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을 통해 세상을 봅니다. 안녕하세요. 맛있는 이야기 ‘미담(味談)’입니다. 인간이 불을 집어 든 날, 첫 셰프가 탄생했습니다. 100만년이 넘는 시간 동안 그들은 음식에 문화를 담았습니다. 미식을 좇는 가장 오래된 예술가, 셰프들의 이야기입니다ㅇ

한식 다이닝 오은(烏隱)의 이선영 셰프 인터뷰

“같은 음식이라도 식기에 따라 첫인상 달라져”

“계절감과 식재료 본연의 맛 살리는 데 집중”

오은의 이선영 셰프가 직접 제작한 접시를 들고 있다. 채상우 기자
오은의 이선영 셰프가 직접 제작한 접시를 들고 있다. 채상우 기자

[헤럴드경제=채상우 기자] “음식의 맛은 담음새에 있다.”

미식에서 식기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식기는 요리를 돋보여줄 뿐 아니라, 맛에까지 영향을 미친다. 이는 실제 연구 결과로도 입증된 사실이다. 2011년 학술지 『애피타이트(Appetite)』에 실린 연구에서는 같은 음식이라도 정돈된 형태로 담았을 때 더 맛있다는 평가를 받았다. 2022년에는 학술지 『푸드스(Foods)』에 식기의 미적 요소가 음식을 더 맛있게 인식하게 만든다는 연구 결과가 실리기도 했다.

안타깝게도 한국은 식기의 중요성을 여전히 낮잡아 보고 있는 게 사실이다. ‘스뎅 밥그릇’으로 대변되는 한국의 식문화 속에서 도자기나 유기, 목기, 옹기 등 우리의 전통적 식기마저 사치품 취급일 뿐이다. 가난했던 시절 ‘배만 부르면 됐다’는 관념에서 ‘맛만 있으면 됐다’까지 왔지만, 그 다음 단계로의 진입은 아직인듯 싶다.

그러나 언젠가부터 한국에서도 미식에 관한 관심이 높아지고, 해외 경험을 한 소비자들이 늘어나면서 점차 식기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변화의 움직임도 분명히 감지되고 있다.

“어떤 그릇에 담기느냐, 음식의 첫인상을 가름한다”

이선영 셰프. 채상우 기자
이선영 셰프. 채상우 기자

한식 다이닝 오은(烏隱)의 이선영 셰프는 그 변화를 만들어 가는 사람이다. 그는 요리사이자 도예가다. 레스토랑에서 사용하는 식기를 직접 디자인하고 굽는다. 그가 만든 식기에는 음식을 담는 기능을 넘어 요리의 정서와 계절, 자연의 풍경까지 담겨 있다.

대표적인 작품이 ‘마블 시리즈’다. 부서지는 아드리아해의 물결을 떠올리게 하는 표면과 불규칙한 무늬가 특징이다. 파도가 모래 위에 남긴 포말의 흔적처럼 무늬는 일정하지 않다. 어느 하나 똑같은 형태가 없다. 이선영 셰프는 바다의 이미지를 담은 이 접시에 주로 해산물 요리를 올린다. 바다에서 온 재료가 바다를 닮은 그릇 위에 놓이는 셈이다. 접시와 음식은 서로의 이미지를 끌어올리며 하나의 장면을 완성한다.

이선영 셰프의 도자기 식기 ‘마블’ 시리즈 중. 채상우 기자
이선영 셰프의 도자기 식기 ‘마블’ 시리즈 중. 채상우 기자

“음식과 식기가 서로의 장점을 살리면서, 먹는 사람에게 편안하고 즐거운 경험을 만들어주는 것. 그것이 미식에서 식기가 가진 가장 중요한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같은 음식이라도 어떤 그릇에 담기느냐에 따라 첫인상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음식의 맛뿐 아니라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지고, 입술에 닿는 감각까지 식사의 경험을 이루는 요소라고 생각합니다.”

