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문재연 기자] 고등학생 정치참여 독려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한 사단법인의 대표가 있다. 그의 나이는 24세로, 재단을 설립하자마자 아베 신조(安倍 晋三) 일본 총리의 부인이 홍보인으로 나섰다. 이후 자민당, 민진당, 공명당 일본 주요 3당의 대표가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등 일본 정계 유력인물들이 프로젝트를 빛냈다. 인지도도 낮고 실적도 적은 재단을 일본 정치거물들이 전폭지원하고 나선 이유는 무엇일까?

한국에는 미르재단, 일본엔 미래회의?…장막에 가려진 비선실세의 정체는-①

일본 정치주간지 주간신쵸(週刊 新潮)는 12월 15일호 지에서 문부과학성이 아베 총리의 먼 친척 조카인 사이키 요헤이(斎木 陽平ㆍ24)가 운영하는 재단을 부당하게 후원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재단의 성과가 아닌 ‘총리의 조카’라는 신분 때문에 후원이 이뤄졌다는 것이 익명을 요구한 문부과학성 간부의 주장이다.

보도에 따르면 지난해 9월 사이키의 재단 프로젝트는 문부과학성의 후원대상 후보로 올랐으나 ‘고려 가치가 없다’라는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문부성의 직원은 시모무라 하쿠분(村博文) 전 문부상이 돌연 “총리 산하의 사업으로 (후원)해달라”라며 재고할 것을 지시했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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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사이키 씨가 아베 총리의 친족이라는 것은 그때 알았다”라며 “문부과학성은 공정하게 여러 행사를 진행해야 하고, 해당 법인은 실적이 거의 없어 후원대상이 아니었지만, (전 문부상이) ‘아베 총리의 친척이니까 어쩔 수 없다’라는 말과 함께 후원을 강요했다”라고 밝혔다.

일본 온라인 매체 ‘리테라’(Litera)는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를 집중보도하고 있는 일본 언론의 실태를 꼬집으며 “박근혜 스캔들과 똑같은 이권정치가 일본에서도 일어나고 있다”라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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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베 가문을 후원해온 재력가 집안에서 태어난 사이키는 19세의 나이에 일본 AO입시학원을 설립했고, 학원 설립 2년 만에 고교생의 창업 및 정치활동을 지원하는 재단인 ‘Re:Vision’(리비전)을 창설했다.

리비전의 활동 중 하나가 바로 특혜의혹이 불거지고 있는 ‘전국 고교생 미래회의’(이하 미래회의)다. 미래회의는 고등학생을 대상으로 한 정치 공부모임으로, 매년 여름 고교생이 정책토론회를 벌여 정책을 구성하고 가장 좋은 정책안을 제시하는 팀에게 상을 수여하는 포럼을 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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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회의는 설립 초기부터 특혜논란에 휩싸였다. 미래회의 설립을 공식화하기에 앞서 사이키가 ‘여고생 미래회의’와 고교생 창업포럼인 ‘NES 2014’ 등 2 차례에 걸쳐 포럼을 진행했는데, 이때 아베 아키에(安倍 昭恵) 여사가 투자를 권유하는 ‘발기인’으로 나섰기 때문이다. 더구나 과거 전력이 전무한 리비전 재단이 처음으로 미래회의 행사를 연 곳은 다름 아닌 일본 국회 의원회관이었다. 때문에 온라인 매체 리테라는 미래회의가 “문부성 후원이나 관저 개방 등 ‘특별대우’를 받고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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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블로그매체 블로거스(BLOGOS)에 시민기자로 활동하고 있는 미야타케 레이(宮武嶺) 변호사는 아베 내각이 만 18세 청소년의 선거권을 허용하는 선거법 개정을 추진하고 있다는 점을 꼬집어 사이키의 미래회의를 10대 지지세력을 모으기 위한 도구로 사용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하기도 했다.

실제로 아베 총리는 지난 3월 진행된 미래회의에 최우수팀에게 수여하는 ‘국무총리상’ 시상자로 참석한 바 있다. 당시 리테라(Litera)와 도쿄(東京)신문 등은 미래회의를 아베의 ‘친위대’라 칭하며 아베가 10대 유권자들의 지지를 얻기 위해 먼 친척의 사업을 이용하고 있다고 비꼬았다. 일본 주니치(中日)신문은 미래회의를 학생운동 단체 ‘실즈’(SEALDs)에 대항하기 위한 학생 보수단체라고 소개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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