인 관련해서는 위약 대조군, 대조약 비교군 등 각기 다른 분석 설계를 통해 학술적 데이터를 입증했습니다.”
[헤럴드경제=최은지 기자] 박철영 강북삼성병원 내분비내과 교수는 지난 12일 헤럴드경제와의 인터뷰에서 국산 36호 신약 엔블로(성분명 이나보글리플로진)의 3상 임상시험 데이터를 기반으로 진행한 ‘데이터제너레이션 프로젝트’의 의의를 이같이 설명했다.
박 교수는 대한비만학회 이사장을 역임하고 현재 대한당뇨병학회 언론-홍보이사를 맡고 있는 국내 내분비대사 질환의 대표적 권위자다. 그는 당뇨병 치료와 비만 대사 질환의 유기적 연결고리에 주목해 이번 프로젝트를 총괄 기획했다.
이번 프로젝트는 박 교수를 필두로 홍상모(구리한양대병원), 류영상(조선대병원), 김경수(분당차병원) 교수 등 4개 대학병원 내분비내과 전문의가 자문단을 꾸려 기존 임상 자료를 사후분석(Post-hoc analysis)하는 형태로 2024년부터 추진됐다.
그 결실은 괄목할 만하다. 연구진은 다기관 협업을 바탕으로 미국당뇨병학회(ADA), 내분비학회(ENDO) 등 5건의 주요 국제학회 발표를 완주한 데 이어, 피인용지수(IF) 15.6점에 달하는 심혈관·당뇨 분야 국제학술지 ‘카디오배스큘러 다이아베톨로지(Cardiovascular Diabetology)’에 총 3편의 논문을 모두 게재하는 성과를 거뒀다.
신규 허가 임상 하나를 수행하는 데 통상 100억원 이상의 막대한 비용이 소요되는 현실을 감안하면, 기존 3상 데이터를 활용해 도출한 3편의 톱저널 논문은 약 300억원 규모의 연구개발(R&D) 투자를 단행한 것과 맞먹는 임상·학술적 가치를 지닌 셈이다. 자본력의 한계로 후속 연구가 위축되기 쉬운 국내 제약·바이오 생태계에서, 고비용 신규 임상 없이도 글로벌 학술지에 안착하며 국산 신약의 학술적 근거를 다졌다는 평가다.
박 교수는 “단일 임상은 대상자 수가 제한돼 1차 평가변수 외에 다른 임상 지표를 깊이 들여다보는 데 한계가 있다”며 “기존 연구들을 모아 표본 수를 확보하면 통계적 검정력이 생겨 추가적인 학술 근거를 도출할 수 있다”고 말했다. 후발주자 약물이 지닌 연구비와 수익 구조의 한계를 극복하고, 핵심 임상 증거(Evidence)를 확보해 낸 실리적 모델이라는 설명이다.
가장 눈에 띄는 학술적 성과는 기존 임상에서 측정됐으나 활용되지 않았던 바이오마커, 즉 ‘아디포카인(Adipokine)’의 재발굴이다. 아디포카인은 지방세포에서 분비되는 물질로, 대사 질환 조절에 관여한다.
박 교수는 “기존 임상 데이터를 받아보니 실제 측정은 해놓고 정작 논문 분석에는 활용되지 않은 데이터들이 있었다”며 “그 대표적인 지표가 아디포넥틴과 렙틴 같은 아디포카인이었고, 이에 대한 심층 분석을 통해 이나보글리플로진의 새로운 대사 지표 개선 가능성을 포착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게재된 세 편의 논문은 신기능 저하군, 위약 대조군, 대조약 비교군 등 각기 다른 분석 설계를 통해 학술적 데이터를 입증했다.
우선 ‘신기능 환자 대상 분석’에서는 이나보글리플로진이 대조약인 다파글리플로진 대비 유의미한 혈당 강하 효과를 보였으며, 특히 신기능이 저하된 환자군에서도 안정적인 효과를 유지하는 경향을 확인했다.
이어 2형 당뇨병 환자 160명을 대상으로 한 ‘위약대조 연구’에서는 24주간 이나보글리플로진을 투여했을 때 체중 감소와 연관된 아디포넥틴 증가뿐 아니라, 체중 감량 정도를 보정한 후에도 위약군 대비 렙틴(Leptin) 수치가 유의하게 감소하는 체중 독립적 개선 효과를 규명했다.
마지막으로 두 건의 3상(ENHANCE-M·ENHANCE-D) 데이터를 결합한 ‘다파글리플로진 비교 통합분석(427명)’에서는 다파글리플로진 투여군 대비 혈중 렙틴 감소 폭을 확인했으며, 체중 감소 정도를 보정한 후에도 약 2배 가까운 감소 폭을 유지했다. 아울러 인슐린 저항성 지표인 HOMA-IR 감소폭 역시 이나보글리플로진군(-1.36)과 다파글리플로진군(-1.05)에서 각각 확인됐고, 렙틴 감소는 HOMA-IR, 인슐린, C-펩타이드 지표 개선과 유의한 양의 상관관계를 보였다.
박 교수는 이러한 바이오마커 변화의 임상적 의미를 ‘지방세포의 질적 개선’으로 풀이했다. 그는 “체중 수치보다 체지방의 비정상적 증식과 기능 이상이 만성질환을 유발하는 관점에서 보면 병태생리의 근본 원인은 지방세포의 기능 이상에 있다”며 “잉여 에너지가 축적돼 변질된 지방세포에서는 좋은 호르몬은 줄고 염증 사이토카인이 늘어나 호르몬 체계를 교란한다”고 짚었다.
이어 “렙틴은 체중 항상성을 유지하는 주요 호르몬이지만 대사 이상 환자에게는 과도하게 증가해 반응하지 않는 ‘렙틴 저항성’이 나타난다”며 “이나보글리플로진이 이를 개선했다는 것은 지방세포 기능의 정상화 신호로 해석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다만 이번 결과는 사후분석 기반의 탐색적 연구인 만큼 과도한 확대 해석은 경계해야 한다. 엔블로의 공식 허가 효능·효과는 ‘제2형 당뇨병 환자의 혈당 조절’이며, 바이오마커 변화가 곧바로 체중 감량이나 비만 치료 효능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박 교수는 “피검사를 통해 아디포넥틴과 렙틴의 변화를 확인했으나, 이것이 약제의 직접적 작용 경로인지 규명하는 단계는 이제부터”라며 “현재 관련 기초 기전을 확인하기 위한 동물실험 연구를 이어가고 있다”고 설명했다.
글로벌 표준치료제로 도약하기 위한 장기 과제에 대해서도 실현 가능한 전략을 제시했다. 심혈관 질환 발생이나 투석 진행 등을 직접 평가하는 대규모 임상은 막대한 비용이 소요되는 탓이다. 박 교수는 “동일 계열 약물들의 신장·심혈관 보호 효과가 이미 학술적으로 축적된 만큼, 후발 국산 신약은 현실적으로 국민건강보험공단 빅데이터 분석 등 실제임상근거(RWE)를 통해 연결고리를 구축하는 접근이 합리적”이라고 제언했다.
silverpaper@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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