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외교육 업무 총괄한 양호석 전 주일 한국대사관 수석교육관

“시험장이 멀어 응시를 망설이던 학습자들에게 기회를 넓혔다”

양호석 전 주일 한국대사관 수석교육관. 그의 재임 기간 일본 내 한국어능력시험 시험장은 35곳에서 약 80곳으로 늘었다. [양호석 전 수석교육관 제공]
양호석 전 주일 한국대사관 수석교육관. 그의 재임 기간 일본 내 한국어능력시험 시험장은 35곳에서 약 80곳으로 늘었다. [양호석 전 수석교육관 제공]

[헤럴드경제(도쿄)=안병철 기자] 일본에서 한국어는 이미 관심의 단계를 넘어섰다.

드라마와 음악에서 시작된 호감이 교실로, 다시 자격증으로 옮겨 가고 있다. 취미로 단어를 외우던 사람들이 한국 대학 진학과 한국 기업 취업을 목표로 시험을 준비한다. 그 변화가 가장 또렷하게 드러나는 지표가 한국어능력시험(TOPIK)이다. 일본 내 응시자는 2019년 약 2만7000명에서 2025년 약 5만명으로 약 1.9배, 사실상 두 배 가까이 늘었다.

TOPIK은 교육부 국립국제교육원이 1997년부터 시행하는 시험이다. 한국어를 모국어로 쓰지 않는 외국인과 재외동포를 대상으로 하며, 한국 대학 입학과 졸업, 한국 기업과 공공기관 취업, 체류자격 심사에 쓰인다. 국내 대학에 지원하려면 통상 3급 이상이 필요하다. 영어권의 토플에 해당하는 시험이라고 보면 된다. 교육부 집계로 전 세계 지원자는 2021년 33만16명에서 2025년 55만3237명으로 늘었고, 시험은 89개국 368곳에서 치러진다. 일본은 중국, 베트남과 함께 해외 응시 규모가 가장 큰 나라에 속한다.

이 증가를 떠받친 것은 관심만이 아니었다. 같은 기간 일본의 TOPIK 시험장은 2019년 35곳에서 약 80곳으로 늘었다. 배우려는 사람은 이미 있었고 시험을 볼 자리가 모자랐던 것이다. 그 확대 작업을 일본 현장에서 조율한 자리에 있던 사람이 양호석 전 주일 한국대사관 수석교육관이다. 재외교육 업무를 총괄하다 지난 9월 임기를 마치고 귀국한 그는 5일 헤럴드재팬과의 인터뷰에서 재임 기간 가장 뚜렷하게 달라진 지표로 이 숫자들을 꼽았다.

양 전 교육관은 시험장 확대의 공을 개인에게 돌리지 않았다. “교육원과 민단, 대학의 한국어 교육 관계자들이 협력해 시험장을 약 80곳으로 늘렸다”며 “시험장이 멀어 응시를 망설이던 학습자들에게 기회를 넓혀 준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 문화에 대한 관심이 커진 영향도 있지만, 그가 반복해서 짚은 것은 접근성이었다. 배우고 싶은 마음보다 시험장까지의 거리가 먼저 걸림돌이었다는 것이다.

TOPIK 응시자 수 증가는 큰 흐름의 일부다. 그는 한국의 발전과 국제적 위상이 높아지면서 일본 사회가 한국의 교육정책 자체에 관심을 갖게 됐다고 했다. 재임 기간 한국 교육정책을 일본에 알리고 양국 교육기관 간 교류를 넓히는 데 중점을 둔 결과, 초중등 학생과 교원 교류에 머물던 협력이 대학과 연구기관으로 넓어졌다는 것이 그의 평가다.

등교 거부 없는 동경한국학교

일본 내 한국 교육의 중심에는 70년 된 학교 한 곳이 있다. 동경한국학교는 1954년 4월 당시 주일 한국대표부와 민단, 재일동포 사회가 힘을 모아 세웠다. 학생 26명, 교실 6칸으로 시작해 2024년 개교 70주년을 맞았고 졸업생은 1만3000명에 이른다. 지금은 초등부와 중등부, 고등부가 각 학년 3학급 체제로 운영되며 정원은 1440명, 교원은 약 100명이다. 한국 정부와 도쿄도의 인가를 받은 사립 각종학교로, 한국 교육과정을 그대로 따르면서 일본 교육과정을 보완한다. 교장은 한국 정부가 교육 전문가를 파견하고, 교원은 한국 출신뿐 아니라 재일동포와 새로운 정착자, 일본인과 외국인까지 다양한 배경에서 뽑는다.

