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 당국, 캐피탈사 렌탈 취급한도 완화 검토
캐피탈사 렌터카 15년 새 20배 이상 증가
전업 렌터카업계, 중고차 가격 하락 위험 지적
“경쟁의 확대보다 먼저 봐야 할 것은 경쟁의 건전성”
[헤럴드경제=정경수 기자] 금융 당국이 캐피탈사의 자동차 렌탈사업 규제 완화를 검토하는 가운데 렌터카업계가 자산 건전성에 대한 점검이 우선돼야 한다며 신중한 접근을 요구하고 나섰다. 캐피탈사의 렌터카 보유 규모가 이미 55만대를 넘어선 상황에서 무리한 가격 경쟁이 중고차 가격 하락에 따른 손실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다.
22일 업계에 따르면 한국렌터카사업조합연합회는 최근 발표한 입장문을 통해 캐피탈사의 렌탈 취급한도 완화에 앞서 기존 렌탈자산의 잔존가치와 위험 수준을 살펴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현재 캐피탈사 등 여신전문금융회사는 자동차 렌탈사업을 부수업무로 운영할 수 있다. 다만 렌탈자산 평균잔액이 본업인 리스자산 평균잔액을 넘지 못하도록 하는 이른바 ‘본업비율’ 규제가 적용된다.
이 규제는 2005년 캐피탈사의 렌탈사업을 허용하면서 도입됐다. 금융당국은 지난해 11월 여신전문금융업계 간담회에서 렌탈 취급한도를 완화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캐피탈업계는 장기렌터카 시장의 성장에 맞춰 사업 범위를 넓힐 필요가 있다는 입장이다. 규제 완화로 경쟁이 확대되면 소비자 선택의 폭이 넓어지고 렌트료 인하에도 도움이 될 수 있다는 논리다.
반면 기존 렌터카업계에서는 캐피탈사들이 이미 시장의 주요 사업자로 성장한 만큼 추가적인 사업 확대에 앞서 자산 건전성부터 점검해야 한다고 맞서고 있다.
실제로 연합회 집계에 따르면 캐피탈사의 렌터카 등록대수는 2010년 약 2만7000대에서 지난해 약 55만7000대로 15년 만에 20배 이상 증가했다.
시장 내 비중도 커졌다. 연합회가 올해 7월 말 기준 렌터카 등록대수 상위 30개사를 분석한 결과, 캐피탈사의 점유율은 45.32%로 대형 전업 렌터카사(43.08%)를 넘어섰다. 나머지 약 11%는 1000여개 중소 렌터카업체가 차지하고 있는 셈이다.
차량 증가율에서도 격차가 나타났다. 2021년 말부터 올해 7월 말까지 금융사의 렌터카 등록대수는 37.5% 증가한 반면, 전업 렌터카사는 7.9% 늘어나는 데 그쳤다.
연합회 관계자는 “조건을 붙여 열어준 문에서 조건만 빼면 남는 것은 사실상 무제한 허용”이라고 말했다.
연합회가 특히 우려하는 부분은 장기렌터카 가격을 결정하는 주요 변수인 ‘잔존가치’다.
잔존가치는 차량을 일정 기간 운행한 뒤 계약이 끝났을 때 남아 있을 것으로 예상되는 차량의 가격을 뜻한다. 일반적으로 잔존가치를 높게 책정하면 렌터카 회사가 월 대여료를 낮출 여력이 생긴다.
문제는 계약 종료 시점의 실제 중고차 가격이 예상보다 낮아질 경우다. 예를 들어 4년 뒤 차량을 2600만원에 처분할 것으로 예상해 렌트료를 책정했지만 실제 판매가격이 2000만원에 그친다면 600만원의 차액이 발생한다. 이는 렌터카 사업자의 손실로 이어질 수 있다.
연합회는 지난 8월 한 대형 캐피탈사가 고급 세단과 대형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의 렌트·리스 잔존가치를 각각 1.8%포인트, 5%포인트 높인 사례도 제시했다. 당시 일부 차종의 실제 중고차 시세는 하락하고 있었지만 계약상 예상 잔존가치는 오히려 높아졌다는 설명이다.
중고차 수출시장도 변수로 꼽힌다. 산업통상부에 따르면 지난 9월 중고차 수출액은 4억5000만달러로 전년 동월 대비 56.8% 감소했다. 중동 지역의 지정학적 불안과 주요국의 수입 규제 강화 등이 영향을 미쳤다.
연합회는 해외로 수출되던 중고차 물량이 국내 시장에 남을 경우 차량 가격을 추가로 떨어뜨릴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있다.
해외에서는 중고차 가격 하락으로 렌터카 및 자동차 금융회사가 손실을 입은 사례도 있다. 미국 포드의 금융 자회사인 포드크레딧은 2008년 유가 급등과 대형 SUV의 중고차 가치 하락으로 2분기에만 21억달러의 리스자산 손상차손을 반영했다.
미국 렌터카 업체 허츠도 2024년 초 중고 전기차 가격 하락과 운영비용 부담 등을 이유로 약 2만대의 전기차를 매각하기로 결정하고, 이와 관련해 2억4500만달러의 추가 감가상각비를 반영했다.
연합회는 이처럼 고객이 렌트료를 정상적으로 납부하더라도 차량의 실제 처분가격이 예상 잔존가치를 밑돌면 손실이 발생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일반적인 대출 연체율만으로는 이러한 위험을 충분히 파악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특히 캐피탈사는 은행과 달리 예금을 받을 수 없어 회사채 발행 등 외부 차입에 의존한다. 렌탈사업에서 발생한 손실이 누적되면 자금 조달 여건이 나빠지고 다른 금융상품의 금리에도 부담을 줄 수 있다는 게 연합회의 주장이다.
금융당국 역시 여신전문금융회사의 건전성 관리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금융위원회는 지난 1일 금융시장 상황점검회의에서 4분기 은행채와 여전채의 발행 규모 및 만기 구조를 사전에 살펴보고, 금융권의 자산 건전성과 유동성 대응 여력 등을 점검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연합회는 캐피탈사별 최근 5년간 잔존가치율 변화와 반납 차량의 실제 처분가격, 차량 매각손익 등을 먼저 확인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차종별 중고차 가격 변동에 따른 손실 가능성과 잔존가치 보장회사의 지급 능력, 추가 가격 하락을 가정한 스트레스 테스트도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규제 완화 논의에 국토교통부가 참여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했다. 렌터카업은 여객자동차 운수사업법에 따라 국토부가 관할하지만, 현재까지 논의는 금융당국과 금융업계를 중심으로 진행됐다는 이유에서다.
연합회 관계자는 “렌터카 회사의 경쟁력이 아니라 잔존가치를 높여 잡아 만든 렌트료 인하가 몇 년 뒤 소비자의 금융 부담으로 돌아와서는 안 된다”며 “경쟁의 확대보다 먼저 봐야 할 것은 경쟁의 건전성”이라고 말했다.
kwater@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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