이선영 셰프의 작품에는 자연에서 얻은 영감이 짙게 배어 있다. 계절에 따라 달라지는 풍경과 식물의 형태, 물결의 움직임처럼 자연이 만들어내는 순간을 식기에 옮긴다. 정교하게 계산된 대칭보다는 우연히 생겨난 불규칙한 형태에 관심을 둔다. 자연에는 같은 모양이 반복되지 않는다. 파도가 부서지며 남기는 물거품의 무늬도,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의 모양도 매 순간 다르다. 그의 식기 역시 그런 자연의 비정형성을 닮았다. 반듯하지 않기에 오히려 생동감이 있고, 완벽하게 정돈되지 않았기에 편안하다.

도토리만두 요리를 담는 식기. 투박함과 일그러짐을 통해 자연의 비정형성 그리고 따뜻함을 통해 도토리가 있는 숲의 이미지를 담았다. [다이닝 오은 제공]
도토리만두 요리를 담는 식기. 투박함과 일그러짐을 통해 자연의 비정형성 그리고 따뜻함을 통해 도토리가 있는 숲의 이미지를 담았다. [다이닝 오은 제공]

그에게 식기는 그저 예쁘기만 한 장식품이 아니다. 손님이 요리를 받아들이는 방식을 이끄는 또 하나의 표현 수단이다. 이번 겨울 선보일 도토리만두 요리에도 그 철학이 담겼다. 그는 이 요리를 위해 표면이 울퉁불퉁하고 형태가 일정하지 않은 도자기 작품을 골랐다. 따뜻한 색감과 손으로 빚어낸 듯한 자연스러운 일그러짐이 특징이다. 반듯하게 정돈된 접시와는 거리가 멀다. 어딘가 투박하면서도 귀엽고, 손으로 빚은 음식의 온기가 느껴진다. 도토리만두가 지닌 소박하고 친근한 이미지와도 잘 어울린다.

이선영 셰프는 경기대 호텔조리학과 재학 중 도예를 복수 전공으로 선택했다. 요리사를 꿈꾸면서부터 자신의 요리를 돋보여줄 수 있는 식기를 직접 만들고 싶다는 목표가 있었다.

“레스토랑이 하나의 종합엔터테인 공간으로 진화하고 있습니다. 감성을 채울 수 있는 여러 요소가 종합적으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미각뿐 아니라 시각·청각·후각 등 모든 감각기관의 만족을 채울 수 있는 공간이어야 합니다. 식기도 그중 하나라고 생각했습니다. 요리와 가장 잘 맞는 식기를 저는 직접 만들고 싶었습니다.”

이선영 셰프의 식기들. [다이닝 오은 제공]
이선영 셰프의 식기들. [다이닝 오은 제공]

이선영 셰프는 한국에서도 식기의 중요성이 점차 부각될 것이라고 봤다. 이미 미식계에서는 그런 움직임이 감지됐다고 한다. 식기를 전문으로 하는 도예가들도 점차 늘고 있으며, 이를 찾는 식당도 많아지고 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변화의 키는 식당을 찾는 소비자들이 쥐고 있다. 좋은 식기를 찾는 이들이 많아지면, 자연스럽게 그 방향으로 변화할 것이라고 이선영 셰프는 믿는다.

“10년 전만 하더라도 식기를 전문적으로 하는 도예가들이 많지 않았습니다. 지금은 정말 많아졌고요. 이는 파인다이닝 시장의 형성과 성장과도 맞물립니다. 하지만 근본적으로 중요한 건 소비자들의 변화가 필요합니다. 문화를 변화시키는 건 대중입니다. 많은 이가 좋은 접시를 찾으면 자연스럽게 식기 문화도 바뀔 거라고 생각합니다.”

본질과 감각적 재해석…자연을 담은 이선영의 미식

이선영 셰프(왼쪽)과 오은의 직원들. 채상우 기자
이선영 셰프(왼쪽)과 오은의 직원들. 채상우 기자

그가 식기를 통해 추구하는 미학은 요리의 방향과도 맞닿아 있다.

