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조현용 경희대 교수 ]스승의 치유

선생(先生)은 먼저 난 사람을 의미합니다. 여기서 ‘나다’라는 말은 꼭 시간이 앞섬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시간보다 깨달음이나 앎이 앞서는 경우도 선생이 될 수 있습니다. 선생을 부르는 순 우리말은 ‘스승’입니다. 선생과 스승은 비슷한 말이라고 하기에는 다가오는 느낌의 간격이 넓습니다. 선생님이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은 많이 있겠지만 스승이라고 부를 수 있는 분은 얼마나 있을까요. 스승이라 부를 수 있는 분이 한 분이라도 있으면 행복한 사람일 수도 있습니다. 스승이라는 말에는 영혼의 냄새가 납니다. 우리는 ‘영적 스승’이라는 말도 합니다. 그래서일까요? 스승에는 지식의 냄새뿐 아니라 기독교의 ‘랍비’나 힌두교의 ‘구루’ 같은 말이 함께 떠오릅니다. 스승은 왠지 함부로 다가가기 어려운 느낌도 있지만 늘 찾아가고 싶은 존재이기도 합니다. 우리의 물음에 대해 모든 답을 알고 있고 모든 해결책을 갖고 있을 것 같은 느낌이라고나 할까요. 물론 내놓는 답이 틀릴 수도 있을 것이고 끝내 모른다고 답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 모든 답에 진실과 진심이 있음은 의심할 여지가 없습니다. 스승을 믿는다는 말은 스승의 진실을 믿는다는 말입니다. 스승은 그런 분입니다.

스승은 어원적으로 제사장, 무당, 의사와 통합니다. 스승은 지식뿐 아니라 지혜, 치유의 역할도 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오랫동안 괴로웠던 내 삶의 고통이 어떨 때는 스승의 일갈(一喝)에 한 순간 사라지기도 합니다. 스승의 따뜻한 한 마디에 깊은 외로움이 치유되기도 합니다. 우리는 그런 것을 배움이라고 합니다. 바로 ‘학(學)’인 것입니다. 배움이 소중한 것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길을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배움은 스승과 나를 연결해 줍니다. 삶의 난관 앞에서 어쩔 줄 몰라 하는 나의 손을 잡아주는 분, 일으켜주는 분, 함께 울어주는 분이 바로 스승입니다. 논어(論語)의 첫머리가 학(學)으로 시작되는 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아픈 우리에게 어떤 것이 진리이고, 진정한 행복인지 들려주고 싶은 것입니다. 기쁜 일이 없고, 세상이 온통 괴롭고 슬프고 화나고 답답하다고 생각할 때면 배워야 합니다. 그것도 틈만 나면 진리를 찾아 배워야 합니다.(학이시습, 學而時習) 그러면 참다운 기쁨도 만나게 됩니다.(불역열호, 不亦說乎) 슬픔도 서러움도 분노도 넘어서는 기쁨 말입니다. 배워서 우리는 행복해집니다. 아니, 우리가 행복한 사람이었음을 깨닫게 됩니다.

요즘 저는 성경을 읽고 불경을 읽고 힌두교에 관한 글을 읽으면서 스승에 대한 생각이 깊어졌습니다. 좋은 스승을 만난 이의 환희를 보면서 참으로 부러웠습니다. 스승은 나도 모르는 새 내 옆에 서 있기도 하지만 끊임없이 우리가 찾아야 하는 존재임도 다시 한 번 느낍니다. 배우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졌을 때, 내 아픈 영혼을 토닥이고 싶을 때 더욱 스승을 찾아야 합니다. 나를 깨뜨려 참 나를 만나야 하는 겁니다. 스승은 나의 닫힌 세계를 깨뜨려 주십니다.

얼마 전에 멀리 계신 스승님을 찾아뵈었습니다. 스승을 만나면서 저는 제 자신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많이 배웠습니다. 기뻤습니다. 그래서 즐거웠습니다. 저는 제자였지만 스승님은 저를 벗으로 대해 주셨습니다. 멀리서 온 벗을 만나 스승님도 무척 즐거워 하셨습니다. 배워서 기쁘고, 만나서 즐거웠습니다. 논어의 말을 그대로 몸으로 느끼는 시간이었습니다. 스승이 계셔서 참 좋습니다.

스승의 날입니다. 스승은 평생 찾아야 하는 분입니다. 스승은 책 속에도 있고, 사람 속에도 있습니다. 내 영혼의 갈증을 풀어줄 스승을 만나는 것은 가장 행복한 일입니다. 세상을 다시 살아갈 힘을 얻기 때문입니다. 스승은 우리의 마음을 치유하는 분입니다.

조현용 경희대 교수