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이트큐브서 ‘아프리카 정물들’ 개최
도예·판소리 등 한국 문화 적극 반영
“블루스와 판소리, 가스펠 묘하게 닮아”
[헤럴드경제=김현경 기자] “한국 친구들은 굉장히 복잡한 것을 매우 공들여 구현하면서도 다른 사람이 봤을 때는 단순해 보이도록 만드는 특징이 있었습니다. 그들의 작품을 보면 ‘절제된 고요함’이라는 단어가 떠올랐어요.”
미국 현대미술가 티에스터 게이츠(53)가 오는 4일부터 12월 18일까지 서울 강남구 화이트 큐브 서울에서 한국 첫 개인전 ‘아프리카 정물들(African Still Life)’을 연다. 조각, 도예, 건축, 퍼포먼스, 음악 등 다양한 매체를 넘나들며 흑인 문화의 역사와 공동체의 삶을 탐구해 온 작가는 이번 전시에서 도예와 음악을 중심으로 정물의 개념을 확장하고, 사물에 축적된 문화적 기억을 조명한다.
오래전부터 한국 문화에 관심을 가졌던 작가는 전통 도예부터 판소리까지 우리 문화를 폭넓게 작품의 일부로 녹여냈다.
게이츠는 3일 화이트 큐브 서울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한국 문화에는 오래된 관조의 지혜가 있다”며 “작품을 통해 이러한 지혜를 기리고 싶었다”고 밝혔다.
작가가 한국 미술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미국 시카고 미술관과 시카고 예술대학교(SAIC)서 만난 한국인 예술가들이었다. 그들의 작품에서 느낀 ‘고요함’은 이번 도자 신작에 영향을 미쳤다. 게이츠는 “한국 친구들의 작품은 의도적으로 절제된 고요함이 있었다”며 “이번에 전시된 벽면 도자 연작에서도 그런 고요함을 느낄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도자 연작 ‘황금 같은 오후에 흘러가는 구름(Receding Cloud at the Golden Time of Day)’(2026)과 ‘검은 달(Black Moon)’(2026)은 만다라, 불탑 등 불교의 상징적 형태를 연상시킨다. 게이츠는 기하학적 형태를 ‘기본 조형 언어’로 삼아 정물을 드로잉의 확장된 방식으로 탐구한다.
그가 주목한 한국 문화의 또 다른 특징은 ‘관조’다. 게이츠는 “다른 사람에게 직접 배우거나 교육을 받기보다는 대상을 관찰하면서 예술적 감각을 키워 왔다”며 “잘 관찰하고, 그것을 더 발전시켜 결국 자기 것을 만들어내는 능력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 같은 생각은 전시의 표제작 ‘아프리카 정물들(African Still Life) #4’(2026)에 고스란히 담겼다. 작품은 중국 문인들이 감상하던 수석과 오래된 황동 구두닦이 받침대, 추모 깃발, 일본 전통 신발 디자인을 적용한 롤러스케이트 등 다양한 사물로 구성된다. 아프리카와 미국, 아시아의 문화적 배경을 한데 결합한 것이다. 작품 전체는 선조를 기리는 제단을 연상시키며, 각각의 사물은 특정 인물이나 장소, 시대를 기억하는 상징으로 기능한다.
게이츠는 “아프리카 정물은 제 삶을 대변하는 하나의 소우주와 같다”며 “아프리카 문화와 다른 문화가 접목된 사물은 내 삶을 압축적으로 나타낸다”고 말했다.
한국 문화에 대한 게이츠의 관심은 미술뿐 아니라 음악으로까지 확장된다. 두 번째 전시실을 채운 사운드 설치 작업은 한국의 리스닝바 문화에서 착안했다. 프랑스계 베트남인 DJ이자 음반 수집가였던 딘 응우옌이 남긴 음반 1만4000여 점을 활용해 관람객이 머물며 음악에 깊이 귀 기울일 수 있는 청음실을 구성했다. 게이츠는 음악을 재생할 때마다 2022년 세상을 떠난 고인을 기리며 그 안에 담긴 기억을 다음 세대와 공유한다.
게이츠는 “청음 공간은 한국이 세계를 관조함으로써 다양한 문화를 흡수해 온 방식을 보여준다”며 “관조는 내가 세계에 대해 배우는 방식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음악에 대한 사랑을 많은 사람들과 나누고 싶다”고 덧붙였다.
그는 이날 미국 흑인 음악인 블루스와 한국의 판소리 ‘심청가’, 가스펠 음악을 직접 들려주며 공통점을 이야기했다.
게이츠는 “처음 판소리를 들었을 때 ‘어떻게 이렇게 친숙하게 느껴질까’ 하고 놀랐다”며 “기쁨과 고통, 그리움, 자연 등이 모두 목소리에 담겨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블루스는 삶이 얼마나 힘든지를 이야기하면서도 언젠가는 더 나아질 수 있다는 희망을 담고 있다”며 “판소리도 그런 회복력과 힘을 갖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또 억압의 역사 속에서 새로운 예술적 에너지가 탄생한다는 점에서도 두 음악이 맞닿아 있다고 봤다.
미술과 음악은 얼핏 동떨어져 보이지만, 그에게는 밀접하게 연결된 예술이다. 그는 “예전에는 작가가 하루 종일 그림만 그리는 존재라는 인식이 있었지만, 이제 세상은 바뀌고 있다”며 “내게는 자연도 필요하고, 정보와 사랑, 다른 사람들의 열정도 필요하다. 음악이 만들어주는 세계가 미술 작업을 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했다.
작가는 아프리카 정물을 ‘끝나지 않는 찬가(ongoing anthem)’라고 말한다. 사물과 음악에 축적된 개인과 공동체의 기억을 환기하는 이번 전시는 색다르면서도 비슷한 감각을 불러일으킨다.
pink@heraldcorp.com
![“세무서 이긴 아들의 효심” 어머니 모신 40년 덕분에 상속세 2억 지켰다 [이세상]](https://wimg.heraldcorp.com/news/cms/2026/10/29/news-p.v1.20261029.9095c7d0d0cc41f1b579f587e921ac19_T1.png?type=h&h=240)
![“V자 반등은 없다” 실탄 아끼는 큰손들, 이번 폭락이 다른 이유 [큰손 따라잡기]](https://wimg.heraldcorp.com/news/cms/2026/10/29/news-p.v1.20261015.bf346e259b1345f280b498eda7b41712_T1.jpg?type=h&h=240)
![창호도 ‘하이엔드’ 시대…재건축 시장에 프리미엄 승부수[그 회사 어때?-KCC]](https://wimg.heraldcorp.com/news/cms/2026/10/28/news-p.v1.20261006.6986af99ec4340659a06462b2dd32e55_T1.jpg?type=h&h=24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