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자산 과세 유예 속 정책 신뢰성 논란

국회 심의 과정서 부동산 세제 수정 가능성

경제수장 정책 색깔·추진력 시험대 올라

이형일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이 6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대외경제장관회의에 입장하고 있다. [연합]
이형일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이 6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대외경제장관회의에 입장하고 있다. [연합]

[헤럴드경제=양영경 기자] “아직 시작도 제대로 못 했는데 벌써부터 줄줄이 후퇴한다는 말이 나오는 게 걱정이죠. 더 문제인 건 앞으로도 물러설 일이 한두 개가 아니라는 거예요.”

정부가 가상자산 소득과세를 2년 더 유예하기로 하면서 관가에서 세제정책의 잇따른 방향 전환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부동산 세제와 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ISA) 개편안을 수정한 데 이어 가상자산 과세까지 다시 미루기로 하면서 정책의 일관성과 예측 가능성이 흔들리고 있다는 지적이다.

지난 9월 취임한 이형일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이 자신만의 정책 색깔을 드러내기도 전에 잇단 정책 후퇴 논란에 휩싸이면서 경제수장으로서의 리더십에도 부담이 커지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7일 관가에 따르면 정부는 지난 5일 내년 1월 시행 예정이던 가상자산 소득과세를 2029년으로 2년 더 유예하겠다는 방침을 공식 발표했다. 당초 2022년 도입할 예정이었던 과세를 네 번째 미루는 것이다.

정부는 해외 거래정보 확보와 디지털자산 관련 법률 제정에 따른 제도 정비 필요성 등을 유예 이유로 제시했다. 그러나 그동안 ‘소득 있는 곳에 과세한다’는 원칙을 강조해 온 정부가 시행을 두 달 앞두고 다시 일정을 변경하면서 정책 신뢰성에 대한 논란이 불거졌다.

현 정부 들어 세제정책의 방향 전환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정부는 지난 8월 발표한 세법 개정안에서 비거주 1주택자의 종합부동산세 기본공제를 현행 12억원에서 9억원으로 축소하기로 했다. 실거주 1주택자의 기본공제를 14억원으로 높이는 대신 비거주자에 대한 공제를 줄여 실거주 중심의 과세체계를 마련하겠다는 구상이었다.

하지만 거주 여부에 따른 과세 차별이 부당하다는 여당 일각과 시장의 반발이 거세지자 발표 29일 만에 비거주 1주택자의 기본공제를 현행 12억원으로 유지하기로 했다. 종부세 세 부담 상한을 150%에서 200%로 높이려던 계획도 철회했다.

ISA의 계약기간을 제한하고 미사용 납입 한도의 이월을 금지하려던 방침 역시 수정했다. 다주택자에 대한 양도소득세 중과세도 지난 5월 4년간의 유예를 종료하고 재개했지만 석 달도 지나지 않아 한시적으로 다시 완화하기로 했다.

앞서 지난해에는 주식 양도소득세 대주주 기준을 50억원에서 10억원으로 되돌리려던 방침도 발표 46일 만에 철회한 바 있다.

이들 결정은 모두 이 부총리가 취임하기 전에 이뤄졌다. 다만 당시 재경부 1차관으로 경제팀에 몸담았던 이 부총리가 경제수장으로 자리를 옮긴 뒤에도 정책 수정이 이어지고 있다는 점에서 부담이 적지 않다는 평가가 나온다.

앞으로 국내생산세액공제도 추가적인 방향 전환 가능성이 거론되는 사안이다. 정부는 당초 국내생산세액공제 대상에 이차전지 등이 포함된 만큼 전기차 산업에도 간접적인 지원 효과가 돌아갈 것이라는 입장이었다. 그러나 업계와 국회에서 전기차 완성차까지 공제 대상에 포함해야 한다는 요구가 이어지면서 보완 방안을 검토 중이다.

국회 세법 개정안 심의 과정에서도 정부안이 추가로 수정될 가능성이 거론된다. 종부세율 인상과 장기보유특별공제의 거주 중심 개편 등에 대한 부작용 우려가 제기되고 있어서다. 실제 수정 여부와 범위는 국회 논의 결과에 따라 달라질 전망이다.

관가에서는 이런 흐름이 이 부총리의 정책 리더십에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전임 부총리가 인공지능(AI) 산업 육성을 주요 정책 의제로 내세웠던 것과 달리 이 부총리는 취임 이후 자신을 대표할 만한 정책 이미지를 아직 뚜렷하게 구축하지 못한 가운데서 후퇴 움직임이 계속되고 있어서다.

정부가 세제 개편 과정에서 이해관계자와 시장의 의견을 반영하는 것은 필요하지만 정책 발표 이후 단기간에 방향을 바꾸는 일이 반복되면 향후 정책 추진 동력이 약화할 수 있다는 시각도 있다. 취임 전부터 이어진 세제정책 수정 흐름을 끊어내지 못할 경우 경제팀의 정책 조정 능력에 대한 의문이 커질 수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정부의 한 관계자는 “정책을 수정하는 것 자체보다 당초 제시한 원칙과 방향이 바뀌는 게 더 큰 문제”라며 “이 부총리가 앞으로 경제수장으로서 정책의 중심을 얼마나 확고하게 잡아나갈지가 중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세종백블
세종백블

y2k@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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