이선영 셰프는 크로아티아 대사관에서 요리사로 일하며 남유럽의 음식 문화를 경험했다. 이후 한국으로 돌아와 고조리서를 바탕으로 전통 한식을 탐구해온 김지영 셰프 아래에서 한국 음식의 뿌리를 배웠다. 최소한의 재료로 본연의 맛을 살리는 남유럽 요리의 감각과 발효·숙성, 제철 식재료를 중시하는 한식의 철학을 함께 익힌 것이다. 서로 다른 음식 문화에서 배운 요소를 바탕으로 자신만의 요리를 만들어가고 있다.

“본질을 지키되 감각적으로 재해석하는 것을 추구합니다. 그리고 그 본질은 언제나 맛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요리에는 다양한 기술과 표현 방식이 있지만, 결국 중요한 것은 식재료가 가진 고유한 맛을 얼마나 정직하고 섬세하게 담아내느냐입니다. 특히 한국 음식의 근간이 되는 발효와 숙성, 제철 식재료에 많은 관심을 두고 있습니다.”

오은의 굴 요리. 채상우 기자
오은의 굴 요리. 채상우 기자

그가 셰프로 있는 다이닝 오은은 이러한 미식 철학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공간이다. 오은은 ‘숨은 공간’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고층 빌딩이 빼곡한 강남의 주택가 안쪽, 쉽게 눈에 띄지 않는 곳에 자리한 레스토랑은 이름처럼 비밀스러운 분위기를 풍긴다. 둥지를 형상화한 인테리어는 아늑하면서도 독립적인 공간의 느낌을 준다. 이곳에서 손님은 한 끼의 식사를 넘어 계절과 재료, 공간이 어우러진 하나의 경험을 마주한다.

오은을 찾는 손님 중에는 한식을 경험하려는 외국인도 적지 않다. 이들에게 음식은 물론이고 식기와 공간, 서비스까지 모두 한국의 미식을 구성하는 요소가 된다. 한식의 맛을 설명하는 데 그치지 않고, 한국의 계절과 정서를 식탁 위에서 경험하게 하는 것이다.

[다이닝 오은 제공]
[다이닝 오은 제공]

“다이닝 오은이 추구하는 것은 단순히 한 끼의 식사를 제공하는 것이 아닙니다. 한국의 계절과 시간, 문화적 감성이 담긴 하나의 미식 경험을 선사하는 것입니다. 요리에 사용하는 도자 식기도 직접 디자인하고 제작합니다. 음식과 식기, 공간과 서비스가 각각 분리된 요소가 아니라 하나의 흐름으로 이어지도록 고민하고 있습니다.”

이선영 셰프가 꿈꾸는 미래는 화려한 수식어로 기억되는 사람이 아니다. 오래 기억되는 셰프다. 손님이 식당을 나선 뒤에도 문득 떠올릴 수 있는 한 끼, 시간이 흘러도 마음에 남는 식사의 장면을 만들고 싶다고 말한다.

오은의 아뮤즈 부쉬. 채상우 기자
오은의 아뮤즈 부쉬. 채상우 기자

“제가 만든 요리가 손님에게 단순히 맛있었던 한 끼를 넘어 시간이 지나도 문득 떠오르는 하나의 장면으로 남았으면 좋겠습니다. 화려한 표현이나 새로운 시도 자체에 집중하기보다는 좋은 재료와 정성스러운 요리, 편안한 식사 경험을 통해 손님들에게 오래 기억되는 레스토랑을 만들어가고 싶습니다.”

잘 빚은 도자기는 천년이 지나도 그 빛을 낸다. 이선영 셰프가 그런 도자기를 닮은 셰프로 남기를 바라본다.

“한국술 더 많이 실패해야 합니다”…술 빚는 세프 조성주[미담:味談]

“한국술 더 많이 실패해야 합니다”…술 빚는 세프 조성주[미담:味談]

한국의 미식을 찾는 이들이 가장 아쉬워하는 ‘술’. 한국술의 발전을 위해서 우리는 많은 시도를 해야 하고 그 과정에서 실패를 두려워해선 안 된다.
https://biz.heraldcorp.com/article/10913998

123@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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