양 전 교육관이 이 학교의 강점으로 먼저 꼽은 것은 교육과정이 아니었다. 캠퍼스는 넓지 않지만 초등학교 1학년부터 고등학교 3학년까지 한 공간에서 수시로 어울린다는 점이었다. “선배는 후배에게 모범을 보이고, 후배는 선배에게 마음 놓고 기댈 수 있다”며 “서로에 대한 신뢰와 여유가 있기에 자유롭고 평화로운 분위기가 자연스럽게 자리 잡았다”고 했다.

일본에서는 학생이 학교에 나오지 않는 등교 거부(不登校)가 중요한 교육과제로 다뤄진다. 그는 재임 당시를 떠올리며 “동경한국학교에는 등교 거부 학생이 없다는 설명을 들었다”며 “학교 구성원들이 학생 한 사람 한 사람에게 관심을 기울여 온 결과로 받아들였다”고 말했다. 다만 “한 학교의 사례를 한국과 일본 교육 전체의 우열로 일반화할 수는 없다”고 선을 그었다.

동경한국학교는 한국과 일본 대학 진학을 각각 염두에 둔 K반과 J반, 영어 몰입교육(이머전 교육)을 운영한다. 그는 “한국어와 일본어, 영어를 함께 익히고 다양한 진학 경로를 모색할 수 있다는 점이 큰 강점”이라며, 일본의 국제학교나 현지 명문학교와 비교해도 학생과 교사 사이의 신뢰와 소통은 한국학교만의 분명한 강점이라고 했다. 남은 과제로는 우수 교원 확보와 글로벌 교육 프로그램 발전을 들었다.

“지원은 충분히, 개입은 절제”

해외 한국학교는 한국 교육부의 예산 지원과 감독을 받으면서 현지 실정에 맞는 자율 운영을 요구받는다. 양 전 교육관은 “해외 한국학교 가운데는 운영상 문제를 겪는 곳도 종종 있다”고 전제한 뒤, 동경한국학교는 내부의 자치 장치와 외부의 감독 장치가 균형 있게 작동하며 그것이 오랜 전통으로 자리 잡았다고 평가했다.

그가 제시한 기준은 간명했다. “지원은 충분히 하되 개입은 절제하고, 학교는 그 신뢰에 책임 있는 운영으로 답하는 것”이 바람직한 균형이라는 것이다. “문제가 있는 곳에는 분명하게 개입하되, 잘 운영되는 학교에는 자율을 넓혀 주는 방식이 바람직하다”고 덧붙였다. 외부 감독이 학교 자치를 대신해서는 안 된다는 단서도 달았다.

학교 담장 밖에서 학부모가 실제로 부딪히는 문제로는 한국 대학의 재외국민 특별전형을 들었다. ‘3년 특례’와 ‘12년 전 교육과정 이수자 전형’은 지원 자격과 심사 방식이 서로 달라 해마다 혼선이 생긴다. 해외 체류 기간과 부모의 근무 형태, 체류자격, 실제 거주 요건을 둘러싼 혼란도 반복된다.

그는 “명확하고 일관된 기준, 충분한 사전 고지, 정확한 정보 제공이 가장 중요하다”며 “해석을 잘못하기 쉬운 기준에 대해서는 사례집을 만들어 배포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한국대학교육협의회가 중심이 돼 대학별 기준과 주요 사례를 체계적으로 안내하고, 각 대학 입학 담당 부서도 업무 네트워크를 활용해 선의의 피해자가 생기지 않도록 해달라는 당부다. 대학의 선발 자율성은 존중해야 한다는 점도 함께 짚었다.

학교를 평가하는 자신의 기준도 밝혔다. 성적이나 진학 실적은 아니었다. “졸업한 학생들이 다시 학교를 찾아와 선생님께 인사드리고, 후배들에게 자신의 지금 모습을 자랑스럽게 보여줄 수 있는 학교. 그런 학교가 진정한 명문학교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퇴임 후 양 전 교육관이 공을 들이고 있는 일은 한일 대학생 교류의 틀을 바꾸는 것이다. 단기 방문이나 일회성 행사에 그치지 않고, 양국 학생이 함께 지역의 문제를 발굴하고 현장을 조사해 해결방안을 내놓는 지속형 프로그램으로 키우고 싶다며 “사전 학습과 현장 조사, 공동 프로젝트, 성과 공유로 이어지는 구조를 구상하며 최근 전문가들과 협의를 이어가고 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디지털 플랫폼과 필요한 AI 도구를 활용하되, 중심에는 학생들의 주도적인 탐구와 한일 대학 간 신뢰를 두고자 한다”고 말했다.


ahnbc@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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