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년 전 이맘때, 인천 중구 인현동의 한 호프집 건물에 불이 났다. 축제를 마치고 뒤풀이하던 고등학생 수십명의 발이 묶였고 유독가스에 질려 쓰러졌다. 미성년자에게도 술을 내주던 무허가 주점이었다. 이 업소는 학교 앞에서 홍보물까지 나눠줬다. 뻔뻔한 불법 영업을 묵인하고 두둔하던 관할 경찰서, 파출소 경찰들이 있었음이 나중에 드러났다. 이 일로 당시 경찰청장과 인천경찰청장은 옷을 벗어야 했다.

그해 11월 새 경찰청장으로 지명된 이무영 청장. 취임식에서 그는 29페이지짜리 연설문을 읽었다. 뼈저린 개혁이 필요하다며 ‘경찰대개혁 100일 작전’을 선언했다. “총경 이상 간부들은 구시대적 사고방식을 과감히 버리고 반성해야 한다”며 제2의 창경(創警)을 외쳤다. 비능률, 권위주의, 부정부패는 0순위 척결 대상으로 꼽혔다.

2026년 가을도 경찰에겐 개혁의 계절이다. 경찰청은 ‘국민과 함께하는 경찰 개혁 100일’을 벌이는 중이다. 이야기를 두루 듣고 다음달 고칠 점들을 정리해 개혁 로드맵을 밝힌다고 한다. 경찰청장 직무대행은 “국민이 어디서 불편을 느끼고, 무엇 때문에 불안했는지, 어떤 순간에 경찰을 신뢰하기 어려웠는지를 듣는 것이 개혁의 첫걸음”이라고 말했다.

1999년의 인천 화재 참사는 사회의 부정(不正)에 눈감은 경찰을 폭로했다. 2026년의 장윤기 사건과 제주 실종신고 허위 종결 등은 경찰의 제 식구 봐주기란 민낯, 시스템의 치명적 맹점을 드러냈다. 거센 쇄신 요구를 마주한 경찰이 100일이란 시간을 기약하며 개혁에 나선 점은 그때와 지금이 닮았다.

다만 경찰의 쓰임새는 그사이 크게 달라졌다. 그때는 검찰의 수사지휘가 서슬 퍼렇게 살아있던 시절이었다. 젊은 경찰 간부들은 수사 독립을 염원했지만, 아득한 일이었다. 그나마 경찰이 할 수 있는 개혁 ‘작전’은 내부의 부정부패 악습을 걷어내는 것뿐이었다.

올가을 초입에 펼쳐진 새 형사사법 생태계에서 경찰은 독자적인 수사 주체가 됐다. 검찰 눈치 보지 않고 형사사건을 수사하고 종결할 수 있게 됐다. 경찰에 맡겨둬도 괜찮을까, 하는 걱정이 여기저기서 피어났다. 경찰 사무 전반의 투명성, 전문성, 완결성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커졌다. 신경 쓸 게 많으니, 개혁의 방정식은 1999년보다 훨씬 복잡하다. 국회와 총리실까지 경찰을 바꾸고 견제할 방안을 찾겠다고 나선 마당이다.

수사하는 검찰이 사라진 자리에서 경찰은 정치적 사건들도 맡아야 한다. 이런 수사는 으레 정치 이해관계자 모두를 만족시키지 못할 테니 여기저기서 욕먹을 각오는 해야 한다. 이미 ‘정치 경찰’이니 ‘무소불위한 경찰 전권 시대’, ‘권력 눈치 본다’ 같이 꼬집는 말들이 나왔다. 경찰의 수사는 일상적으로 의심받고 공격당할 것이다. 이게 무서워서 힘 있는 사람들 눈치와 심기만 살피는 건 상황을 더 나쁘게 할 뿐이다.

더 시끄러워질 일상에서 차분함을 유지하는 연습도 경찰에겐 필요하다. 정치인들이 신경 쓰지 않고 언론도 부각하지 않는 평범한 시민의 작은 불편이나 민생 범죄는 이름 없는 수만 경찰공무원의 책무이다. 가족과 방문한 쇼핑몰에서 누군가 느닷없이 흉기를 휘두르는 일이 없길, 내 부모가 당한 피싱 사기를 경찰이 진지하게 수사해 주기를, 우리 아이가 학폭에 시달리지 않길, 늦은 밤 귀갓길이 불안하지 않기를 다수의 시민은 기대한다.


nyang@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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